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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 쥐락펴락, 작전세력 원조?

중앙선데이 2012.03.03 14:21 260호 12면 지면보기
스벵갈리(Svengali)사악한 동기로 남을 조종하고지배하는 사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조종해 나쁜 짓을 하게 할 힘을 지니고 있는 사람.조지 듀 모리에의 소설 『트릴비(Trilby에 나오는 인물.
‘21세기의 메디치’ ‘영국 미술사의 성공적인 발명가’ ‘예술가-제조자’‘시장-제조자’ ‘천박하고 욕심 많은 이기주의자’ ‘미술시장의 스벵갈리’….
이 상반되는 평가는 모두 찰스 사치(Charles Saatchi·69)에게 쏟아지는 말들이다. 그는 2002년 아트 리뷰지 선정 세계 미술계 파워 100인 중 1위로 꼽혔다. 2008년 쿠티엔 레츠가 쓴 책 『영국을 망친 50명』중에는 7위로 선정됐다. 죄명은 전 국민의 미적 취향을 망친 ‘아트 딜러’(컬렉터가 아니라!!!)라는 것이었다. 미술시장에서는 영웅이지만, 문화 발전에서는 간웅(奸雄)이란 말이다. 그는 컬렉터인가? 아트 딜러인가? 사치는 대답한다, “나는 미술중독자다”라고. 사치의 덕을 톡톡히 본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는 코웃음을 친다. “사치는 지갑으로 미술작품을 인정했다. 그는 쇼핑중독자다.”

이진숙의 ART BOOK 깊이 읽기 <35>리타 해튼 & 존 A. 워커의『슈퍼 콜렉터 사치』


사치는 ‘슈퍼 컬렉터’ 현상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슈퍼 컬렉터는 수백만 달러의 재산가로, 다량으로 작품을 구매하며 미술관과 세계 미술 시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제적인 컬렉터를 일컫는다. PPR 그룹의 회장이자 경매회사 크리스티의 대주주인 프랑수아 피노를 예로 더 들 수 있겠다. 『슈퍼 콜렉터 사치』(북 치는 마을, 2011, 1만5000원)를 쓴 리타 해튼과 존 A 워커는 매우 비판적인 태도로 슈퍼 컬렉터 현상과 그를 둘러싼 현대미술의 한 단면을 잘라 보여준다.

런던 중심가에 있는 사치 갤러리. [사진 중앙포토]
사치에게 붙는 첫 번째 타이틀은 “미술 사조를 만든 최초의 컬렉터”다. 사치는 세계적인 광고 회사 ‘사치&사치’를 운영했던 성공한 광고인이었다. 광고인의 특성이 컬렉션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사치는 새로운 상품을 광고하듯 yBa라는 새로운 미술 사조를 론칭해 마케팅에 성공했다. 그는 오랜 컬렉션 경험 끝에 음악에서 비틀스나 롤링스톤스 같은 영국을 대표하는 미술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실제로 영국을 대표하는 미술, 즉 yBa를 만들어낸다.

1992년 그의 갤러리에서 있었던 젊은 영국 미술을 주제로 한 전시는 yBa라는 표현의 기원이 됐다. 이때 참석했던 데이미언 허스트, 세라 루커스, 마크 퀸, 레이철 화이트리드 등은 yBa의 대표작가로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이들 외에도 젊은 영국 작가들을 위한 여러 기획전을 꾸준히 진행했다. 젊은 작가들을 발탁하는 사치의 안목은 획기적이었고, 혁신적이었다. 미술계에서만 잔뼈가 굵은, 구식 인물들은 생각해내지 못했던 획기적인 방식들로 작가들을 프로모션했던 사치는 분명 성공적이고 색다른 컬렉터였다.

젊은 날의 찰스 사치(오른쪽)와 동생 모리스 사치. [사진 북치는마을 제공]
동시에 그는 컬렉터를 위장한 ‘아트 딜러’라고 의심받는다. 그것도 시장을 조작하고 왜곡시키는, 나쁜 취향을 유포시키고, 어마어마한 이득을 챙긴 사악한 아트 딜러라고. 존경받는 많은 전통적인 컬렉터들은 평생 소장한 미술품을 미술관 건립, 공공 기관 기증 등을 통해 사회 공동체와 함께 공유한다. 이는 작가의 창작을 고무하는 일이며, 미술사에 길이 남을 작품들을 공개해 인류의 문화발전에 기여하는 행위다.

미술품 컬렉터들은 당연히 돈을 벌어야 한다. 경제적인 이득은 명예만큼이나 컬렉션을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다. 사치가 비난을 받는 것은 작품 판매로 돈을 벌었던 것 자체보다 시장을 왜곡·조작했다는 혐의 때문이다. 그는 작가들이 뜨기 전에 싼값에 작품을 다량으로 구매했다. 작품이 비싸질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지 않았다. 영세한 일반 딜러들은 할 수 없는 컬렉터의 힘이라는 초강력 무기를 사용해 소장품의 가격을 올렸다. 본인이 직접 갤러리를 운영하기도 했고, 컬렉터라는 비영리적인 명함으로 국공립 미술기관에 작품 기증·대여 등 다양한 방식으로 후원했다. 이것은 사치가 소장한 작품과 작가들에게 멋진 이력을 만들어주었고, 가격은 계속 상승했다. 98년 12월 런던 크리스티에서 사치 컬렉션의 대규모 경매가 거둔 성공은 97년 ‘센세이션’전의 효과였다. 런던·베를린·뉴욕 순회 전시로 세계적인 이름을 얻었던 사치 컬렉션의 작품들이 나오자 시장은 열광했고 비싼 값에 팔려나갔다.

그는 팔면서 계속 샀다. 자신이 프로모션했던 yBa 작가들의 초기 작품들도 거의 다 팔았다. 사치가 팔아 버렸다고 소문이 난 작가는 가격이 폭락했다. 한 작가의 운명, 미술시장 전체가 한 명의 컬렉터에 의해 출렁였다. 그래서 피터 블레이크 같은 일군의 작가들은 사치에게 작품을 판매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결국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것은 평범한 관람객들이다. 생존 작가들의 작품이 수억~수백억원 사이에 거래가 되니 일반 컬렉터들은 작품 소장을 꿈도 못 꾼다. 대부분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기관들 역시 이런 고가의 작품들을 구입할 수 없으니 나라를 대표하는 국공립 미술관에서 좋은 작가의 좋은 작품을 보기란 어렵게 됐다. 전 세계적으로 사치를 따라 컬렉터가 된 사람도 많고, 그는 여전히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최근 그의 행동을 보고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사치의 행동방식을 참조는 하되, 그의 리스트는 참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가 어떤 작가를 또 어떻게 갈아치울지 아무도 모르니까.

이 책은 사치에 관해 쓰인 몇 권의 책 중 하나일 뿐이다. 그가 악마인지 천사인지 아직은 다 판가름 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살아 있고 행동하고 있다. 저자들은 말한다. “자신의 이름을 붙인 미술관이나 재단을 설립함으로써 사람들은 불멸의 존재가 된다. 게티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세인즈버리 미술관처럼. 부자도 죽을 때는 빈손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아는 많은 부자가 유언으로 자신의 미술관을 국가에 기증해 공공기부자로 남기를 결정한다.”

30초에 승부를 거는, 빠르게 왔다가 사라지는 광고에 종사했던 사치가 오랜 생명력을 가진 예술에 탐닉하는 이유를 우리는 이해한다. 사치 또한 그의 컬렉션과 갤러리를 공공에 헌납해 불멸의 존재가 되는 길을 택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사치’라는 사람이 아니다. 미술품 컬렉션의 투자적인 측면이 그동안 너무 부각되었다는 것이 문제다. 컬렉터가 아니라 아트 딜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사치는 컬렉션이 꽤 좋은 돈벌이 수단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컬렉션의 공익적인 성격에 대해 더 심각하게 생각할 때다. 사치만큼 떠들썩하게 유명하지는 않지만, 독일의 페터 루트비히나 이탈리아의 주세페 판자 디 비우모 백작 같은 존경받을 만한 컬렉터도 많다.

돈은 힘이 세다. 돈의 힘이 너무 세기 때문에 돈에 귀를 달아놓아야 한다. 돈은 공공의 선에 대해 이야기하는 철학이나 예술의 잔소리와 푸념을 끊임없이 들어야 한다. 이게 내가 아는 상식이다. 비난을 받는 것은 컬렉터 사치가 아니라 아트 딜러 사치다. 사치에게 우리 모두가 여전히 바라는 것은 그가 선한 이름으로 미술사에 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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