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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동일본 대지진 그 후 1년 ⑥ 대재앙이 바꾼 에너지 정책 <끝>

중앙일보 2012.03.06 00:12 종합 16면 지면보기
4일 도쿄 도심 시부야에서 열린 원전 반대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이 방호복과 마스크 차림으로 행진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 중단!”이라고 쓰인 우산과 플래카드를 앞세운 시위대원들은 대기 중 방사능 수치를 확인하는 측정기기를 들고 원전 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도쿄 로이터=뉴시스]


도요타자동차 등 일본이 자랑하는 크고 작은 공장들이 밀집해 있는 일본 중부 아이치(愛知)현.

원전 54기 내달 일시 올스톱 … ‘무 원전’ 예습



 도요타자동차 다하라(田原)공장 옆 미카와(三河)만 82만㎡(약 25만 평)의 부지에선 요즘 발전 규모 50㎿(메가와트)의 태양광 발전시설 건설 준비가 한창이다. 아이치현이 미쓰이(三井)화학, 도레이(東レ) 등 7개 기업과 손잡고 추진하는 사업으로, 내년 가을 완공이 목표다. 180억 엔(약 2500억원)이 투입되는 이 시설은 규모 면에서 전 세계에서 ‘톱 10’ 안에 들어간다.



 ‘제조업의 메카’로 불리는 아이치현의 지역경제는 사실상 전력 독점사였던 주부(中部)전력이 쥐락펴락해 왔다. 인근 시즈오카(<9759>岡)현에 위치한 하마오카(浜岡)원전의 안정된 전력 공급이 일종의 생명줄이었다.



 하지만 3·11은 ‘패러다임 시프트’를 가져왔다. “이대로 그냥 가다간 나고야를 중심으로 하는 아이치현은 끝장”이란 위기감 때문이다. 아이치현은 태양광에너지를 활용해 지역 전력수요를 보완하고 남은 전력은 오히려 주부전력에 팔 계획이다. 도쿄공업대학 구로카와 히로시(<9ED2>川浩) 교수는 “일본의 연 평균 태양 복사열(일사량)은 태양광발전 선진국인 독일보다 오히려 많다”며 “솔직히 땅만 확보하면 힘들 게 없다”고 말했다.



 일 환경성 조사에 따르면 일본은 현재 놀고 있는 땅만 잘 이용하면 태양광발전으로 9만7000㎿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연간 1000시간만 발전하면 일본 전체 원전에서 생산되는 발전량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전력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3·11 발생 1년이 지난 요즘 일본의 에너지 정책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그걸 상징하는 ‘사건’이 다음 달 말 벌어진다. 일본의 원자력발전소 54기가 모두 가동을 멈추는 것이다. 일시적이긴 하지만 ‘무원전’ 상태가 되는 건 일본 원자력 역사상 처음이다. 일본의 관련 법규에는 원전들이 13개월마다 운전을 중단하고 정기점검을 받게 돼 있다. 하지만 13개월이 이미 지나 재가동해야 할 다수의 원전들마저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 올 스톱된 상황이다. “우리 지역 원전이 100% 안전하다는 증거를 내 놓으라”는 지자체의 잇따른 반발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일 정부의 발걸음도 서서히 ‘탈 원전’으로 옮겨가고 있다.



 호소노 고시(細野豪志) 원전 담당 장관도 지난달 23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현 원전의 수명은 40년으로 하겠다”고 못 박았다. 이제까지는 원전 수명에 뚜렷한 규정이 없었다. 전력수급상 전력공급의 30%가량을 차지하는 원전을 당장 100% 포기할 수는 없지만 큰 방향은 ‘탈원전’으로 확실히 잡은 것이다. 이다 데쓰야(飯田哲也) 환경에너지정책연구소 소장은 “근거 없는 안전신화가 깨진 만큼 탈원전은 불가피한 흐름”이라고 말했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건 지자체들이다. 지자체들은 “더 이상 국가의 원전정책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3·11 이후 손정의(孫正義) 소프트뱅크 회장이 주도한 ‘태양광에너지 도입’의 기운이 지자체로 빠르게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당장 일본 내 47개 광역지자체는 다음 달 1일부터 집행하는 2012년도 예산 중 519억 엔(약 7200억원)을 ‘재생가능 에너지’ 도입에 할애한다.



 가나가와(神奈川)현은 발전능력 2000㎾의 대규모 태양광발전소(메가 솔라)를 8억6600만 엔(약 120억원)을 들여 건설한다. 니가타(新潟)현의 경우 지난해 가을 태양광 발전소를 개설한 데 이어 올해도 4억 엔을 추가 투입, 발전설비를 증설하기로 했다. 지자체마다 지열·일조시간·풍력 등 저마다 지역특성을 살려 에너지를 챙기고 자체 소비하는, 이른바 ‘지산지소(地産地消)’의 기운이 전국으로 불 번지듯 번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 놓인 과제도 만만치 않다. 일단 도쿄전력 등 전력회사들이 원전에 대한 미련을 아직 버리지 않고 있다. 게이단렌(經團連) 등 재계도 기본적으로 도쿄전력 편이다. 여기에 전력회사에 전력독점권을 주고 ‘뒷돈’을 챙겨 온 정치인들의 존재도 걸림돌이다.



 이 때문인지 7월부터 발효되는 ‘재생가능 에너지 특별조치법’은 법안만 통과됐지 9개월 동안 사실상 잠자고 있다. 간 나오토(菅直人) 전 총리가 추진해 통과시켰던 이 제도는 태양광 등 재생가능한 자연에너지로 생산된 전력을 전력사들로 하여금 전량 고정가격으로 일정 기간 사들일 것을 의무화한 것이다. 예컨대 개인도 자기 집 지붕에서 태양광으로 전력을 비축한 뒤 이를 팔아 돈을 벌어들일 수 있게 된다. “재생가능 에너지는 돈벌이가 되겠다”며 여러 대기업들이 달려들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일 정부의 행보는 여전히 느리기만 하다. 재생가능 에너지를 전력회사로 하여금 얼마의 기준가로 사들이게 한다는 내용도 정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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