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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비아 돌로로사를 오르는 MB

중앙일보 2012.03.06 00:00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철호
논설위원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는 예루살렘에 있는 800m의 오르막길이다. 라틴어로 ‘고난의 길’ 또는 ‘슬픔의 길’이다. 로마 총독인 본디오 빌라도에게 사형을 선고받은 예수는 십자가를 지고 이 길을 걸어 골고다 언덕까지 올랐다. 로마 군사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가시관을 씌우며 조롱했다. 길거리의 군중도 야유를 퍼부었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도 임기 마지막엔 어김없이 비아 돌로로사를 걸어갔다. 야유와 조롱 속에 20% 남짓한 지지율을 짊어지고서….



 이명박(MB)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이미 반대세력은 ‘가카새끼’의 저주를 퍼붓고 있다. 청계천에는 MB 흔적 지우기가 한창이고, 4대강 사업에는 현미경을 들이댄다. 친이계 제자들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부인했다. 새누리당의 공천 경력란에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의 인연은 76번이나 등장하는 반면, MB와의 인연을 쓴 경우는 ‘0’이다. 검찰은 빌라도 총독처럼 “나는 죄 없다”며 손을 씻고 처형을 지시할 기세다. MB의 형님과 아들을 향한 수사의 칼날에는 ‘검찰 개혁’에 방어선을 치려는 조직 본능이 꿈틀댄다. YS·DJ·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렇게 당했다.



 어느새 “마지막까지 열심히 뛰겠다”는 MB의 다짐이 덧없이 들린다. 청와대의 존재감은 희미해졌다. 그나마 김황식 총리·김관진 국방부 장관·김석동 금융위원장 등이 버틸 뿐이다. 모두 MB와 인연이 없어 후(後)순위로 선임된 인물이다. 십자가를 대신 져준 시몬이나, 물수건을 건넨 베로니카 여인이랄까…. 물론 전임 대통령들도 비아 돌로로사를 피하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실패하고 퇴임 뒤에 한결같이 비극을 맞았다. MB가 이런 악연을 끊는 첫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이를 위해 언덕을 오르는 자세부터 고쳐 잡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선, 해외 순방 대신 지방 순례에 나서기를 바란다. 국내 정치에 신물이 난 전임자들도 임기 말이면 해외로 나다녔다. 명분은 ‘외교’지만, 국민들에겐 ‘도피’로 비쳤다. MB는 오히려 구제역 매몰지나 연평도 등을 ‘1박2일’로 순례하면 어떨까 싶다. 제주 강정 해군기지와 동남권 신공항 지역도 빼놓을 수 없다. 역대 중국 지도자들은 순수(巡狩)를 중요한 전통으로 여겼다. 지방을 돌며 민심을 다독였다. 물론 관계 장관들을 몰고 다니는 요란한 행차는 금물이다. 최소한의 수행원들과 허름한 민가에서 묵는 풍경도 한번쯤 보고 싶다.



 다음으로, ‘내 탓이오’의 낮은 자세다. 지난해 아덴만 작전이 성공하자 MB는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반면 빈 라덴 제거작전 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웨스트 윙 한쪽 구석의 간이의자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가운데 의자는 작전 실무자인 준장의 차지였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군 통수권자의 모습에서 미국의 힘이 묻어난다. MB가 기자회견에서 주요 현안을 둘러싼 야권 지도부의 ‘말 바꾸기’를 정면 비판한 것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오바마는 거꾸로 빈 라덴 사살을 제일 먼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에게 전화로 알렸다. 반대 정당 출신의 전임자에게 작전 성공의 절반을 돌린 것이다. 과연 어느 쪽의 울림이 더 클까.



 올해는 매우 중요한 한 해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언제 도질지 모르고, 넘쳐나는 복지 포퓰리즘에 최후의 저지선도 구축해야 한다. 이런 삼각파도 속에서 MB는 비아 돌로로사를 걸어가야 한다. 배가 난파 위기를 맞으면 노련한 선장은 주저 없이 모든 화물을 바다에 던진다. 이른바 ‘제티슨(jettison)’이다. 승객의 생명을 제외한 아무리 값비싼 물건이라도 폐기하는 게 원칙이다. 배의 무게를 줄이는 극약처방을 통해 최대한 복원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MB도 이런 지혜를 따랐으면 한다. 과감히 주변을 정리하고, 마음을 비우고, 낮은 자세로 임했으면 한다. 얼핏 보면 온 사방에 조롱과 야유가 진동하는 듯 보인다. 세상인심은 원래 사나운 법이다. 하지만 MB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평균을 웃도는 경제 성과를 올린 사실을 조용히 기억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묵묵히 비아 돌로로사를 걸어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골고다 언덕에 이르는 다른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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