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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고금통의 古今通義] 공천과 파천

중앙일보 2012.03.07 00:00 종합 33면 지면보기
이덕일
역사평론가
지금 각 정당에서 진행하는 공천(公薦)은 사실상 당천(黨薦)이다. 원래 공천이란 말은 인사권이 있는 관아에서 임금에게 추천하는 것을 뜻했다. 문관의 인사권이 있는 이조(吏曹)와 무관의 인사권이 있는 병조(兵曹)를 ‘저울질하는 관아’라는 뜻에서 전조(銓曹)라고 한다.

 전조에서 세 명의 공직 후보자를 국왕에게 천거하는 것이 공천이다. 이를 주의(注擬) 또는 의망(擬望)이라고 하는데, 보통 세 명을 추천하므로 삼망(三望)이라고 불렀다. 가장 점수가 높은 후보자를 일망(一望) 또는 수망(首望)이라고 부르고, 두 번째를 이망(二望) 또는 부망(副望), 마지막 후보를 삼망(三望) 또는 말망(末望)이라고 불렀다. 국왕이 셋 중 적당한 후보자의 이름 위에 점을 찍는 것이 낙점(落點)이다. 때로는 한 명만을 천거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하비(下批) 또는 단망(單望)이라고 했다.

 지금 행해지는 지역경선제는 옛날로 치면 향천(鄕薦)으로서 공천이선(公薦里選)이라고도 한다. 향촌에서 어질고 유능한 인재를 뽑아 중앙에 천거하는 제도다. 조선 후기 학자 윤동수(尹東洙:1674~1739)는 류명(柳蓂)의 묘지명인 ‘감찰 류공 묘표(監察柳公墓表)’에서 “(류명이) 향당(鄕黨:마을)에서 행실이 알맞다고 천거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조선 후기 홍대용(洪大容)은 ‘건정동필담’에서 ‘매년 군·읍(郡邑)에서 행실이 마땅한 자를 뽑아서 조정에 올리면 그중 우수한 자를 택해서 벼슬을 맡기는 것을 향천(鄕薦)이라고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 노론 일당독재가 계속되면서 공천과 향천은 형식적 절차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렇게 세 후보자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임금이 사용할 수 있는 선거권이 특배(特配) 또는 첨서낙점(添書落點)이었다. 특배는 국왕이 주의(注擬) 과정을 생략하고 직접 벼슬에 제수하는 것이고, 첨서낙점은 세 후보자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임금이 직접 후보자의 이름을 써서 임명하는 것이다. 정약용의 연보인 『사암(俟菴)선생연보』에는 정조가 재위 21년(1797) 윤 6월 정약용을 황해도 곡산부사로 첨서낙점했다고 전하고 있다.

 현재 당천을 공천(公薦)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의 공공적 기능을 사회가 인정하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이번 공천에서 탈락한 후보들은 공천이 아니라 사천(私薦) 또는 특정 계파가 공천을 독점한 파천(派薦)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자리는 하나고 후보자는 여럿이니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계파의 눈높이에 맞춘 것으로 보이는 일부 공천자의 경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빼 버리고 첨서낙점하고 싶은 심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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