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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맞는 집’ 지으려면

중앙일보 2012.03.05 23:00
마당에서 들어다 본 살구나무 윗집 거실 모습이다. 동서로 긴 대지를 고려해 남쪽 마당을 확보하는 대신, 거실 동쪽과 식사실 서쪽으로 정원이 보이도록 마당을 나눠 설계했다.



잡지·인터넷 참고해 마음 속 ‘좋은 집’ 그리고, 비슷한 집 만든 건축가 찾으세요

“얼마 전 일 때문에 알게 된 중국계 호주인이 제게 묻길, 한국의 집들은 왜 모두 똑같이 생겼냐고 하더군요.” 충남의 금산주택을 설계한 스튜디오 가온 임형남 대표의 말이다.



한국은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집 검열한다. ‘이렇게 하면 건축주가 싫어하겠지?’란 생각에서다.

선택의 폭이 좁다. 단독주택 시장은 비싼 건축가의 작품 주택 아니면 집장사의 날림공사 집으로 양극화돼 있다. 중간이 없다. 집을 설계하는 건축가들도 자신의 디자인을 자체

다양성이 없는 것은 아파트에 극을 이룬다. 그나마 좋은 현상은, ‘아파트 불패’ 신화가 최근 무너지면서 새로운 집을 찾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점이다.



“금산주택 역시 지난해가 아니었다면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임대표는 말했다. 지난해는 아파트에 대한 회의가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사람들의 의식이 급속히 바뀌던 때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좋은 집 짓기는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금산주택의 김경애씨와 살구나무 윗집과 아랫집의 박인석·박철수씨는 좋은 집을 짓는 첫째 조건으로 “좋은 건축가를 만나라”고 조언했다.



건축가에게 집을 의뢰할 땐 설계비가 든다. 젊은 건축가들의 경우 통상 3000만~3500만원 선의 설계비를 받는다. 살구나무집을 설계한 조남호 건축가는 이름이 알려진 편으로 윗집 아랫집이 각각 5000만원의 설계비를 지불했다.



“간혹 설계를 서비스로 해주겠다는 시공업자도 있는데 이는 일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고 박인석씨는 설명했다. 설계도만 있으면 시공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집을 짓고 10년은 늙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건축가가 아니라 시공업자에게 일을 의뢰한 이들이다.



건축가는 설계를 현실로 구현해내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해결하고 관리한다. 공장이 생산을 중단한 재료가 있으면 대응하고, 조명이나 부엌가구, 바닥재 업체의 시공 스케줄도 조정한다. 현장에서 생긴 예상치 못한 변수를 해결하는 것도 건축가다. 시공업자와 건축주 사이를 조율하는 것은 물론이다.



(좌)약수터처럼 물이 흐르는 살구나무 아랫집 정원은 건축가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것이다. 공사를 시작해 땅을 파자 지하수가 나왔는데, 인위적으로 막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도록 대나무와 호스로 연결했다. 또 살면서 산딸기와 돌나물 같은 식물을 옮겨 심어 자연스럽고 소박한 정원을만들었다.(우)살구나무아랫집 계단 아래에 있는 창에서 바라본 마당의 모습이다. 창 밖 오른쪽에 보이는 한식 담장은 안마당을 구분해주는 역할을 한다. 건축가는 설계도에서 그렸던 길이가 막상 현장에서 보니 부담스럽다며 조금 낮춰 수정했다.




사실 박철수씨와 박인석씨의 직업은 서울시립대학교와 명지대학교의 건축학부 교수다. 박철수씨는 “우린 건축학과 교수라 알고 지내는 건축가도 시공자도 많다”며 “우월적인 지위에 있으면서도 설계비를 각자 5천만 원씩 낸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역설했다. 건축가의 관찰과 지혜, 중재를 통해 튼튼하고 짜임새가 있는 좋은 집을 짓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집이 완공되고 『아파트와 바꾼 집』이란 책을 쓴 것도 자신들의 사례가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하는 바람에서였다.



건축가를 찾았다면 나의 예산을 말하고 그에 맞는 좋은 집을 설계해 달라고 의뢰한다. 예산에 맞는 설계는 건축가의 몫이다. 박인석씨는 “건축가에게 보통 수준의 공사비로 좋은 집을 짓겠다고 말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 아니다”라며 “진지하고 좋은 건축가일수록 적절한 비용으로 좋은 집을 짓겠다는 사명감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럼 좋은 건축가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박인석씨는 “승효상, 민현식, 김인철처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나올만한 유명한 건축가에게 무턱대고 전화해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물론 바빠서 십중팔구 의뢰를 받지 못하겠지만, 그들에게 젊고 진지한 건축가를 소개해달라고 청하는 것이다. 대형 서점을 찾아가 건축전문잡지를 찾아보거나 인터넷을 검색해도 좋다. 잡지를 보며 마음 속에 품었던 내 집의 그림과 비슷한 집을 설계한 건축가에게 연락하는 것이다.



집을 짓겠다고 결심했을 때 조심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주변인의 경험과 지식에 너무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박철수씨는 “살구나무집을 지을 때 극단적인 두 가지 견해와 맞닥뜨렸다”며 “하나는 ‘진짜로 평당 500만원에 실용적인 집을 지을 수 있겠냐’는 건축가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평당 ‘500만원은 너무 비싸고 300만원이면 충분하다’는 일반인이었다”고 말했다.



평당 300만원의 공사비는 ‘적정가격’이라며 대한민국에 유포된 가격이다. 실용성을 갖추지 않은 채 무수히 만들어지고만 있는 집장사 집의 가격이다.



박철수·박인석씨의 바람은 “중간 가격의 실용적인 집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살구나무 윗집과 아랫집이 그 시초가 되었으면 했다. 그런 의미에서 살구나무집은 건축가는 물론이고 건축주와 시공업자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지난 1월 입주하고 3월까지 크고 작은 보완공사와 작업이 이뤄졌다. 보완공사는 당연한 일이다. 집이 새땅에 올려진 뒤에는 한 두 해 정도 스스로 몸을 추스르며 안정을 갖는 시간이 필요하다.



박철수씨는 “입주하고 첫 겨울에는 창문 프레임에 약간의 결로(이슬 맺힘)가 있었다”고 말했다. “건축가는 이슬 맺힘의 크기가 어느 정도냐 묻더니, 그 정도면 충분히 괜찮다고 하더라. 한 해가 지나면 더 괜찮을 거라며. 실제로 올해 겨울엔 결로가 없었다.” 건축가의 말을 신뢰하고 기다린 결과였다.



금산주택과 살구나무집의 또 다른 공통점은 건축주들이 집이 완공될 때까지 큰 소리를 내본 적이 한번도 없다는 것이다. 두 경우 모두 건축가와 신뢰가 쌓인 시공업자를 소개받았고, 갈등이 될만한 일은 건축가가 슬기롭게 조율했다.



(좌)금산주택 마루에서 바라본 진악산. “집을 뒤로 조금 밀어서, 산과 집 사이에 마당을 두고 산을 떨어져볼 수 있게 했다”는 것이 스튜디오 가온 임형남 대표의 설명이다.(우)마당에서 바라본 금산주택. 오른쪽 박스형 나무건물은 여름용 샤워장이다. 어린 시절 한 우물을 여러 집이 같이 써, 내 집 마당에 있는 우물을 꿈꿨다는 김정애씨의 남편이 요청한 것이다. 천장이 뚫려 있어 하늘을 보며 샤워 할 수 있다.




건축가와 건축주로 만났지만 한 번 맺은 인연은 계속 이어진다고 박인석씨는 말했다. “지난 설에는 시공업자가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또 며칠 뒤에는 건축가가 케이크 들고 찾아와 날이 추운데 불편한 점이 있진 않은지 묻더라. 잘못 지은 집은 평생 욕을 하고 원수가 되지만, 그 반대는 좋은 인연으로 이어진다.”



보완공사가 끝나자 집은 점점 집다워졌다. 박철수씨는 “지난해 아내가 심은 해국이 올해 꽃을 피우고, 큰 애가 산에서 가져온 산딸기가 마당에 번졌다”며 “앞으로 가족의 기억이 더 쌓이면 고향집 같은 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세라 기자 slwitch@joongang.co.kr

/사진=건축전문사진작가 박영채(사진 1·3·4·5), 동녘출판사(사진2)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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