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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잘나갔던 박세리 매니저, 지금 서울서…

중앙일보 2012.03.06 00:00 경제 1면 지면보기
던킨도너츠의 이규동 큐그레이더가 커피 원두를 테스트하고 있다. 생두의 등급을 매기고 소비자에게 내놓을 커피 상품을 기획하는 큐그레이더가 최근 부쩍 늘었다.
전 세계에 1500여 명. 그중 4분의 1인 370명이 한국인. 커피 원두 감별사인 ‘큐그레이더(Q-Grader)’ 현황이다. 불과 2년 전인 2009년만 해도 국내 4명뿐이던 큐그레이더는 커피전문점 붐과 함께 폭발했다. 미국 ‘스페셜티커피협회’ 산하 ‘커피품질연구소(CQI·Coffee Quality Institute)’가 내는, 까다로운 시험을 거쳐야 자격증을 받는 데도 한국인들은 공부에 공부를 거듭해 줄줄이 합격했다. 지난해 전국 커피전문점 1만2380개, 원두 수입액 4억2000만 달러(4700억원)를 기록한 ‘커피 공화국’이 유망직을 새로 낳은 셈이다.


전 세계 ‘큐그레이더’ … 넷 중 하나는 한국인
커피공화국 신풍속 … 1500명 중 370명 차지

 큐그레이더는 외국의 커피 농장에 직접 가서 볶기 전의 커피콩(생두)을 고르는 일부터 한다. 던킨도너츠의 큐그레이더 이규동(31)씨의 경우, 최근 3년 동안 100여 곳의 커피 농장을 방문했다. 현지 작황을 보고 적절한 등급의 커피콩을 고른 뒤 가격을 흥정해 구매하는 일까지 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이씨는 ‘커피 커핑(Coffee Cupping) 테스트’란 것을 하루 20~30번 반복한다. 볶은 원두를 갈아 물을 부은 후 맛과 향을 점검하는 일이다. 생두에서부터 원두가 된 뒤까지 커피콩의 품질을 완전히 책임지는 것이다. 이씨는 “만들어진 재료로 현장에서 집을 짓는 사람이 바리스타라면, 집 지을 재료를 고르고 설계를 담당하는 사람이 큐그레이더”라고 설명했다.



 국내에는 큐그레이더 학원까지 생겼다. 2009년 자격증을 받은 ‘1세대’ 길성용(42)씨가 지난해 서울 중구에 학원을 열었다. 1990년대에 골프선수 박세리의 매니저로 일하다 미국에 큐그레이더가 있다는 것을 알고 발 빠르게 자격증을 땄다. 현재 길씨의 학원 수강생은 300명. 시험 정보를 알려주는 인터넷 카페에는 회원이 1만2000명이다.



길씨는 “자격증 취득자의 90%가 생두를 직접 볶아 파는 커피숍을 창업한다”고 전했다. 함께 학원을 운영하는 박태훈(50)씨는 “한국 소비자 중 커피 원두의 향과 맛을 구분해 내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에 큐그레이더의 존재가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프로급 손님’이 늘어 이들의 입맛을 맞춰줄 큐그레이더가 많이 필요해졌다는 얘기다.



 실제 커피를 주력 상품으로 내세우는 프랜차이즈들은 앞다퉈 큐그레이더를 채용하고 있다. 매해 커피 원두를 1000t씩 해외에서 들여오는 던킨도너츠에서는 2010년 직원 세 명이 자격증을 얻어 큐그레이더로 변신했다. 이전까지는 미국 본사의 큐그레이더를 통해 원두를 구입했지만 지금은 이들 세 명이 감별해 직접 들여온다. 카페베네도 네 명의 큐그레이더를 보유하고 있다. 신생 브랜드인 카페 드롭탑 역시 지난해 1호점을 오픈하면서부터 큐그레이더를 채용했다.



큐그레이더



커피 품질(Quality)의 등급(Grade)을 정하는 사람이라는 뜻. 커피의 신맛·짠맛·단맛 강도를 맞히고, 커피 속 최대 9가지 향을 구분하는 시험을 통과해야 자격이 주어진다. 맛만으로 원산지를 맞히는 시험도 치러야 한다. 2010년 시험을 통과한 이규동 큐그레이더는 “닷새 동안 시험을 치렀는데, 한 달 전부터 짠 음식을 전혀 먹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험은 미국에서 열린다. 한국은 미국과 영상 장치를 연결해놓고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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