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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 같은 어제 지우고 싶은 건 모두 마찬가지죠"

중앙선데이 2012.03.03 19:02 260호 34면 지면보기
뮤지컬 39빨래39 10차 공연 모습
-토종 뮤지컬의 라이선스 수출은 보기 드문 일이다. 한류 차원에서 한류 아이돌 마케팅을 하는 공연이 대세인데.
“한국에서 ‘위키드’ 오리지널 팀의 공연을 볼 때 느끼는 감동도 있겠지만, 공연은 기본적으로 메시지 전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노랫말을 들으면서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관객에게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다. 물론 공연 자체가 성사된 데는 한류의 영향이 크다. 겨울연가부터 시작해 K팝을 거쳐 뮤지컬까지 더불어 관심을 얻게 됐다. 하지만 ‘빨래’는 한국에서 작품 자체로 사랑받아 온 것처럼 일본에서도 한류 마케팅이 아니라 작품 자체를 알리는 방식에 초점을 맞췄다.”

일본 진출한 뮤지컬 ‘빨래’ 연출가 추민주


-한국 공연에서는 유명 스타가 거의 없었는데 일본에서는 아이돌과 유명 배우들이 출연했다.
“스타들도 공연 자체를 매우 좋아하고 무대에서 흘리는 땀의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고 느꼈다. 욕쟁이 할머니 역을 맡은 오토리 레이의 경우 뮤지컬 ‘엘리자벳’의 타이틀롤을 맡았던 미모의 여배우임에도 불구하고 할머니 역할에 자존심을 상해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정신으로 임했다. 도저히 가리기 힘든 큰 키와 타고난 미모를 연기로 커버해 내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1,2 국내 10차 공연 모습
-한국적인 정서를 일본 배우들이 잘 소화했나.
“원래 ‘빨래’를 보면서 한국을 느낀다는 외국 관객이 많았다. 우리가 외국 문화를 접할 때 그 나라를 느끼고 싶어 하듯 일본인들도 우리 공연을 통해 한국을, 서울을 오리지널 그대로 느끼고 싶어 한다. 그래서 정서 전달에 신경을 많이 썼다. 내가 무대를 통해 표현하고 싶은 정서는 흥이다. 굿판에서 춤을 추는 것처럼 슬픔조차도 흥으로 표현하는 것이 한국의 정서인데, 그런 정서는 일본인들이 모르는 정서다. 그래서 유튜브로 관광버스에서 할머니들이 춤추고 노는 동영상을 배우들과 보면서 같이 춤도 춰보고, 강강술래를 해보기도 하면서 그 정서를 직접 느끼게 했다. 그러면서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정서를 스스로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고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일본 측 관계자가 ‘대지진을 당한 일본인들을 위로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사실 희망과 용기를 주는 이야기는 일본 대중문화의 정석이다. 굳이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수입해 간 이유가 뭘까.
“일본에 힘을 내며 살아가자는 메시지가 담긴 콘텐트가 많긴 하지만 ‘빨래’만큼 절실하게 표현된 것은 없다. 특히 뮤지컬의 경우 일본에는 현실적인 소재를 다룬 창작뮤지컬이 활성화돼 있지 않고 대부분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이다. 그런 대형 뮤지컬에서 볼 수 없는 소재이고,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시점에 가장 일본에 필요한 이야기라고 하더라.”

3,4 일본 공연 모습
-‘빨래’를 100번 봤다는 관객도 있다고 하던데, 혹시 만나봤나.
“부산에 사는 직장인이다. 공연을 보면 다시 회사에 돌아가서 열심히 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걸 경험했다고 한다. 그래서 힘들 때 박카스 마시듯 주말마다 한 번씩 올라와서 공연을 보고 간다. ‘빨래’는 중·고생부터 시작해 다양한 관객이 보지만 특히 직장인들이 지치고 힘들 때, 다시 희망을 갖고 싶을 때 재관람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만큼 공감하게 만드는 힘이 큰 이야기인데, 그 힘은 어디서 오나.
“현실을 토대로 함께 살아가는 이웃의 모습을 두루 관찰하고, 이웃 안에서 관심을 나누며 성장해 가는 이야기라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 작품이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관객과 만나는 과정에서 그들이 지금 이 시점에서 필요로 하고 원하는 것들을 점차 실감하게 됐다. ‘비 오는 날이면 어디로 떠나고 싶은 마음을 우산 하나로 가리고 또 하루를 살아가는’ 것처럼 뭔가 붙잡고 버티고 싶은 욕구를 관객을 통해 느꼈고, 관객과 소통하고 스킨십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었다. 그러자 같은 걸 해나가면서도 결이 풍성해졌고, 그걸 느끼면서 하니까 훨씬 더 관객과 공감대가 두터워졌다. 스스로 놀라운 점이 작품을 만들면 끝인 것이 아니라 마치 생명체처럼, 아이가 어른이 돼가는 것처럼 관객과의 만남을 통해 성장한다는 것이다. 관객과의 만남이 지금의 ‘빨래’를 있게 했다.”

-이웃과의 소통으로 위로받는 이야기인 만큼 우리보다 더 개인화된 일본 사회에 이웃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인 것 같다.
“맞는 말이다. 배용준씨가 일본 팬들을 가족이라 표현했을 때 ‘욘사마가 우릴 가족으로 생각해 주다니’ 하면서 엄청 감동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인간 본래가 소망하는 것은 친밀하고 가까워지고 사랑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표현방식이 다를 뿐이다. 한국 사람들은 사랑하니까 때린다고 할 정도로 예의를 넘어서는 측면의 문화가 있다면, 일본인들은 사랑하더라도 거리를 두기 때문에 차갑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가까워지고 싶은 열망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빨래’에는 다양한 세대와 성격의 이웃들의 삶의 모습과 서로 가까워지려는 노력, 알아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그 때문에 방식이 달라도 호기심으로 지켜보면서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지지해 주는 것 같다.”

-'부쟁이’ ‘열혈녀자 빙허각’ 등 판소리 뮤지컬도 올리고 있다. 젊은 연출가로서 국악이 무대에서 어떤 매력을 가진다고 생각하는지.
“판소리는 연기자가 있고 라이브 반주에 맞춰 이야기를 노래로 전달하는 완벽한 뮤지컬이다. 판소리 가사가 얼마나 재미있고 잘 들리는지 사람들이 모를 뿐이다. 물론 모든 작품이 대중성을 가질 수는 없다. 대중을 선도하고 새로운 자극을 주는 작품들도 있다. 예컨대 이자람이 브레히트 작품을 판소리로 재창작하는 과정이 관객의 호응을 받고 있는 것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새롭게 보게 해주는 요소와 판소리가 가진 전달력이 관객에게 엄청난 문화적 자극을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공연 환경은 우리와 많이 다를 것 같은데.
“외국 배우들과 작업하면서 우리의 장점과 단점이 다 잘 보였다. 스킨십을 많이 하는 것은 우리의 장점이다. 일본인들은 예의를 너무 지키는데, 무대에서 우리 정서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배우들과 만나자마자 바로 포옹하며 빨리 친해지려 노력했다. 제작시스템의 노하우는 그들의 장점이다. 라이선스 제작기반이 잘 갖춰져 있어 연습 시작 시점에 이미 세트가 준비돼 있었고, 장인정신을 가진 40~50대의 연륜 있는 스태프가 의상, 소품, 무대전환 등 모든 것을 내가 만족할 때까지 준비해 줬다. 젊은 패기가 우리 공연문화라면 일본은 프로의식으로 안정적인 제작기반을 갖추고 있다. 아침에 연습실에 제일 먼저 나와 청소하고 배우들을 보살피는 조수 역할을 해준 나카지마는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였다. 우리는 가장 신참이 하는 일이다. 아주 유명한 극장의 무대감독이었는데 은퇴 후 노인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뮤지컬 ‘빨래’
서울살이에 지쳐 가는 강원도 아가씨 나영과 몽골 이주노동자 솔롱고의 만남을 축으로 동대문에서 옷장사를 하는 ‘돌싱’ 희정 엄마, 장애인 딸의 기저귀를 40년째 빨고 있는
욕쟁이 주인 할머니 등 변두리 반지하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을 코믹 터치로 그렸다. 시적인 가사와 생생한 캐릭터 묘사로 큰 공감을 사며 장기공연을 이어왔다.
현재 대학로 학전그린 소극장에서 11차 공연을 진행 중이다. 지난 2월 일본 무대에는 AKB48 출신의 아이돌 노로 가요를 비롯해 가와시마 나오미, 오토리 레이 등 유명 스타들이 출연했다.
5월 도쿄 롯폰기 하이유자 앙코르 공연을 시작으로 전국 투어가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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