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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시시각각] ‘놀토’에 놀면 안 되는 거니?

중앙일보 2012.03.09 00:00 종합 34면 지면보기
양선희
논설위원
드디어 우리 아이들이 매주 이틀을 놀게 됐다. 학창 시절 가장 바랐던 게 ‘토요일에 학교가 쉬었으면’ 하는 거였는데, 이제라도 그런 날을 보게 돼 기쁘다. 한데 ‘놀토’를 맞는, 학생과 학부모들은 그다지 기쁜 표정이 아니다. 중학생 자녀를 둔 한 엄마는 “놀토를 허송세월하지 않도록 스케줄 짜느라 골치가 다 아프다”고 했다. 그의 중학생 아들은 당연하다는 듯 “학원에 다녀야죠” 한다. 강남 엄마들은 벌써부터 토요일 팀 과외 일정 짜기에 분주하다.



 대한민국 학원의 경쟁력은 이번에도 입증됐다. 이달 주5일제 수업 시작에 학교와 지역 사회는 ‘놀토’ 대비가 됐느니 안 됐느니 말이 많은데 학원가는 이미 만반의 준비가 끝난 것으로 보인다. 학원가엔 토요일 오전 강좌 스케줄이 빼곡히 잡혔고, 금요일 저녁에 입소해 일요일 밤에 퇴소하는 2박3일제 기숙학원도 등장했다. 일단 입소하면 나갈 수도 없고, 밤 12시 전에는 재우지 않는 스파르타식 학원을 표방한다.



 한편에선 학교 놀토 프로그램이 빈곤하다며 질책이 쏟아진다. 학생 참여도 적고, 지도 강사와 내용도 부실하고, 어느 학교는 그저 영화만 틀어줬고, 도서실에서 빈둥거리도록 방치해 시간낭비가 많았다는 등이다. 그런가 하면 ‘좋은 부모’들은 토요일마다 아이들과 어떻게 하면 유익한 시간을 보낼까 하는 문제로 고민이 많다. 첫 놀토를 맞은 3일 에버랜드 입장객이 지난해 격주 놀토보다 30%나 늘었단다. 중1 아들을 둔 모씨는 부자간 정도 쌓고 아들의 호연지기를 길러주기 위해 토요일마다 백두대간에 오르는 산행을 아들에게 제안했단다. 나름대로 상당한 희생과 귀찮음을 각오한 것인데, 정작 아들은 “아빠,그거 꼭 해야겠어요?”라며 시큰둥하단다.



 완전 놀토를 맞은 우리 사회의 관심은 이렇게 토요일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유익하게, 시간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보낼지에 집중되고 있다. 당장 입시전쟁이 코앞인 고등학생들은 학원 프로그램에 가위눌리고,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에 놀토에도 학원으로 내몰린다. 초등학생들도 다르지 않다. 부모는 아이들을 눈에서 놓치지 않고, 하나라도 더 배우게 하고, 다른 애들이 하는 건 다 하게 하려고 안달이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 휴일을 꼭 그렇게 유익하고 효율적으로 보내야만 하는지. 놀토는 말 그대로 노는 날인데, 그냥 좀 잘 놀면 되지 않느냐는 말이다. 꼭 부모와 함께 놀아야 할 필요도 없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초등학생 때 부모와 놀지 않았다. 놀자고 하면 오히려 귀찮았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론 ‘과외금지령’이 있던 5공 시절 학교에 다닌 덕분에 학원 문전에도 못 가보고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남아도는 시간에 가끔은 친구들과 놀고, 대부분은 방에서 뒹굴며 ‘허송세월’을 했다. 한데 그런 심심한 시간 속에서 공상도 하고, 낙서도 하고, 소설도 읽고, 글도 쓰면서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을 가졌던 게 지금 나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당시엔 인터넷이 없었던 게 다행이긴 했다.



 “고독은 창의성의 열쇠다.” 지난주 미국에서 열렸던 지식축제 TED콘퍼런스에서 미국 작가 수전 케인이 한 말이다. 흔히 세상은 밖에 나가 다른 사람들과 더 많이 어울리고 외향적이 되라고 강요하지만 실제로 세상을 바꾼 지도자와 창의적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자신을 고독하게 놔둘 줄 알았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끝없이 가르치고 주입한다고 그 모든 것이 아이의 지식이 되진 않는다. 아이들을 심심하게 놔두고, 무념무상으로 뛰어놀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창의성을 기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물론 아이들은 무조건 안전해야 한다. 운동장·공원과 도서실 등 아이들이 노는 공간을 마련하고, 물리적 안전은 섬세하게 지키고, 기다려 주는 일이 어른들이 할 몫이다. 우리 아이들이 놀토에 부모의 간섭과 인터넷·SNS의 정보 폭주와 같은 외적 자극에서 벗어나 심심하게 뒹굴거나 아무 생각 없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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