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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차르의 귀환

중앙일보 2012.03.06 00:00 종합 33면 지면보기
홍완석
한국외대 교수·러시아연구소장
2008년 개정헌법에 따라 처음으로 임기 6년의 국가 수장을 선출하는 러시아 대선이 푸틴의 승리로 끝났다. 지난 4일 치러진 대선 결과는 9개 시간대의 광활한 영토 때문에 최종집계에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여론조사기관과 현지 언론은 이미 푸틴의 1차 투표 당선(50% 이상 득표)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번 러시아 대선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프랑스·중국·인도·미국 등 2012년 예정된 세계적 주요 강대국들의 권력 변동을 가늠하는 첫 번째 국제적 이벤트라는 점이다. 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영향을 받아 유례없는 반(反)푸틴 정서 속에서 치러졌다는 점도 주목된다. 그리고 이미 재임에 성공한 대통령이 자신의 후계자에게 대권을 넘겨주었다가 대통령직 복귀를 시도하는 세계 정치사 초유의 실험이었다는 점도 국제적 관심을 끈 주요 요인이었다.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국민들은 결국 푸틴의 크렘린 재입성을 허락했다. 대다수 국민들은 사실상 푸틴이 권력을 장악해온 기간에 심화된 빈부격차, 부정부패 만연, 언론 통제, 권위주의적 통치에 염증을 느껴왔다. 반면 정치적 안정과 경제의 고도성장 그리고 위대한 강대국 러시아의 세계적 위상 강화를 구현할 마땅한 대체 후보를 찾기 어렵다는 현실이 작용했다. 냉철한 현실인식이 푸틴에 대한 높은 지지율로 연결되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말하자면 정책에 대한 공고한 지지보다는 대안 부재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란 측면이 우세했다. 푸틴에 대한 일종의 신임투표 성격이 강했다.



 푸틴은 1차 투표에서 당선을 확정지음으로써 대권 복귀를 위한 정치적 정당성과 향후 안정적인 정국 운영을 위한 동력을 확보했다. 문제는 대선 과정에서 드러난 민심 이반이다. 푸틴에 대한 지지 철회 또는 환멸이다. 시위대가 외친 “푸틴 없는 러시아”라는 구호에서 잘 확인된다.



 국민적 동의를 통해 ‘21세기 차르(러시아 황제)’의 귀환을 추인받았지만 집권 3기 푸틴에게는 적지 않은 도전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권력을 연방 중앙에, 대통령 1인의 수중에 집중하여 ‘강한 국가’를 만들고 러시아의 국가성을 강화해 국제적 위상을 높이겠다는 푸틴주의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와 비례해 푸틴의 통치와 정책에 대해 국민들의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저항 추세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러시아 정국은 오랜 기간 국가정책의 근간이던 ‘푸틴주의’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루스키(러시아 민족)들이 푸틴에 대해 느끼는 피로감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통치이념의 설계와 정치체제의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 이제 푸틴은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메드베데프 현 대통령이 씨앗을 뿌린 자유주의적 개혁을 강요 받게 되었다. 이런 국민적 여망을 외면할 경우 지난 12년 동안 푸티노믹스(Putinomics·푸틴의 경제정책)의 열매를 먹고 성장한 중산층의 강한 역공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 정치와 여론지형에서 자유주의적 개혁 이외에 다른 선택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앞으로 푸틴 집권 3기를 관전하는 초점은 시민적 자유와 권리의 보장, 중앙집권체제의 완화와 시장 메커니즘을 북돋워주는 방향으로의 통치시스템의 표지 전환이 과연 어떤 속도와 진폭으로 이루어질 것인지에 모아진다. 그 과정이 안정성을 담보하면서 점진적으로 진행될 것인지, 아니면 통상 자유화에 수반되는 정치사회적 불안정을 초래할 것인지가 관건인데, 이는 전적으로 푸틴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고 본다.



 자유주의적 개혁의 길은 점진적이든 전격적이든 쉽지 않은 험로이기에 푸틴 집권 3기는 총리대신의 가면을 벗은 차르의 또 다른 지도력이 시험 받는 시기가 될 것이다.



홍완석 한국외대 교수·러시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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