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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칼럼] 앞서가는 북·미, 한국은 소외되는가

중앙일보 2012.03.09 00:00 종합 35면 지면보기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미국이 북한에 영양지원을 하고,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지한다는 2·29 베이징합의를 보면서 당연히 생기는 의문이 있다. 베이징의 마지막 협상에서 북한이 남북대화를 재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는가다. 애당초 북·미 협상은 남북대화로 시작해서 북·미대화를 거쳐 6자회담으로 간다는 큰 로드맵에 따라 진행되었다. 한국과 미국이 합의하고 중국이 지지한 시나리오다. 북·미대화 자체가 출범한 것도 지난해 7월 발리(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세안 지역안보포럼 때 남북한 외무장관이 만난 직후다. 핵 협상과 식량지원의 연계전략은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개발 동기를 부추기는 악수라는 비판이 있지만 오바마 정부는 지금 단계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을 중지시키는 것 말고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고 판단하고 그 길을 택했다.



 글린 데이비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남북 핵대화에 대해 김계관한테서 어떤 말을 들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한국에 고무적인 것이 아니다.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남북관계 개선 없이는 6자회담을 재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은 남북관계 개선을 6자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달지 않고 하나의 숙제(homework)로 받아들였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미국은 북한의 동의를 얻어 북한 외무성 부상이 참석하는 뉴욕의 동북아 평화협력 회의에 한국 정부 대표를 초청했다. 그러나 북한은 남북대화 재개의 언질을 주지 않았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북·미대화 모드가 가동되고 있어도 남북대화 재개의 길은 멀고 6자회담 재개의 전망도 그렇게 밝은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북한은 핵·미사일 활동의 중지를 “결실 있는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것은 미국의 24만t 영양지원 조건과 배급절차에 문제가 생기거나, 영양지원에 옥수수를 포함하고 추가지원도 달라는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베이징합의 이행을 미루거나 거부할 수도 있다는 배부른 포석이다. 북한은 베이징 합의에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 중지가 포함된 것을 미국이 큰 성과로 평가한다는 사실과, 오바마 정부가 11월 대선을 앞두고 북한이 다시 핵실험을 하거나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여 선거판을 흔드는 사태를 극력 피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효과적인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북한은 4·15 김일성 탄생 100주년 큰 잔치와 강성대국 입문으로 김정은 체제를 안정시키는 데 미국의 지원이 절실한 사정을 호도할 수가 있고, 6자회담 재개의 전망을 슬쩍 띄워 중국으로부터 보너스 지원을 기대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는 것 같다.



 베이징 합의는 획기적인 것이다. 그것은 김정일의 결단으로 두 번 열린 협상을 마무리한 것이어서 김정은이 아버지가 시작한 북·미대화 기조를 유지할 의지가 있음을 과시한 것이다. 그것은 김정은이 걷는 유훈통치의 밝은 면이다. 그런 배경에서 한국 정부도 베이징 합의를 “환영”한다는 성명을 냈다. 그러나 미국은 그것을 마지못한(reluctant) 환영이라고 본다. 북한과 미국은 1994년 중유지원 플러스 경수로 2기 제공과 북한의 핵개발 동결을 주고받는 제네바 합의에 서명했다. 그 협상에서 소외됐던 한국은 경수로 발전소 건설비 15억6200만 달러의 70%를 떠안았다. 베이징 합의로 1994년의 악몽이 떠오른다. 이건 우리의 정당한 걱정거리지만 그때와 달리 지금은 6자회담이라는 언덕이 있다. 북·미 합의가 북핵·북한 문제와 한반도 문제 해결이라는 최종 목표를 달성하려면 6자회담 참가국 모두의 컨센스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6자회담의 틀 자체는 한국을 딜레마에서 구해내는 충분조건이 안 된다. 북·미 협상 없이는 핵 문제에 진전이 없지만 한국이 소외된 채 북·미 협상이 너무 나가면 북한 핵개발을 용납할 수 없는 한국의 확고한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한국이 주도적으로 상황을 타개할 수단은 제한적이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보다는 다음 정권을 상대하겠다는 여유를 부린다. 그래도 한국은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시도로 미국과 중국의 협력을 얻어 이산가족 상봉으로 말문을 트고 고위급 특사를 파견하는 것을 고려해볼 만하다. 이산가족 상봉에는 쌀을 준다는 인센티브를 제시한다. 그건 정부가 이미 검토해온 방안이다. 대북특사는 6·15와 10·4합의 존중, 5·24 조치 해제, 천안함에 대한 사과에 유연한 입장, 그리고 전면적인 지원 재개라는 인센티브를 들고 간다. 그나마 여당이 총선에서 선전했을 때의 이야기다. 민주통합당 압승으로 11월 대선 결과 정권교체가 확실하다고 판단되면 그 제안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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