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울대 명의 "말기암환자 치료중단 권하면…"

중앙일보 2012.03.03 01:32 주말섹션 4면 지면보기
‘암(癌)은 앎이다’라는 말이 있다. 건강할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을 아픈 몸을 통해 새롭게 배운다는 의미다. 일과 삶의 의미, 시간의 가치, 가족과 친구들의 소중함까지…. 그러나 안타까운 면도 있다. 끝내 완치되지 않는 경우다. 서울대병원 종양내과센터장 허대석(56) 교수는 그 암과 앎의 현장에서 30년을 보내온 의사다. 독특한 것은 임상·연구·행정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 그의 이력이다. 첨단 치료법 연구에 매달려온 그는 악성 림프종 치료 분야에서 ‘명의’로 손꼽히지만, 지난 3년간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원장을 맡아 의료 연구와 행정을 지휘했다. 또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과 호스피스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알리는 데도 앞장서 왔다.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본관 12층 연구실에서 허 교수를 만났다. 그는 “의료는 질환만을 다루는 단순과학이 아니다. 사회·문화의 흐름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 융합학문”이라고 강조했다.


[j Special] 허대석 서울대병원 종양내과센터장 … “임종의 질 논의해야 합니다”
생의 마지막 고귀한 시간, 환자가 결정하고 누려야죠

글=이은주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암 치료기술 많이 발전했지만 …



●요즘 많은 사람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질환이 암인데요. 30년 전에 종양내과(악성 종양, 즉 암의 진단과 치료를 다루는 진료과)를 선택하셨죠.



 “그때 종양내과를 선택한다고 하니까 동료들이 농담으로 ‘장의사’가 되려고 하느냐고 했어요. 당시만 해도 사망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직업상 사람의 죽음을 많이 보는 현장에 있는 셈이죠.”



●그런데 왜 종양내과를 선택하신 거죠.



 “진행된 암이라는 것, 굉장히 부정적인 면이 많지만 그런 만큼 도전할 기회가 많은 분야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가서 할 일이 많겠구나, 치료법을 개발해야겠구나 생각했죠.”



 실제로 허 교수는 새로운 치료법에 관심을 기울였다. 미국 피츠버그대 암연구소와 미시간대에서 4년간 면역치료, 유전자 치료 등을 연구했다. 특히 악성 림프종(임파선암) 치료성과를 높인 그는 국내 림프종 연구와 치료에서 최고 평가를 받는 의사로 꼽힌다.



●지난 20~30년간 암치료가 획기적으로 발달했죠.



 “물론이죠. 진단도 빨라지고 정확해졌죠. 다양한 항암제가 개발되니까 치료 성과가 좋아지고 암환자의 생존율이 높아졌고요. 하지만 모두가 완치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다 보니 환자를 낫게 하지 못하면 의료의 실패라고 여기는 생각이 너무 지배적이에요. 끝도 없이 완치를 위한 실험실 연구에만 매달리기에는 현장에는 너무 많은 고통이 있어요.”



 그가 환자를 만나며 무엇보다 안타까워한 것은 ‘3분 진료’였다. 과거에 하루에 암환자를 100명씩 봐야 하는 상황에서 쫓기듯 일했다. ‘냉정하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고 했다.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사실 3분 사이에 처방을 내고 그런 거는 괜찮아요. 문제는 항암제를 처방하다가 어느 시점에 가면 항암제가 치료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더 이상 효과는 없고 부작용만 생기는 시기가 있다는 겁니다. 기술적으로 이런 때를 ‘말기’라고 하는데, 이때부터는 평균 생존기간이 약 11주 정도가 돼요. 사실 그때는 항암제를 중단하는 게 환자를 위하는 일인데, 이런 상황을 환자와 환자 가족들에게 ‘3분’ 이내에 설명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죠.”



 허 교수는 이것을 가리켜 “잔인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그만 하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말이냐’ ‘이제 집에 가서 (죽음을) 기다리라는 뜻이냐’며 격하게 반응하기 일쑤였다. 환자 가족들은 언젠가 그런 순간이 오리라 짐작을 하기도 하지만 막상 소식을 접하면 쉽게 수용하지 못했다. 눈물을 흘리거나 실신하거나 불같이 화를 냈다. “최대한 객관적이 되려고 했지만 쉽지도 않고, 환자와 보호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주지 못하는 게 항상 아쉽고 미안했습니다.”



 그는 1991년 병원 안에 ‘등불’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의사와 간호사, 약사, 사회복지사 등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병원 내의 별도 상담 모임이다. 그러나 이런 활동이 ‘봉사’에 머물게 아니라 ‘제도’로 정착돼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호스피스 활동을 지원하는 의료 제도를 정부에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해결이 안 되고 있어요. 대만, 일본도 2000년대 들어 호스피스를 제도화했는데 한국은 아직 바꾸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정확히 무엇이 문제죠.



 “현재 의료제도가 환자를 완치시키는 데만 집중돼 있어 그 ‘완치’ 대상이 아닌 환자들은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겁니다. 임종 한 달 전 시점에서 항암제를 쓰는 비율이 미국이 10%인 데 반해 한국은 30%에 달합니다. 과잉 진료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죠. ”





시간의 질(質)을 생각해야



 첨단 치료법 못잖게 지난 20년간 그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부분이 ‘임종의 질(質)’에 대한 부분이다. 말기 암환자의 임종과정에서 심폐소생술 등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고통이라는 게 그의 입장이다.



●사실 가족들은 연명치료를 하는 게 ‘도리’라고 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임종이 임박한 환자에게 기술을 적용하면 생명은 연장할 수 있죠. 이것을 어디까지 해야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이렇게 병원에서 뭔가 끝없이 하다가 눈을 감게 하는 게 정말 환자를 위한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요. ‘항암제를 계속 쓰면 오히려 환자에게 좋지 않을 것 같다. 안 쓰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리면 모두 공통적으로 말하는 게 ‘끝까지 최선을 다해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최선이 뭔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죠.”



●어떻게 다른가요.



 “그 최선이라는 게 치료하다가 나빠지면 중환자실 가서 인공호흡기 달고, 다시 항암치료하고, 다시 중환자실 가고…. 끝까지 뭔가를 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고통받는 시간만을 연장시키는 측면이 있거든요. 시간의 의미를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죠.”



●그런데도 사람들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사회문화적인 요인이 크죠. 병원에서 말기 암환자 가족(20 가족)을 상대로 조사한 적이 있는데, 환자와 가족이 (환자가 세상을 떠날 경우를 대비해) 솔직하게 대화하고 있는 경우는 일곱 가족에 불과했어요. 대부분은 진정한 의미의 대화를 거의 못하고 있고요. 어떻게 보면 당사자의 일에 환자 본인이 고립된 측면도 있어요. 환자가 자신의 입장에서 문제를 정리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고 있는 거죠. 의료진은 제도가 방어를 안 해주니까 방어적인 진료를 하고 있고요.”



 허 교수는 한국에서 한 해에 약 18만 명이 만성질환을 앓다가 사망하는데, 이 환자 중에서 임종 직전에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달고 사망하는 환자가 3만 명이 넘는다고 했다. 그는 “매년 3만 명 이상의 환자가 인생 마지막의 귀한 시간을 제대로 가져보지 못하고 간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제 우리 사회가 이것을 정면으로 논의하고, 제도 도입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임종을 어떻게 맞느냐가 ‘제도’와 어떻게 관계 있는지 언뜻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제일 큰 부분이 건강보험입니다. 예를 들면 마지막까지 항암제·인공호흡기를 쓰는 것은 보험이 적용돼요. 그런데 환자가 집으로 돌아가 진통제를 투약받으며 심리적으로 안정할 수 있게 도와주는 호스피스에는 보험적용이 안 돼죠. 그게 가장 문제입니다. 몇 년째 시범사업만 하고 제도화하지 못하고 있어요. 제도를 결정해야 하는 기관조차도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단순히 ‘포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심리적으로 ‘포기’는 받아들이기 어렵죠.



 “그렇죠. 연명치료 중단을 ‘패배자’(루저)가 되는 걸로 여기는 경향이 심해요. 사실 그걸 받아들이고 남은 시간을 자기 시간으로 보내는 게 진정한 승자(위너)인데도 병과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한국 사람들에게 그런 투쟁정신이 있으니까 경제발전을 여기까지 이룩한 것은 맞는데, 부정적 측면도 있죠. 보통 죽음의 5단계를 부인,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보호자들은 환자가 이 같은 과정을 다 거칠 기회조차 주지 않아요. 부질없는 희망 속에 고통만 겪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가 많다는 것입니다.”



 허 교수는 “의사로서 당연히 생명을 지켜주고 싶지만 그것이 불가능할 때는 남아 있는 삶의 소중함을 지켜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통증 너머 고통까지 끌어안는 의료 돼야



●현장에서 일하시며 ‘의료’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을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해 도움을 주자, 이런 생각만 앞섰죠. 시간이 지나니 의료가 지나치게 ‘기술’ 중심으로만 흘러왔다는 점이 문제로 보여요. 예컨대 의사는 환자를 보는 게 아니라 질환을 보고 있고, 제도도 이런 쪽으로만 자리 잡았고요. 기술은 앞으로도 계속 발전해야 하죠. 의료를 보다 전인적인 시각에서 보는 게 필요해요.”



 허 교수는 통증(pain)과 고통(suffering)은 같은 용어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의료가 환자의 통증을 치료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면, 앞으로는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보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허 교수가 그리는 바람직한 의료의 모습이다. 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유전자 치료, 임종환자 연구(호스피스), 정책 등 지난 30년간 제가 해온 일은 다양했어요. 하나하나 전공하는 데 평생을 바쳐도 될까 말까 한 일들이죠. 어떻게 보면 수박 겉핥기 식으로 보이겠죠. 하지만 이런 경험 덕분에 의료를 한 부분만 보지 않고, 전체를 융합적으로 보게 됐습니다. 이 경험을 갖고 의료가 보다 더 사회와 교류하면서 자리를 잡아가는 데 기여한다면 보람이 있을 거라 믿고 있어요.”





종양내과 의사로 일하며 배운 것



의료의 본질은 환자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허대석 교수가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있는 격언이 있다. “to cure sometimes, relieve often, comfort always”라는 말이다. 풀이하면, "의사가 완치할 수 있는 환자는 많지 않다. 가끔 환자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있다. 하지만, 환자의 고통을 줄여주는 일은 의사가 노력하면 항상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 나이가 들수록 의사가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있다”고 했다.



환자를 치료하고 돌보는 것은 ‘협업’



흔히 의사의 역할을 ‘질병을 고쳐주는 사람 ’이라고 여기는데, 허 교수는 “그게 전부는 아니다”고 말한다. 환자 자신이 자신의 병을 치유하는 것이고 의사는 그 과정이 효율적으로 이뤄지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라는 것. 특히 암환자의 의료는 ‘팀 어프로치(team approach)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환자와 의사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사, 간호사, 봉사자가 다 함께 협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허 교수가 말하는 ‘마지막 시간’ 의미



남은 한 달, 강아지 키워 보고 싶다던 열 살 소년 …




허대석 교수는 인터뷰 도중 시간의 의미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에 대한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등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현장에서 지켜보며 수없이 생각했던 화두라고 했다. 그러면서 시간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됐다는 사례를 들려줬다.



 소아 암병동에 있었던 열 살짜리 소년은 백혈병 환자였다. 항암제 치료를 받고, 골수이식을 받는 등 많은 치료를 받았으나 어느 날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말기였다. 병원에서 ‘남은 시간이 한 달쯤’이라고 말해줬다. 이 말을 들은 소년의 부모는 고민했다. 아이를 병원에 남게 할 것인가, 아니면 집으로 데려갈 것인가, 한 달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아이를 어떻게 보내줘야 할까…. 병원에서 끝까지 치료를 받다가 눈을 감는 아이들을 숱하게 보아온 터였다. 부모는 아이가 평소에 강아지를 키우는 게 소원이라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한 달이나마 아이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고, 퇴원을 결정했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간 아이는 남은 한 달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 강아지를 품에 안고 웃으며 눈을 감았다고 한다.



 다음은 또 다른 사례. 몇 년 전 50대 후반에 간암을 앓다 세상을 떠난 허 교수의 사촌형 이야기다. 몇 년간 치료를 받던 환자에게 말기 상황이 찾아왔다.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허 교수는 환자인 형에게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는 얘기를 전했다. 길어야 1~2주일이 될 거 같다고. 열심히 투병생활을 해온 터였지만, 환자는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불필요한 검사는 더 이상 안 하겠다. 꼭 필요한 주사가 아니면 맞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평소에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전화로 부르기 시작했다.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대학생 딸에게 물었다. 아빠가 뭘 해주면 좋겠느냐고. 딸은 아빠가 술 한잔 걸치고 골목 입구에서부터 노래를 부르며 들어오던 게 가장 그리울 것이라고 했다. 아빠의 노래를 더 듣지 못하면 아쉬울 거라고. 아빠는 녹음기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 그리고 딸을 위해 노래를 불렀다.



 허 교수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말기 상황에서 기술을 동원하면 1, 2주 시간을 더 연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병원에서 끝까지 고통받으며 눈을 감게 하는 게 최선은 아니다.”고 말했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1주일을 1년처럼 보낼 수도 있고, 1년을 하루처럼 보낼 수 있다는 얘기다.





허 대 석



- 1955년생. 서울대 의대 학·석사, 박사

- 미 피츠버그대 피츠버그센터 인스티튜트 연구원 (86~89)

- 서울대 의료정책연구실장(2003~2006)

- 서울대 암센터 소장(2004~2008)

- 서울대 첨단 세포·유전자치료센터장(2006~2008)

- 서울대병원 호스피스실장(98~2010)

-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 (2008년 12월~2011년 12월)

- 서울대 종양내과센터장(2011년 3월~)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허대석
(許大錫)
[現]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내과학교실 교수
1955년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