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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마초 강조하는 까닭은 몸 작아 어릴적…

중앙일보 2012.03.05 00:56 종합 14면 지면보기
4년 만에 대통령 복귀가 확실시되는 블라디미르 푸틴(60) 러시아 총리의 개인사(史)는 격동의 러시아 현대사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범한 노동자 가정 출신인 그는 소련 붕괴와 신러시아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결코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던 정치적 환경을 극복하고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로 떠올랐다. 2000~2008년 대통령을 지낸 푸틴은 이번 대선을 통해 6년 연임으로 2024년까지 절대 권력자로 군림할 수 있게 됐다. 벌써부터 ‘21세기 차르(러시아 황제)’라는 얘기가 나온다. 푸틴은 소련 제국 부활을 꿈꾸며 대내외 정책에서 한층 강경한 노선을 걸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러시아 대선 … 푸틴 누구인가] 오일머니로 러시아 부흥 … 적수 없는 절대 권력자 군림

‘21세기판 러시아 차르’라 불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4일 치러진 대선을 통해 크렘린에 복귀할 것이 확실시된다. 사진 ① KGB 요원 훈련을 받을 당시의 푸틴(오른쪽). ② 1983년 류드밀라 여사와 결혼할 때의 모습. ③ 1991년 12월 31일 대통령직을 전격 사퇴한 보리스 옐친(왼쪽)이 권한대행에 임명한 푸틴에게 러시아 헌법을 전달하고 있다. ④ 2001년 2월 27일 한국을 방문한 푸틴이 청와대 환영만찬에서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건배하고 있다. ⑤ 웃통을 벗은 채 망원경이 장착된 총으로 사냥을 하고 있는 푸틴. [중앙포토]<사진크게보기>


 푸틴은 소련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사망하기 다섯 달 전인 1952년 10월 러시아 혁명의 발상지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화장실과 부엌을 이웃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레닌그라드의 작은 아파트에 살던 푸틴은 체구가 작아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기 일쑤였다. 방과 후 러시아 격투기인 삼보와 유도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푸틴은 대통령이 된 뒤에도 마초적인 이미지를 과시하기 위해 종종 유도 시범을 보였다. 이뿐만 아니라 군용기를 조종하고, 시베리아 오지의 강에서 가슴을 드러낸 채 낚시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도 공개하곤 했다.



 그는 75년 레닌국립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소련 정보기관인 KGB(소련 국가보안위원회)에 들어갔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시대인 85년 KGB 동독 드레스덴 지부로 발령받아 독일이 통일된 90년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고향으로 돌아온 푸틴은 모교인 레닌그라드대에서 정보요원으로 일했다. 당시 레닌그라드 시장이었던 대학 스승 아나톨리 솝차크는 푸틴에게 행정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국제문제 보좌관과 대외관계위원장 자리를 맡겼다. 이는 푸틴이 중앙정계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91년 말 소련이 붕괴된 이후에도 솝차크 시장 밑에서 경험을 쌓은 그는 모스크바로 옮겨가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눈에 띄었다. 크렘린 비서실 제1부실장을 거쳐 98년에는 KGB 후신으로 창설된 FSB(연방보안국) 국장에 임명됐다. 이듬해에는 총리로 발탁됐으며 곧이어 12월 31일 옐친의 갑작스러운 하야 발표 후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다. 당시 때맞춰 불거진 체첸 분쟁에서 강인한 인상을 심어준 푸틴은 2000년 3월 대선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푸틴의 집권 초기만 해도 그의 성공을 점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권력 구조를 중앙집권적으로 바꾸고 보리스 베레좁스키 같은 옐친 시대 크렘린 실력자들을 제압하면서 강력한 러시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모스크바 극장 인질극을 신속히 마무리하는 등 인기가 절정을 치달아 한때 지지율이 83%까지 치솟았다.



 2004년 3월에는 71% 득표로 재선에 성공했다. 푸틴은 집권 2기에 민영기업의 재국유화, 대표적 올리가르히(산업금융재벌)인 유코스 회장 미하일 호도르콥스키를 부패와 탈세 혐의로 구속하는 등 절대권력을 휘둘렀다. 유가 급등에 힘입어 러시아 경제는 회복을 넘어 부흥기를 누렸으며 중산층은 두터워졌다. 앞으로 유가가 다시 떨어지기라도 하면 푸틴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대통령 재임 중 푸틴은 언론 검열을 강화하고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하는 등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외적으로도 친서방화한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그루지야)에 가스 공급을 중단하거나 군사 공격을 감행하는 등 강수를 폈다.



 푸틴의 3선에 반대하는 시위가 지난해 12월 총선을 전후로 자주 벌어지면서 그의 인기가 일시적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대신할 만한 강력한 리더가 없다는 것이 이번 선거에서 드러났다.



  그는 지난달 23일 모스크바 유세에서 강력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연설을 했다. 푸틴은 “우리는 정복자들의 국가다. 조상 대대로 그런 유전자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우리는 다시 승리할 것이다”고 소리쳤다. ‘강한 러시아주의’와 새로운 내셔널리즘의 도래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일각에선 이번 대선이 푸틴 시대의 ‘시작의 끝(beginning of the end)’이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내정의 불확실성은 대선이 끝나고 가시화할 가능성이 크다.



한경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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