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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pecial] 대립토론 교육 전파하는 평생 교육자 박보영

중앙일보 2012.03.03 01:32 주말섹션 6면 지면보기
박보영(64) 대립토론교육연구회 회장은 1969년 처음 초등학교 교사가 됐다. 그 뒤로 40년을 ‘초등학교 선생님’이란 타이틀로 살았다.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그 어떤 직업보다 중요하다고 믿어왔다. 광양제철초등학교 교장 시절, 그는 피에로 복장에 빨간 코를 달고 입학식장에 등장했다. 아침이면 교문 앞에서 일일이 학생들과 악수하며 “어서 오너라”며 등교를 반겼다. 그가 교사란 직업만큼이나 ‘신봉’하는 것이 ‘대립토론(debating)’이다. 20년 넘게 토론 기법을 연구하고 가르쳐 왔는데 퇴직 뒤에도 전국을 돌며 교사 후배들에게 지도법을 강의하고, 학생들에게 수업도 직접 하고 있다. “우리는 뜨거운 교육열 속에서도 늘 뭔가 갈증을 느껴왔어요. 그걸 풀 수 있는 게 대립토론이라고 믿어요.”


‘너 몇 살이야’ 어른들 토론이 애들만도 못한 경우 많죠

글=이소아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토론과 대립토론이 다른 건가.



 “다르다. 토론은 논쟁을 할 때 원칙적으로 토론자끼리만 발언을 한다. 하지만 대립토론은 ‘두 팀’이 규칙에 따라 논쟁을 벌이는 거다.”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축구경기를 떠올리면 된다. 인원수가 정해져 있고 규칙이 있고 심판이 있고 승부를 낸다. 대립토론도 똑같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대항하는 두 팀으로 나눈다. 이때 팀은 자기가 좋아하는 입장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추첨으로 결정한다. 그 뒤에 규칙에 따라 토론하고 승패를 결정한다. 한마디로 ‘말로 하는 경기’다.”



●주변에 대립토론 사례가 있을까.



 “TV에서 하는 ‘100분 토론’ ‘심야토론’ ‘시사토론’ 등은 그냥 토론이다. 그나마 ‘백지연의 끝장토론’이 대립토론에 가깝다.”



 대립토론의 기본형태는 ‘찬성 측 입론(주장 내세우기)→반대 측 입론→반대 측 반박발언(반론)→찬성 측 반박발언(반론)→반대 측 최종발언→찬성 측 최종발언’이다.



 이를 의회식 토론으로 옮기면 ‘총리의 입론(7분)→야당 당수의 입론(8분)→여당의원의 입론(8분)→야당의원의 입론(8분)→야당 당수의 반박(4분)→총리의 반박(5분)’이 된다. ‘월드스쿨디베이팅챔피언십(WSDC)’ 등 세계적인 토론대회들이 이 방식으로 진행된다.



●아이들이 대립토론을 하면 뭐가 좋은가.



 “토론을 잘하려면 신문, 책, 자료를 많이 읽어야 한다. 독서력이 향상되는 거다. 또 반드시 근거를 가지고 얘기해야 하기 때문에 통계자료를 활용하는 능력, 논리 있게 말하는 능력이 길러진다. 이게 글로 하면 논술이지 않나. 안건을 위해 뭘 어떻게 조사할지 판단하는 능력도 생긴다.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분이 남긴 다섯 평짜리 토담집을 헐지 말지 말이 많았다. 이 주제로 대립토론을 시켰더니 아이들이 녹음기를 들고 경북 상주 문중까지 가서 인터뷰를 하고 조사를 해 오더라.”



●주로 무슨 주제를 선택하나.



 “아주 다양하다. 역사드라마는 사회공부에 도움이 되는가, 대의민주주의는 유효한가, 집안일을 하고 대가로 돈을 받는 게 맞는가, 핵실험이 우리에게 필요한가, 악성 댓글 처벌법을 만드는 게 좋은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립이 옳은가 그른가 등 시사적인 주제도 많다.”



●초등학생들에겐 너무 어려운 거 같다.



 “보통 수업은 4학년 때부터 한다. 시사적인 주제를 주면 처음엔 어려워하지만 그만큼 열심히 공부하고 조사한다. 그렇게 해서 토론이 끝나면 환호성을 지르면서 좋아한다. 심지어 ‘조사해보니 같은 사안에 대해 언론매체마다 통계 해석이 다 다르다’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서로 이기려고 공격성을 띠거나 지나친 경쟁심이 생기진 않나.



 “하하. 그 반대다. 2인 이상 팀을 이루기 때문에 협동이 필수다. 혼자만 잘한다고 팀이 승리할 수 없다. 감정조절 능력도 생기더라.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 주장하는 바를 설득력 있게 표현하거나 전달할 수 없으니까. 지위 높은 어른들이 토론을 한답시고 얼굴 붉히고 언성 높이며 결국엔 ‘너 몇 살이야?’로 끝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립토론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오히려 침착하다.”



●애들이 더 쉽게 감정이 상할 것 같은데.



 “말했듯이 대립토론은 추첨을 통해 찬성과 반대 측이 결정된다. 예를 들어 4대 강 개발을 개인적으론 반대하지만 찬성 입장에서 이야기해야 하는 거다. 그러면 자연히 하나의 안건을 여러 각도에서 생각하게 되고 상대방의 입장을 돌아보게 된다. 감정보다는 객관적 근거와 논리를 따르게 되는 거다.”



●대립토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뭔가.



 “1992년에 포스텍의 김병원 교수(현재 언어사고개발원장)를 만나서 처음 알게 됐다. 미국·영국·호주 같은 선진국에선 100년 전부터 학생들에게 이런 교육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 무릎을 탁 쳤다. 그날부터 학교 현장에 토론문화를 만드는 데 온 힘을 쏟아왔다.”



●솔직히 초등교사에게 시급한 과제는 아니잖나.



 “나는 늘 교육만을 생각하며 살아왔다. 대립토론은 스스로 연구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간을 만드는 좋은 교육법이다. 교육엔 AS(애프터서비스)가 없다. 어릴 때, 사전에 서비스를 다하는 BS(비포서비스)가 중요하다. 이러니 왜 대립토론 교육이 시급하지 않겠나.”



●대립토론이 인재를 만드는 건가.



 “그렇다고 확신한다. 문제에 부닥쳤을 때 스스로 계획하고 해결하는 사람, 수천·수만 명의 사람에게 좋은 도움을 주는 창의성을 가진 사람, 자기 능력으로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으로 자라는 데 도움이 될 거다. 오바마 대통령이 흑인 최초로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연설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기 때문이다. 그는 초·중·고등학교 때 이름을 날리던 디베이팅 선수였다.”



 박보영 회장은 초등학교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평교사 시절에 야간대학과 대학원에 다니며 유아교육을 공부했다. 그리고 1998년엔 교육학으로 박사학위를 땄다. 대학이나 다른 기관에서 ‘러브콜’을 보내도 고사했다. 토론뿐 아니라 아이들의 식단을 ‘두뇌음식’으로 바꾸는 데에도 힘을 쏟았다. 일명 ‘FIC음식 반대운동’이다. 튀긴(Fried) 음식, 인스턴트(Instant) 음식, 탄산(Carbonated) 음료 대신 두뇌에 영양을 공급해 주는 견과류, 씨앗류, 오메가3 등이 듬뿍 든 유기농 음식을 급식에 반영한 것이다.



●학부모들 반응이 어땠나.



 “처음엔 번거롭다는 이유로 반대도 많았다. 그래서 설득하는 가정통신문을 시리즈로 보냈다. 끝에는 ‘교장 박보영’ 대신에 ‘늘 학생들의 교육만을 생각하는 박보영이 보냅니다’라고 썼다. 결국 나중엔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셨고 식단을 바꾼 지 7주 정도 지나니까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성격도 차분해지고 성적도 올라가고.(웃음)”



●교육에 대한 소회가 남다르겠다.



 “우리 교육은 먼 미래를 내다보는 교육이 아니다. 정책입안자가 바뀌면 실적 챙기기 식으로 바뀌는 국적 없는 교육이 계속돼 왔다. 교과서의 시녀 같은 교육, 시험 점수만 잘 받으면 되는 내비게이션 교육, 요리책 교육 탓에 인성교육도 많이 상처를 받았다.”



●그 책임은 교사에게도 있지 않나.



 “맞다. 학교가 언제부터 이렇게 불안정한 곳으로 변했는지 안타깝다. 교내폭력, 괴롭힘, 등교거부, 왕따 같은 현상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교사는 이런 현실을 ‘당연하다’고 체념하면 안 된다.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학교의 존재이유를 호소해야 한다. ‘학교가 왜 필요한지’ 합리적 근거를 대고, 학부모와 학생의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학교 교육은 설 땅이 없어질 거다.”



●부모들은 어째야 하나.



 “아이는 아버지, 어머니가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서 인성을 키워간다. 그것만 생각하면 된다.”



●세월이 지나도 제자들이 많이 찾을 것 같다.



 “하하. 대립토론 교육자로 알려지면서 더 연락이 잘되는 것 같다. 3학년 때 가르쳤던 제자가 교육사이트 동영상을 보고 37년 만에 연락을 해 왔다. 바이올린을 전공했다더라. 그 덕에 지난 연말엔 오보에 연주자로 유명한 성필관씨와 플루트 연주자인 그 부인이 부암동 레스토랑에서 연 콘서트에 참석하기도 했다. 감사한 일이다.”



●여전히 바쁜데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나.



 “국궁을 좋아한다. 1년 반 정도 됐는데 집중력이 생기고, 단전호흡도 돼 아주 좋다. 난 우리 것이 너무 좋다. 디베이트란 말 대신 대립토론이란 말을 강조하는 것도 그래서다. 언론에서도 한글을 많이 써 줬으면 좋겠다.”





j 칵테일 >> 후배 교사들에게 주는 조언



박보영 회장은 전국 40만 초·중·고 교사 후배들에게 “ST를 PR하면 ND에 이른다”고 강조한다. 무슨 소리냐고 물으니 “늘 공부(Study)와 수업(Tuition)을 준비(Prepare)하고 연구(Research)하면 네트워크(Network)와 인생설계(Design)가 구축된다”고 풀이해준다.



공부 교사는 평생 공부를 해야 자기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 평생교육 시대에 교사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



수업 교사의 생명은 수업이다. 자기만의 노하우로 알찬 수업을 만드는 것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수업은 창조활동이다.



준비 계기가 와서 성공하는 게 아니다. 준비를 계속하고 있어야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연구 왜 교육문제를 논하는 사람들은 죄다 교수와 연구원인가. 교사도 연구하고 논문 쓰고 기고해야 한다. 선진국일수록 현직 교사들의 연구가 활발하다.



네트워크 인적 네트워크 시대다.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를 활용해라. 교육적 목적이라면 전 세계 사람들이 도와준다.



디자인 80세까지 70만800시간이 있다. 60세에 은퇴해도 그때부터 나머지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 목표를 정해 놓고 나이마다 어떻게 할지 역산해 설계해 보자.





WhatMattersMost?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인간적인 삶이다.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고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런 인성은 초등학교 때 기틀을 잡아야 한다. 초등학교 6년이 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기간이다. 기본 바탕을 이루는 교육으로 끌어가야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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