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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내가 주류다

중앙일보 2012.03.06 00:00 경제 4면 지면보기


‘낮은 도수, 그리고 투명한 술’. 지난해 술 소비에서 나타난 소비자의 기호다. 중앙일보가 주류 회사들과 한국주류산업협회의 국내 술 소비 관련 자료, 그리고 한국무역협회의 술 수입 통계를 통해 파악한 결과다. 양주나 소주처럼 독한 술은 덜 마시고 대신 막걸리나 맥주, 와인·사케 같이 순한 술을 많이 찾았다. 양주의 경우 갈색 위스키는 판매량이 줄었으나 투명한 보드카와 진은 전년 대비 20% 이상 소비가 늘었다. ‘양폭’(위스키 폭탄주)이 ‘소폭’(소주 폭탄주)에 조금씩 밀려나고, 또 칵테일 한잔을 즐기는 소비자가 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주류업계에서는 “건강을 생각하는 문화가 뚜렷해지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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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주=지난해 모두 32억7225만 병(360mL 기준)이 팔렸다. 2010년(32억7447만 병)보다 살짝(0.1%) 소비가 줄었다.



  세부적으로는 소주 안에서도 ‘높은 도수’와 ‘낮은 도수’의 실적이 엇갈렸다. 알코올 도수 20도 안팎인 보통 소주는 2010년 31억3462만 병에서 지난해 30억191만 병으로 판매가 4%가량 감소했다. 반면에 17도 아래인 순한 소주는 같은 기간 판매량이 1억3763만 병에서 2억7556만 병으로 두 배가 됐다. 술 전체뿐 아니라 소주만 놓고 볼 때도 낮은 도수를 찾는 경향이 뚜렷해진 것이다. 약한 소주 중에 하이트진로의 ‘즐겨찾기’(15.5도)는 전년보다 판매가 71% 증가했고, 경남을 기반으로 한 무학의 ‘좋은데이’(16.9도)는 114% 성장했다.



 소주업체별 시장점유율에서는 하이트진로가 47.1%로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2008년 51.3%로 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장악했던 때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1위와는 뚝 떨어져 있지만, ‘처음처럼’을 내세운 롯데주류(15.6%)와 ‘좋은데이’의 무학(12.3%)은 계속 시장 점유율을 키우는 형세다.



 ◆맥주=‘여름은 미웠지만 늦가을은 예뻤다’. 맥주 업체들이 하나같이 하는 소리다. 지난해 여름 내내 내린 비로 맥주 장사가 신통찮았다. 그러던 것이 11월 5일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25.9도까지 놀라가는 등 늦가을까지 반팔이 어울리는 날씨가 이어진 덕에 연간 판매량(500mL 34억7750만 병)은 전년 대비 0.8% 증가했다.



 맥주산업 안에서는 오비맥주가 하이트진로의 1위 자리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추격했다. 지난해 내수시장 점유율이 하이트진로 50.3%, 오비맥주 49.7%였다. 한 해 전만 해도 점유율 차이가 10%포인트 넘게 났으나 지난해엔 0.6%포인트로 좁혀졌다. 하이트진로 측은 “지난해 9월에 하이트맥주와 진로가 합병하기 몇 달 전부터 합병에 신경을 쏟느라 마케팅과 신제품 개발이 조금 소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이렇다 할 신제품 맥주를 내놓지 못했다. 반면에 오비맥주는 3월 선보인 ‘OB골든라거’가 출시 200일 만에 1억 병 넘게 팔리면서 하이트진로를 턱밑까지 추격하게 됐다. 지난해 내수뿐 아니라 수출까지 포함한 출고량에서는 오비맥주가 18억6900만 병으로 하이트진로(18억5020만 병)를 넘어섰다.



 ◆양주=양주류는 2008년을 정점으로 계속 소비가 줄고 있다. 특히 윈저·임페리얼·스카치블루·발렌타인·조니워커 같은 스카치위스키는 2008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새 판매량이 17% 감소했다.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비싼 술을 덜 찾고, 또 건강을 생각해 독한 술을 자제한 결과다. 그간 한국이 유독 위스키를 많이 마셨던 만큼 앞으로는 좀 덜 마시게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위스키 업체들도 인식하고 있다. 임페리얼·발렌타인·시바스리갈 등을 수입·제조·판매하는 페르노리카코리아의 유호성 마케팅본부장은 “국내에서 위스키 시장을 키우기보다 고급 위스키 판매량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위스키와는 달리 소비자들이 더 많이 찾게 된 양주들이 있다. 보드카가 그렇다. 700mL들이 기준으로 2010년 91만 병이 팔렸던 보드카는 지난해 이보다 47% 많은 134만 병이 소비됐다. 보드카는 주로 칵테일용으로 쓰인다. 싱글몰트 위스키 역시 판매가 늘고 있다. ‘글렌피딕’ 브랜드의 강윤수 홍보대사는 “해외에서 싱글몰트 위스키를 맛본 유학파와 직장인들이 국내에서도 싱글몰트를 찾고 있다”며 “과거 스카치위스키에만 쏠렸던 입맛이 다변화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와인=역시 ‘소비는 가격의 함수’였다. 한국과 유럽연합(UE) 간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계기로 유럽산 와인 값이 10% 안팎 떨어지면서 소비가 늘었다. 프랑스 와인 수입액은 전년 대비 20%, 이탈리아산은 15%, 스페인은 27% 증가했다. 유럽산에서 시작된 와인 가격 인하는 올 들어 칠레 쪽으로 번졌다. 금양인터내셔널·나라셀라·롯데주류 같은 대형 수입사들이 칠레산 와인 값을 내렸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은 이달부터 ‘1865 싱글 빈야드 카베르네 소비뇽’과 ‘몬테스 알파 카베르네 소비뇽’을 종전보다 10% 싸게 살 수 있게 됐다. ‘1865…’ ‘몬테스알파…’은 지난해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레드 와인이다.



 미국산 와인 역시 이달 15일로 예고된 한·미 FTA 발효와 더불어 가격 인하 초읽기에 들어갔다. 최근 들어서는 주세법까지 개정돼 와인 값을 더 내릴 수 있게 됐다. 수입업체들이 직접 소매를 할 수 있도록 길을 튼 것. 이렇게 하면 유통단계가 줄어 가격인하 여력이 생긴다.



 ◆막걸리=지난해 1인당 소비량은 750mL 들이 기준 12.5병. 한 해 전(11.5병)보다 8% 늘었다. 막걸리 열풍이 불었던 2009년과 2010년 연속해 판매량이 50% 이상 증가했던 데 비하면 주춤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다르다. 수출이 확 늘었다. 2010년 1910만 달러에서 지난해 5274만 달러로 거의 세 배가 됐다. 대부분 일본으로 갔다.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 때문에 외국 먹거리에 눈을 돌린 일본인들이 사케 대신 비슷한 도수의 막걸리를 택했다. 서울탁주제조협회 이봉흠 상무는 “일본에서 막걸리 인기를 이어가기 위해 과즙을 섞은 막걸리, 알코올 도수 3도짜리 막걸리 등 신제품을 내놓고 현지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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