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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정변중독증

중앙일보 2012.03.06 00:00 종합 34면 지면보기
서승욱
도쿄특파원
정변(政變)중독.



 동일본대지진 1주년을 맞아 인터뷰한 이오키베 마코토(五百旗頭眞·69) 부흥추진위원회 위원장은 일본 부흥의 발목을 잡는 주범을 이 한마디로 정리했다. ‘정치적 안정보다는 격변을 선호하고, 리더십 교체를 위해 현 정부를 끊임없이 흔들어대는 경향’이란 의미로 쓴 단어다.



 정치학자 출신인 그는 자위대 간부들을 길러내는 일본 방위대학교의 교장이다.



 “매년 총리가 바뀌고 톱 리더십이 약한 건 일본 사회의 정변중독 경향 때문이다. 정부가 일을 잘하도록 뒷받침하는 게 아니라 다음 정권을 누가 잡을지에만 관심을 쏟고 몰두한다. 현 정부가 일을 잘하는 것이 국민의 이익이란 기본을 잊고 ‘못한다, 안 된다’고 나쁜 점만 들춰내는 건 병이다….”



 그는 간 나오토(菅直人) 전 총리에 의해 부흥의 비전을 만드는 민간 전문가 조직 일본부흥구상회의의 수장으로 발탁됐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의 신임 속에 부흥추진위원장직을 계속 맡고 있으니, 아무래도 현 민주당 정권에 우호적일 수밖에 없다.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일본이 처해 있는 정치적 현실 자체는 그의 지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



 1년에 한 번씩, 6년 동안 여섯 명의 총리를 배출한 일본 반장선거식 정치는 이미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됐다. 여섯 명 중 다섯 번째인 간 총리 때 대지진이 터졌지만, 복구계획을 짜는 도중에 사임 여론을 버티지 못하고 물러났다. 이 바람에 작년 7월에 나왔어야 할 지진 복구 예산과 관련법 처리가 12월로 미뤄졌다. “복구 와중에 총리가 그만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이와테(岩手)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 시장의 말처럼 피해 지역 복구 현장엔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바통을 이어받은 노다 총리 역시 비슷한 운명을 가고 있다. 당내 기반이 약한 그는 당 안팎에서 뭇매를 맞으며 취임 6개월 만에 정권 유지의 마지노선이란 30% 아래로 지지율이 떨어졌다. 이른바 ‘낙마의 정석’을 밟고 있는 것이다.



 복구와 부흥의 사령탑은 노다 총리지만, 국민들의 관심은 백마를 타고 올 새로운 구세주에만 쏠려 있다. ‘젊은 고이즈미’로 불리는 43세의 보수주의자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이 직원들의 e-메일을 멋대로 뒤지든 무엇을 하든 그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이 틈에 ‘습관적 망언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80) 도쿄도지사는 보수층을 결집시켜 총리 자리에 오르겠다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자민당 간사장인 아들과 진흙탕 싸움까지 벌이면서 말이다.



 일본 사회의 집단적인 정변중독이 없었더라도 일본 정치가 지금처럼 혼란스러웠을까. ‘정치의 수준은 바로 그 나라 국민들의 수준’이라는데, 임기 초 치솟았다가 내리막길을 걷는 우리 지도자들의 일관된 현실은 지도자의 무능 때문일까, 아니면 혹시 우리에게도 일본과 같은 기질이 조금은 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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