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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Biz] 투박하면서도 대담한 디자인·색상 … 스페인 신발 ‘캠퍼’ CEO 미구엘 플룩사

중앙일보 2012.03.03 01:33 주말섹션 2면 지면보기
캠퍼(Camper·카탈루냐어로 ‘농부’를 뜻한다)는 스페인의 세계적인 캐주얼 신발 브랜드다. 말 그대로 농부의 신발처럼 투박한 듯하면서도 대담한 디자인과 화려한 색상이 특징이다. 역설적이지만 이 신발을 즐겨 찾는 건 도시인들이다. 현재 전 세계 70여 개국의 대도시에서 팔려나가고 있다. 흥미로운 역설은 이뿐만이 아니다. ‘캠퍼’라는 이름이 처음 나올 당시만 해도 스페인은 디자인 강국은커녕 싸구려를 만드는 나라로만 여겨졌다고 한다.


유행 따라 밟지 않았다 … 지중해 독특함으로 승부했다

캠퍼의 최고경영자(CEO) 미구엘 플룩사(37)를 지난달 중국 하이난성의 해변도시 싼야에서 만났다. 이곳에서는 캠퍼가 후원하는 ‘뉴질랜드 에미레이츠 팀’를 비롯해 총 6팀이 참여하는 세계적 요트경기 ‘볼보 오션 레이스’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우리는 마요르카 섬 출신”이라며 지중해에서 출발한 캠퍼의 내력을 들려줬다.



글=이후남 기자

사진=캠퍼 제공





“저는 4대째입니다. 증조할아버지가 마요르카 섬에 처음 신발공장을 차렸어요. 그걸 할아버지가 이어받았죠. 증조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할아버지는 10대 때부터 공장에서 일하셨어요. 어려운 시기였지만 잘 해내셨죠. 그리고 아버지가 1975년에 할아버지와 함께 ‘캠퍼’라는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당신이 태어난 게 바로 그해인데, 어려서부터 장차 캠퍼에서 일할 거라고 생각했나요.



 “아버지는 우리를, 저와 형과 여동생을 늘 회사 일에 끌어들이려고 했어요. 그러나 어떤 정해진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부모님은 우리가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가치를 추구하게 하려고 했어요. 사업을 물려받든 아니든. 그건 우리가 결정할 일이었죠. 가족기업은 대개 다음 세대가 물려받기를 바라지만 처음부터 계획한 건 아니었어요.”



●어떻게 회사 일에 끌어들였나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제일 중요한 건 가치(value)를 알게 하는 거죠. 정직, 근면, 국제적으로 개방된 태도 같은 것을 갖게 하려고 하셨어요. 사업은 늘 가족의 중심이었고요. 어려서부터 우리를 신발공장에 데려가셨죠. 우린 여름이면 매장에서 일도 했고요.”





●아버지, 할아버지에게 받은 특별한 교육이 있나요.



 “교육을 굉장히 중시했어요. 아버지, 특히 할아버지는 스페인 경제가 폐쇄적이어서 외국에 나가기 어려운 시절을 사셨어요. 당신들이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국제적인 안목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저는 어려서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고 스페인에 돌아와 바르셀로나에서 경영학을 공부했습니다. 다시 미국에서 뉴욕대 MBA를 마쳤고요. 2003년 캠퍼에 입사하기 전까지 스위스 등 금융회사에서 일했습니다.”



●그분들이 캠퍼가 해외시장에 진출하기 전부터 국제화를 염두에 두었다는 얘기인가요.



 “좀 전에 말했듯 스페인 경제는 폐쇄적이었어요. 캠퍼가 브랜드로 탄생한 75년은 스페인의 오랜 독재자 프랑코가 죽은 해입니다. 그때부터 스페인 경제가 개방되기 시작했죠. 특히 86년 스페인이 유럽연합(EU)에 가입한 게 큰 변화였어요. 수출과 수입이 훨씬 쉬워졌거든요. 하지만 스페인 브랜드가 좋은 디자인의 제품을 외국에 팔기는 힘들었어요. 스페인은 값싼 노동력의 나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죠. 이런 이미지를 극적으로 바꿔놓은 게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입니다. 아마 (88서울올림픽을 개최한) 한국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올림픽을 통해 스페인은 모던한 이미지를 갖게 됐어요. 우리는 이게 해외에 진출할 좋은 시기라고 생각했고, 파리에 매장을 열었습니다. 이전까지 스페인 브랜드는 싸구려라는 이미지 때문에 좋은 디자인을 좋은 값에 파는 게 몹시 어려웠어요. 캠퍼는 해외에서 처음으로 성공한 스페인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1975년에 나온 캠퍼의 첫 번째 신발.


●그럼에도 캠퍼의 디자인은 스페인의 특징이 매우 강해 보이는데요.



 “해외진출을 하면서 우리가 결정한 것 중 하나가 우리의 정체성을 바꾸지 말자는 것입니다. 어떤 브랜드는 국제화되면서 새로운 시장에 적응하기 위해 정체성을 바꾸기도 하지만 우리는 우리 것을 그대로 밀고 나갔어요. 돌아보면 옳은 결정이었죠. 우리가 지중해 출신이라는 점이 캠퍼의 정체성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지중해는 문화가 풍요롭고, 뛰어난 화가도 많고, 색채와 빛이 화려합니다. 또 캠퍼는 마요르카 섬의 농부들이 신던 신발을 본떠 시작했어요. 투박하면서도 멋스럽고 유니섹스한 신발이죠. 캠퍼라는 말 자체가 ‘농부’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런 모티브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고 이를 유지하려 했죠.”



●그래도 세계적인 취향에 맞추려는 유혹을 느낄 텐데요.



 “매일같이 압력을 받고 있지만 그래서 정체성을 잃는다면 큰 잘못이죠. 우리는 브랜드의 강한 정체성 때문에 지금 같은 성공을 거뒀습니다. 편안함, 상상력, 쾌활함, 유머감각 등이 어우러져서 우리는 어떤 브랜드와도 다른 독특함을 만들어냈어요. 그게 우리의 강점입니다. 유행에 빠르게 적응하려는 브랜드들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실수라고 봅니다.”



●개인적인 질문입니다. 형과 서로 어떻게 역할을 나눕니까.



 “형은 지난해 자기 회사를 시작했어요. (캠퍼와는 다른)신발과 옷을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회사입니다. 형은 그 회사에, 저는 캠퍼에 전념하고 있죠.”



●신발회사이면서도 베를린과 바르셀로나에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두 호텔 모두 디자인이 굉장히 독특하다던데 어떻게 그런 호텔을 시작했나요.



 “우리 호텔을 디자인한 사람은 페르난도 마르티네스라고, 바르셀로나에서 아주 유명한 인물입니다. 바르셀로나에 있는 그의 가구매장도 참 특별하고 유명해요. 신발회사가 왜 호텔을 하는지 설명하기란 쉽지 않지만 그와 접하면서 호텔을 만드는 게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손님을 맞고, 음식과 쉴 곳을 제공하고, 이런 게 우리 브랜드에 가치를 더한다고 봤습니다. 바르셀로나와 베를린의 호텔 모두 트립어드바이저 같은 여행사이트에서 각 도시 최고의 호텔로 꼽힙니다. 실용성, 편안함, 친근함, 가족 같은 분위기 등 캠퍼의 가치를 호텔이 잘 전달하고 있다고 봅니다.”



●바르셀로나의 호텔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거실과 침실이 있는 특이한 구조라던데, 투숙객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도 있는 디자인 아닌가요.



 “거실과 침실을 나누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지의 배치 때문에 그러기도 했지만. 안쪽 아늑하고 좀 어두운 곳에 정원을 접해 침실을 두고, 소음이 있는 길가에 면해 거실을 두었어요. 기왕이면 여느 호텔과 다른 걸 해보고 싶었어요. 남다른 걸 하려다 바보스러운 짓을 할 위험도 있는데, 우리는 언제나 기능적인 면을 중시합니다. 24시간 뷔페를 비롯해 호텔의 남다른 면면이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페르난도 마르티네스와 전에도 함께 일한 적이 있나요.



 “1981년에 바르셀로나에 문을 연 캠퍼의 첫 번째 매장을 그가 디자인했어요. 아버지와 친구입니다. 그는 바르셀로나를 세계 디자인 지도 위에 올려놓은 핵심인물이에요.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아주 영향력이 큽니다.”



볼보 오션 레이스의 캠퍼 파빌리온.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의 작품이다.
●캠퍼는 매장 디자인도 독특한 걸로 유명한데, 어떤 기준으로 디자인을 합니까.



 “몇 해 전부터 모든 매장을 다르게 만들려고 하고, 매장마다 다른 디자이너와 일하려고 합니다. 창의성을 더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양성은 복잡한 것이면서도 풍부함을 줍니다. 다양성 역시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입니다.”



●세계 각 지역별로 캠퍼 소비자들의 취향이 어떻게 다른가요.



 “좀 더 여성적이거나 남성적인 곳들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비슷합니다. 우리 소비자는 대개 남다르고, 기능적이고, 품질 좋은 걸 갖고 싶어 하고 독립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이라고 봅니다. 두 가지 접근법이 있습니다. 소비자가 뭘 원하는지 보고 소비자가 원하는 걸 주는 방법, 그리고 당신이 하고 싶은 것, 당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걸 소비자에게 내놓는 방법이 있는데 우리는 후자에 속합니다.”



●지금까지 캠퍼가 성장하면서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나요.



 “90년대 초가 힘들었어요. 92년 파리, 런던, 밀라노에 차례로 매장을 열고 동시에 해외진출을 꾀했죠. 가격대나 반응은 좋았지만 매출은 저조했어요. 그런데 파리에 여행을 온 일본인들이 캠퍼를 발견했습니다. 일본에서는 곧바로 성공을 거뒀어요. 일본은 사실상 캠퍼가 성공을 거둔 최초의 해외시장입니다. 이런 성공이 이후 유럽과 미국으로도 이어졌어요. 운이 좋았다고요? 그렇습니다. 운이 중요하죠.”





요트 경기 ‘볼보 오션 레이스’ 참가하는 이유



팀워크 최우선, 청정 스포츠 … 캠퍼 전통과 맞아떨어져




1 캠퍼가 후원하는 ‘뉴질랜드 에미레이츠 팀’의 요트. 2 싼야 항구에서 레이스를 준비 중인 총 6팀의 요트.
볼보 오션 레이스(Volvo Ocean Race)는 무동력 요트로 파도와 싸우며 장장 9개월 동안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극한의 스포츠다. 캠퍼는 이번 대회에 참가한 6개 팀 가운데 뉴질랜드 출신 선수들이 주축인 ‘뉴질랜드 에미레이츠 팀’의 후원사로 참여한다. 일상에서 편하게 신는 신발로 이름난 캠퍼는 이번 대회에 맞춰 초경량 운동화 같은 기능성 제품을 출시했다. 총 6팀의 레이스는 지난해 11월 스페인을 출발해 지난달 세 번째 기착지인 중국 하이난성 싼야에 도착했다. 선수들이 2주가량 머무르는 동안 항구에는 각 팀 후원사들의 홍보관과 요트 체험시설 등이 설치되고 각종 공연 등 볼거리가 펼쳐졌다. 인터뷰 당일 캠퍼의 CEO 미구엘 플룩사는 ‘뉴질랜드 에미레이츠 팀’의 요트에 합류해 싼야 항구에서 열린 6팀의 짧은 레이스에 직접 참가했다. 레이스 직후의 피곤한 상태에서도 그는 열의 있는 답변을 이어갔다.



●볼보 오션 레이스에는 왜 참여하게 됐나요.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오션 레이스는 세계적인 이벤트입니다. 또 팀워크가 바탕인 경기라는 점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잘 맞습니다. 무동력으로 청정에너지를 이용해 세계를 도는 경기라는 점도 그렇고요. 우리는 마요르카 섬 출신이라 바다와 친근합니다. 스페인 내에서는 오래전부터 해양경기를 후원해 왔어요. 이번 대회에서 우리가 후원하는 ‘뉴질랜드 에미레이츠 팀’은 아메리카스 컵에서도 두 차례나 우승한 뛰어난 팀입니다. 또 우리처럼 섬인 뉴질랜드 출신들이기도 하고요.”



●팀워크는 어떤 의미에서 캠퍼에서 중요한 가치인가요.



 “회사는 사람으로 이뤄져 있고,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회사 내부에서만 아니라 회사 바깥의 수많은 사람과도 일합니다. 캠퍼는 처음부터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을 해왔어요. 신발 제품은 기본적으로 내부에서 만들어왔지만 (로고·포스터·포장 등의) 그래픽 디자인이나 매장 디자인은 외부 디자이너들과 활발하게 일해왔습니다. 그중 많은 이들이 바르셀로나 출신입니다.”



●디자이너를 직원으로 두고 일하는 게 더 효율적일 수도 있지 않나요.



 “세계 곳곳에 창의적인 디자이너들이 많고, 이들과 협업하는 게 전보다 쉬워졌습니다. 우리는 좋은 신발을 만드는 기술과 노하우가 있고, 외부의 디자이너들은 창의력이 있어요. 이 두 가지를 결합하는 겁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디자이너와 예술가들을 초청해 그들이 캠퍼를 어떻게 보는지 듣는 건 무척 흥미로운 일입니다.”



 캠퍼는 이번 대회에서도 외부와 협업하는 전통을 발휘했다. 중간 기착지에서 캠퍼의 홍보관 역할을 하는 파빌리온은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의 작품이다. 왼쪽의 사진에서 미구엘 플룩사가 포즈를 취한 곳이 바로 이 파빌리온 내부다. 둥근 기둥은 모두 단단한 종이로 만들어진 것이다. 반 시게루는 과거 고베 대지진 때 종이 기둥으로 난민들을 위한 임시건물을 만든 걸로 유명하다.



●파빌리온을 어떻게 반 시게루에게 맡기게 됐나요.



 “파빌리온은 중간 기착지마다 옮겨 다녀야 하는 임시건물입니다. 곧바로 반 시게루가 떠올랐어요. 그는 난민을 위한 작업을 여럿 하면서 조립과 해체가 쉬운 작품들을 만들어왔습니다. 파빌리온의 종이 기둥은 굵기가 조금씩 달라 서로 끼워넣을 수가 있어서 이동할 때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않게 만들어졌습니다. 반 시게루의 작품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많은 가치를 우리와 공유합니다. 그와의 작업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후에 우리 뉴욕 소호 매장의 디자인도 맡았습니다.”



●환경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신발은 고무를 사용하는 것을 비롯해 환경문제를 야기하는 부분이 많지 않나요.



 “1975년에 나온 최초의 캠퍼 신발은 타이어를 재활용해 만든 것이었습니다. 환경은 처음부터 우리한테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세계적 기업으로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고, 태양열 판을 설치하는 등 여러 환경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100%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최선을 다하려 하고 있습니다.”



●한국 디자이너와 협업할 생각이 있습니까.



 “당장은 아닙니다. 제가 아직 한국을 가보지 못했고 한국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시선을 끄는 패션 디자이너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편의상 지금까지 주로 유럽의 디자이너들과 일했는데 조만간 한국과도 일할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한국도 방문하고 싶고요.”



볼보 오션 레이스



무동력 요트로 9개월에 걸쳐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경기. 11명의 선수가 팀을 이뤄 20m 남짓한 길이의 요트에서 교대로 먹고 자며 바람과 파도와 싸우며 24시간 항해를 이어간다. 승부는 ‘레그(leg)’라고 불리는 구간별 순위와 중간 기착지의 항구 내 경기 순위를 점수로 합산해 결정한다. 1973년 ‘휫브레드 라운드 더 월드 요트 레이스’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가 2001년 지금처럼 이름이 바뀌었다. 3년 주기로 열리고 있다. 이번 대회는 지난해 11월 스페인의 알리칸테를 출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 중동의 아부다비, 중국의 싼야를 거쳐 현재 뉴질랜드의 오클랜드를 향하고 있다. 레이스는 7월 아일랜드에서 끝난다.





WhatMattersMost?



●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가족과 일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게 가장 중요한 건 가족과 아이들입니다. 동시에 4대째 가업을 잇는 사람으로서 사업도 중요합니다.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것이 좋고, 아들과도 일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삶은 가족과 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저도, 아버지도, 형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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