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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노무현도 곤혹스러웠던 법조 안팎 ‘청탁전화’ 논란… 애매하지 않게 정리할 때 됐다

중앙일보 2012.03.09 00:00 종합 35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공교롭게도 꼭 9년 전 오늘이었다. 2003년 3월 9일 갓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과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라는 토론회를 열었다. 새 정부 첫 법무장관으로 파격 임명된 강금실 장관도 참석했다. 토론회 후 김각영 검찰총장이 항명성 사표를 제출하고 ‘검사스럽다’는 유행어가 나올 정도로 분위기는 꽤 험악했다.



 노 대통령에 대한 수원지검 특수부 김영종(사시 33회) 검사의 직설적인 추궁이 토론장을 서늘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지금은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장인 김 검사는 “대통령은 취임 전 부산지검 동부지청장에게 청탁전화한 적이 있다. 뇌물사건을 잘 처리해 달라는 것이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다고 생각하지 않나”라고 따졌다. 노 대통령은 “이쯤이면 막하자는 거죠”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어 “청탁전화가 아니었다. 지구당 당원이 연루돼 있었는데 억울하다니 가서 하는 얘기나 들어달라는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제 경험으로는 검사들이 그 정도로 사건을 그르치지는 않는다”는 말도 했다.



 나경원 전 새누리당 의원과 남편 김재호 판사, 김 판사의 ‘청탁전화’를 받았다는 검사, 기소를 진행한 다른 검사, 통화를 폭로한 기자…. 의혹이 커지면서 코너에 몰린 나경원 전 의원이 어제 4월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고인이 된 노 전 대통령의 9년 전 답변과 굳은 표정이 저절로 머리에 떠오른다. 노 전 대통령이 동부지청에 전화한 것은 2002년 4월11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것은 4월28일이었다. 대통령이 될 수도 있는 정치인의 “억울하다니 얘기나 들어달라”는 전화는 청탁일까 아닐까.



 박원순 서울시장이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시절 펴낸 좋은 책이 있다. 판·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들을 심층 인터뷰해 정리한 『불멸의 신성(神聖)가족』(김두식 저)이다. ‘신성가족’은 마르크스·엥겔스의 저작에서 따온 용어로, 여기서는 법원·검찰청 같은 센 조직의 구성원을 칭한다. 신성가족 내에서의 ‘돈·압력이 개입되지 않은’ 청탁은 많은 경우 ‘순수한’ 행위로 치부된다. 그러나 신성가족 바깥에는 가족, 8촌 이내 친지, 친한 친구·동창 중 법조인이 단 한 명도 없는 대다수(85.8%) 일반 시민이 존재한다. 요즘과 달리 극소수를 뽑던 시절 사법시험을 통과한 노 전 대통령도 따지고 보면 신성가족의 일원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정치인에게는 민원이 얼마나 많이 몰리는가.



 청탁전화 시비가 기왕에 터졌으니 어떤 식으로든 사회 발전에 기여했으면 좋겠다. 가령 지금까지는 미분화된 상태로 애매하게 뒤섞여 돌아다니던 다음 단어들이 하나하나 뚜렷하게 나뉘고 구분되는 사회다. 하소연, 호소, 설명, 건의, 제언, 요구, 민원, 로비, 청탁, 회유, 압력, 공갈, 증수회(贈收賄)….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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