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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한국농업은 정치였다, 양돈업의 ‘첫 펭귄’ 되겠다

중앙일보 2012.03.09 00:00 경제 1면 지면보기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7일 충남 논산시 봉동농장에서 3단계 냄새 탈취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나뭇가지가 촘촘히 쌓인 세 번째 필터(오른쪽)에는 악취의 원인인 휘발성 지방산을 먹는 미생물이 살게 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양돈업이 위기라고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생산성이 낮기 때문이다. 양돈에도 이제 용기 있는 ‘첫 펭귄(선구자)’이 필요하다.”

FTA 맞서 국산돼지 사수 나선 김홍국 하림 회장



 양계를 농업에서 산업으로 바꿔낸 하림그룹의 김홍국 회장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다음 달 말 가동되는 충남 논산시 봉동리 봉동농장을 통해서다. 김 회장은 타고난 사업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외할머니가 선물한 병아리 10마리를 키워 2500원을 번 게 출발이었다. 이런 수완 덕에 현재 하림은 양계 업계에서 시장점유율 34%의 1등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에게는 뼈아픈 실패도 있었다. 한때 돼지값 폭락으로 빚쟁이를 피해 돼지 축사에서 먹고 자기도 했다.



 돼지로 실패를 경험했던 그가 돼지로 제2의 도전에 나선다. 봉동농장은 3무(無) 농장을 표방한다. 냄새 없고, 폐수 없고, 오염 없는 농장이다. 악취는 3단계 탈취시스템을 통해 걸러지고, 하루 40t의 오폐수와 분뇨를 처리할 재활용 시설을 갖췄다. 하림그룹의 돼지고기 브랜드인 ‘하이포크’용 씨돼지 농장인 이곳은 6만7878㎡ 부지에 지어진 축사 11동에서 씨돼지 3600마리가 사육된다. 농장 건설에는 200억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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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새 도전은 1990년대 말부터 소리 없이 시작됐다. 개방에 앞서 경쟁력을 높일 축산 선진국의 최첨단 시스템을 찾아다녔다. 네덜란드·덴마크 등을 돌면서 내린 결론은 의외로 간단했다. 생산성과 친환경이었다. 한국은 씨돼지 한 마리가 1년간 낳는 고기용 돼지 수(MSY)가 15마리다. 미국은 19마리, 유럽의 축산 선진국은 26마리다. 이대로면 FTA로 국내에 들어올 외국산 돼지고기에 대응할 수 없다고 그는 판단했다. 씨돼지 1000마리를 기준으로 고기용 돼지 생산이 연간 1만 마리 이상 차이가 나는 구조로는 가격 경쟁력이 생길 턱이 없기 때문이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냉동 돼지고기는 2016년부터 관세가 사라지고, 냉장육도 10년 후 무관세로 수입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이에 따른 양돈업 생산 감소를 10년간 1조4056억원으로 추정했다.



 김 회장은 이를 극복하려면 농업의 틀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국 농업을 ‘가슴으로 하는 경제’에 비유했다. 경제성을 도외시한 채 농촌에 대한 향수와 농민에 대한 감성적 호소에 이끌려 왔다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한국 농업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였다”며 “가슴으로만 하는 경제는 미래가 없다”고 단언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봉동농장은 지붕 각도(15도)까지 신경 써서 지었다. 최적의 온도(22~25도)와 습도(70%)를 유지하기 위한 최적의 설계를 위해서다. 1년간 봉동리의 기온과 습도를 분석해 얻은 결과다. 관을 통해 자동 공급되는 사료는 돼지 중량에 따라 양이 조정된다. 품종도 고르고 골랐다. 다음 달 프랑스에서 비행기로 공수될 씨돼지 새끼 3000여 마리는 젖이 16개다. 보통은 12~14개다. 우성 종자를 선별하고 품종 개량을 통해 얻은 품종이다.



 오폐수 재처리 등 농장의 친환경 설비도 경제성을 놓치지 않았다. 김 회장은 “경제성이 없는 친환경은 이벤트일 뿐 지속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분뇨를 외부로 반출하려면 t당 4만원의 위탁 비용이 든다”며 “분뇨로 퇴비를 만들어 팔면 설비비가 들지만 위탁 비용을 아낄 수 있어 절대 밑지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 농장보다 건축비가 20% 더 들었지만 생산성을 높이면 수익은 더 커질 것”이라며 “FTA 시대에는 여론에 좌우되는 정책이 아니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현명한 경제적 판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첫 펭귄(First Penguin)



바다에는 펭귄의 먹잇감도 많지만 바다표범 같은 펭귄의 적도 많다. 그래서 펭귄 무리는 바다에 뛰어들어야 할 때 머뭇거린다. 이럴 때 한 마리가 먼저 바다에 뛰어들면 다른 펭귄도 잇따라 입수한다. 처음 바다에 뛰어든 펭귄을 ‘첫 펭귄’이라 부른다. 영어권에선 이 말이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용감하게 도전하는 선구자를 일컫는 관용어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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