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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 살아야 해

중앙선데이 2012.03.03 14:37 260호 18면 지면보기
어쩌면 비극은 예술에 독한 자양분이다. 3·11 대지진 후의 일본을 그린 영화 ‘두더지(ヒミズ·사진)’를 보며 든 생각이다. 이 영화는 2000년대 초반 화제를 모은 후루야 미노루의 동명 원작만화를 영화화하는 평범한 기획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촬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3·11 대지진이 일어났고, 감독은 이 비극을 영화 속에 담기로 했다. 그 결과 원작의 잔혹하고도 슬픈 분위기는 그대로 살아 있으면서도 현실감 있게 마음을 뒤흔드는 충격적인 작품이 탄생했다.

이영희의 코소코소 일본 문화 : 3·11 대지진 영화

줄거리는 한없이 어둡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황량한 시골마을의 텅 빈 낚시터를 지키는 중학생 소년 스미다. 그런 스미다에게 벌레 취급을 당하면서도 그의 곁을 지키는 소녀 자자와가 주인공이다. 스미다의 꿈은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이지만 잔인한 어른들은 그의 삶을 뒤흔들고, 결국 비극적인 사건에 휘말린다.

‘자살서클’ ‘차가운 열대어’ 등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독특한 영화들을 주로 만들어 왔던 소노 시온 감독은 이 암울한 스토리에 3·11이라는 재난을 결합했다. 쓰나미로 폐허가 돼버린 마을을 배경음악 없이 비추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모든 것이 쓸려내려간 황폐한 풍경은 주인공의 마음속 어둠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작품 전체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광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연기를 보여준 배우 소메타니 쇼타(19)와 니카이도 후미(16)는 지난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신인배우상을 수상했다.

대지진 1주년-. ‘두더지’를 시작으로 3·11을 다룬 영화들이 속속 공개되고 있다. 모리 다쓰야, 야스오카 다카하루, 와타이 다케하루, 마쓰바야시 요주 등 네 명의 감독이 함께 만든 다큐멘터리 ‘311’은 피해 지역인 후쿠시마, 이와테, 미야기의 피해 상황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나 피해자의 시신이 있는 그대로 등장해 “비극을 상업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에 휩싸여야 했다.

올해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된 이와이 슌지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프렌즈 애프터 3·11(friends after 3·11)’은 미야기현 센다이 출신인 이와이 감독이 트위터를 통해 알게 된 고향의 ‘새로운 친구들’을 찾아가 그들의 목소리를 담은 작품. 또 쓰나미 피해자들의 사연을 담은 모리모토 신이치 감독의 ‘쓰나미 그 이후 (大津波のあとに)’와 대지진 이후 절전 계획으로 암흑이 돼버린 도쿄를 보여주는 마쓰에 데쓰아키 감독의 다큐멘터리 ‘도쿄 드리프터(トキョドリフタ)’도 3월 중 개봉한다.

다큐멘터리든, 극영화든 던지는 질문은 비슷하다. 2011년 3월 11일을 경계로 달라진 일본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계속되는 지진과 방사능 관련 뉴스 속에서 사람들은 불온한 공기가 감도는 비일상적인 일상을 살아간다. ‘두더지’를 만든 소노 감독은 “영화를 통해 이러한 일본을 살아내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고 했다.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는 새로운 시작이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하여 원작의 비극적인 결말은 영화에선 조심스레 희망적으로 바뀐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감바레(힘내) 스미다! 감바레!”라는 자자와의 외침은 감독이 ‘포스트 3·11’을 살아가는 일본인들에게 보내는 처절한 응원가다.



이영희씨는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다. 일본 문화에 빠져 도쿄에서 2년간 공부했다. 일본 대중문화를 보고 평하는 게 취미이자 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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