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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값 오른다” 소문내는 것도 상술

중앙일보 2012.03.09 00:00 경제 12면 지면보기
김호정
경제부문 기자
“원가는 핑계다.” 패션 브랜드 MCM을 운영하는 성주그룹 김성주(56) 회장이 지난달 한 포럼에서 한 말이다. MCM은 이탈리아에서도 제품을 만든다. 그는 “이탈리아 내 제작 비용엔 거의 변동이 없다”고 말했다. 해외 명품들이 원가 인상을 내세워 값을 올린 것은 “값이 오르기 전에 사자”는 고객 심리를 이용하는 데 대한 핑계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원가 상승’은 명품의 가격 인상을 설명하는 모범답안이었다. 1월 에르메스(5%), 지난달 샤넬(10%)·프라다(3.4%)가 그랬다. 크리스찬디올도 12일부터 일부 제품 가격을 10% 올리기로 했다. 김 회장이 지적했듯 소비자들이 선연히 받아들이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없지 않다. 특히 지난해 7월 한·유럽(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후 가방·구두 관세가 8% 철폐됐기 때문에 더 그렇다.



 가격 인상을 전후한 업체들의 움직임도 개운치 않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가격 인상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질 때마다 문의 전화가 하루 100통 가까이 걸려 온다”고 전했다. ‘얼마나 오르느냐’ ‘이유는 뭐냐’는 문의가 주를 이룬다고 한다. 하지만 전화를 거는 소비자는 한발 늦은 셈이다. 최근에는 ‘귀띔 마케팅’이 대세기 때문이다. 디오르는 일부 고객에게 “가격이 오르니 매장을 방문해 달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샤넬은 지난달 가격 인상을 앞둔 1월에 한 백화점에서 매출 90% 신장을 기록하기도 했다.



 독특한 장면은 또 있다. “몇 월 며칠 이전에만 결제하면 인상 전의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품절된 상품을 직접 보지 못한 채 결제하기도 한다. 또 가격 인상이 올해 초 몰린 데 대해 ‘윤달 노림수’라는 의혹도 나온다. 예물·혼수 수요를 겨냥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높은 가격은 명품이라는 이름과 잘 어울린다. 신세계 백화점의 경우 올 들어 매출이 지난해 대비 평균 9% 상승할 때 명품군은 1월 19%, 지난달 14% 뛰었다. 가격 인상은 ‘성공한 마케팅’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나오는 여러 풍경은 명품과 어울린다고 볼 수 없다. 끊임없이 가격을 올리면서 원가 때문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내놓고, 가격 인상을 알리는 방법도 석연치 않기 때문이다. 명품이 가격 올리기에 재미를 붙였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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