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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 가는 길

중앙선데이 2012.03.03 19:08 260호 39면 지면보기
상신마을에는 ‘조부잣집’이 있습니다. 소설 ‘토지’에 나오는 최참판 댁의 모델입니다. 조선 후기에 지은 예스러운 한옥이 돌담길과 잘 어울려 찾는 이가 많습니다.
대개 이 정도의 ‘꺼리’가 있는 마을이면 ‘나라’에서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동네 길을 ‘토지길’이라 이름 짓고, 무너진 돌담길을 고쳐 쌓고, 시멘트벽에는 나름 이유 있는 그림을 그려넣었습니다. 그 길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이제 막 집을 나서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안녕하세요, 할머니. 마실 나가세요?” “동사(마을회관)에 가.” “이짝 다리가 아파서 멀리 가도 못해.”
“제 손 잡으세요.” “아이쿠 좋아라.” “나라에서 담벼락에 매화꽃도 그려주고, 솔나무도 그려주고, 참으로 고맙게도.”
“여가 우리 아들네야.” “담벼락 예쁜 매화꽃 찍어.”

말씀이 어디로 튈지 모르지만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긍정이었습니다. 맑고 밝았습니다.
곁에서 말씀 듣는 것만으로도 그냥 기분이 좋았습니다. 여든넷의 세월을 사시는 동안 많은 사람에게 이 같은 마음을 주었고, 또 이런 마음을 받아 주변과 나누었을 겁니다. 할머니의 찬란한 빛이 참으로 밝았습니다.
나는 어떠한지 요 며칠 생각이 많았습니다.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 깊은 물' '월간중앙' 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중정다원'을 운영하며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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