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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탈북자보다 국물녀?

중앙일보 2012.03.05 00:44 종합 32면 지면보기
남윤호
정치부장
최근 화제가 된 이슈들을 구글의 검색창에 넣어 봤다. 얼마나 많은 문서가 검색되느냐로 세상의 관심 방향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탈북자. 약 385만 건이 검색돼 나왔다. 이번엔 며칠 전 논란을 불러일으킨 ‘국물녀’를 쳐봤다. 약 1150만 건. 두 이슈는 서로 관계도 없고, 견줄 만한 성격도 안 된다. 탈북자 문제는 사람의 목숨과 직결된 인권 이슈다. 식당에서 뛰어다니던 아이가 뜨거운 국물에 화상 입은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그런데 세상의 관심은 어디에 쏠렸나. 우리는 인터넷에서 어떤 얘기를 더 많이 소비했나.



 탈북자는 오프라인 이슈고, 국물녀는 온라인 이슈라고 해석하는 건 억지다. 신문을 만드는 입장에서 보면 탈북자 문제에 대한 독자 반응은 의외로 덤덤하다. 미국산 쇠고기에 뒤집어지고, ‘도가니’에 들끓던 데 비하면 거의 ‘냉증’이다. 정치권도 이 이슈를 잡아채 치고 나가지 않는다.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를 외치며 단식하다 쓰러진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의 헌신과 희생은 그래서 더 애절하고 고독해 보인다. 뒤늦게 새누리당이 무슨 결의안을 낸다, 특위를 만든다 하며 따라오곤 있다.



 반면 좌파에 서 있는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에선 별 움직임이 없다. 강제북송 반대 시위에 나가자고 말을 꺼낼 분위기가 아니라고 한다. 하기야 그런 모습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도 북한 인권엔 유달리 입이 무거웠다. 이는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투쟁해 왔다는 경력을 빛 바래게 한다. 인권 문제를 상대에 따라 선별적으로 다루려는 자세를 상대주의적 인권의식이라 한다. 인권은 국가나 체제, 문화나 시대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다뤄질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게 북한의 인권 개념과 똑같다는 건 놀라운 일도 아니다. 북한 당국의 차별적, 상대주의적 인권관은 1995년 6월 24일 노동신문 사설에 명확히 나와 있다. “사회주의 인권은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적대분자들과 인민의 이익을 침해하는 불순분자들에게까지 자유와 권리를 주는 초계급적 인권이 아니다.” 체제에 순응하면 안 괴롭히고, 고개 들면 무자비하게 탄압하겠다는 얘기다. 물론 2009년 개정된 북한 헌법 제8조엔 “국가는…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한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당성이 강한 충성스러운 북한 주민에 한한다.



 더욱이 북한은 다른 나라가 자기네 인권을 거론하는 걸 침략 공세로 간주한다. 인권을 명분으로 체제 전복을 시도한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권 문제는 북한에 안보 위협으로 비친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국내 좌파와 그에 이끌려 다니는 야당들은 북한 인권에 입을 닫는다. 북한 주민의 인권보다 북한 당국과의 ‘내연관계’를 중시하는 태도다. 바로 그 순간 좌파는 보편적 인권의식을 내팽개쳤다. 민주화 투사들의 자기모순이다.



 그렇다고 정치권 탓만 할 수는 없다. 정치인이란 표가 돼야 움직이는 법이다. 탈북자 이슈로는 흥행이 안 될 듯하니 안 움직이는 측면이 있다. 아직 탈북자 이슈는 대중 흡인력도, 파괴력도 다소 떨어지는 게 현실이다. 국제사회의 관심은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쯤 되면 우리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야 한다. 탈북자 문제에 대해 입을 닫는 건 인권에 입을 닫는 것이다. 그들의 인권유린에 눈을 감는 건 인간에게 눈을 감는 일이다. 그들의 절규를 남의 일처럼 흘려듣는 건 공동체로서의 유대감을 저버리는 일이다. 이처럼 탈북자 문제에 대한 태도는 인권의식을 가늠하는 상징적 리트머스 시험지다.



 ‘나꼼수’에 맞장구쳐야 비판적이고, 야당의 모바일 선거에 참여해야 진보적이고, 정부·여당을 씹어 돌려야 지성적이라고 생각하는 분,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다. 이 정권의 실정(失政), 현실의 팍팍함, 그리고 한국의 인터넷 민도를 감안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중국과 북한을 향해 탈북자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비판적이고 진보적이고 지성적이다. 인류 보편의 가치를 훼손하는 폭력에 맞서는, 멋지고 폼 나는 행동이기도 하다. ‘국물녀’ 얘기에 침을 튀기고, ‘나꼼수’에 희희덕거리는 시간 조금씩 줄여 보편적 인권의 외침에 귀 기울여 보자.



남윤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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