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j Novel] 김종록 연재소설 - 붓다의 십자가 3.칼을 베어버린 꽃잎 (14)

중앙일보 2012.03.03 01:31 주말섹션 10면 지면보기
“소작쟁의가 초적들의 반란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백정들과 절집, 어느 한쪽 편을 들 수 없다면 보승군을 동원해 최악의 충돌사태를 막아내야 합니다.”


상여를 돌려라, 더 올라오면 화살을 퍼붓겠다

 김약선의 제안이었다.



 “이거야 원! 몽골군이 남쪽으로 치고 내려가는 판에 엉뚱한 데서 사달이 났네그려.”



[일러스트=이용규]


 최이는 손으로 콧수염을 쓸어 올리며 곰곰이 생각했다. 이 나라 젊은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툭하면 머리 깎고 절집에 들어가 버렸다. 절집에는 땅도 많고 노비도 많았다. 골치 아프게 벼슬 사는 것보다 중노릇이 편하고 좋았다. 절집은 세금 면제였다. 무엇보다도 좋은 건 군역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변방에 수자리 나가지 않기 위해 중노릇하는 젊은이들이 많은 나라, 이런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었다. 젊은 중들은 절집 자체적으로 승군을 조직했다. 승군들은 나라가 아니라 절집 재산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그게 백정이건 무인정권이건 관계치 않았다.



 15년 전, 거란군에 맞서 일어섰던 승군들이 아버지 최충헌을 죽이려고 칼날을 들이댄 사건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고구려가 망한 지 언제인데 고구려 부흥운동인가. 승군들은 고구려 부흥운동을 명분으로 무인정권을 몰아내려 했던 것이다. 최충헌은 기선을 제압하고 승군 800명을 잡아 죽였다.



 그 학살 이후로 불교계는 최씨 무인정권에 깊은 원한을 갖게 되었다. 권력을 승계한 최이는 불교계와 화해하고자 온갖 노력을 다했다. 대형 불사를 일으키고 종파를 대표하는 사원에 토지를 나눠주었다. 개경 흥왕사 대장전에 모셨던 초조대장경 경판을 부인사로 이운하고 사원전을 내려준 것도 그래서였다. 부인사는 경주 일대에서 일어난 신라 부흥운동에 동조한 무인정권 반대세력이었다. 미운 놈에게 떡 하나 더 준다고 대장경 경판으로 유화책을 삼은 것이다. 그런데 그게 또 다른 문제를 야기했다. 가혹한 착취로 소작농민들과 소작쟁의가 벌어진 것이다.



 “이 상국, 종파의 수장들인 종정들과 큰스님들을 불러모아주시오. 가부간에 결판을 내야겠소.”



 최이는 불교에 조예가 깊은 문인 이규보 재상을 활용했다. 그는 사위 김약선과 함께 수레를 타고 성 쌓는 공사현장을 둘러보았다. 강화도 동쪽 강화해협으로 행차했다. 수백 명의 사병들이 겹겹이 호위했다.



 “지금 강도 백성들은 이렇게 성을 쌓고 궁궐을 짓느라 여념이 없지만 승려들은 놀고 먹기 일쑤입니다. 몽골군이 침입하지 않은 본토 남녘은 백성들이나 승려들 모두 한가합니다. 그래서 소작쟁의나 하는 겁니다. 그들의 노동력을 동원시켜야 합니다. 변방 수자리로 징집해도 곧잘 도망쳐버리고 그를 잡아들일 공권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몽골과 전면전을 피하는 우리로서는 그들에게 먹힐 수 있는 일거리를 찾아줘야만 합니다. 그래야 쓸데없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지요.”



 김약선의 판단은 늘 정확했다.



 “백성들보다 승려들이 문제야. 이 나라에는 팔자 좋게 놀고먹는 승려들이 너무나 많아.”



 최이는 흑단나무 지휘봉으로 왼손바닥을 탁탁 쳐댔다.



 “놀고먹기 좋아하는 거야 승속(僧俗)을 가릴 게 없지요. 명분 있는 일을 찾아서 시키고 못 놀게 만들면 그뿐입니다. 승려들을 동원해 각 고을의 요충지에 산성과 토성을 쌓게 하지요. 몽골군을 막아내는 일인데 반발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다고 우리 무신정권에 대한 반감을 없앨 수는 없지. 무지렁이 백성들이야 옥죄면 그만이지만 알 거 다 아는 승려들은 달라. 우리와 동등한 권력을 나눠달라고 요구한단 말이야. 우리가 몽골군과 안 싸우니까 승군들도 싸울 생각이 없어. 교활한 무리들! 앉아서 극락이나 팔고 똥이나 만들면서….”



 그 자신이 부처님을 독실하게 모시면서도 중들의 행태는 눈꼴시게 여기는 최이였다. 독식해온 권력에 수저를 꽂고 함께 먹자고 들이대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장인어른! 종교를 정당화의 수단으로 이용할 줄 알아야 큰 지도자입니다. 불교계와 맞서지 마세요. 어떻게 해서든 이용하세요.”



 “허허허, 그런가? 자네가 한번 이용할 거리를 찾아보게나.”



 최이는 사위 김약선의 두뇌회전이 참 빠르다고 생각했다. 이런 김약선을 최이는 일찌감치 후계자로 낙점해 놓고 있었다.



 며칠 뒤, 이규보의 주선으로 봉은사에서 불교계 실세들의 회합이 있었다. 봉은사는 국조 왕건의 진영이 모셔진 황실의 원당이었다. 최이가 봉은사를 회합장소로 택한 건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한 모임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돌장승 같은 무인들을 배석시켜 살벌한 분위기를 조장하던 평소 모임과 달리, 그날은 이규보를 비롯한 문인 몇몇과 김약선만 참석시켰다. 모두 삼십여 명 가운데 승려들이 스무 명이 넘었다. 먼저 이규보가 나서서 화려한 언변으로 나라 형편이 몹시 어렵게 된 상황을 설명했다. 김약선은 지방에서 올라온 장계들을 일일이 거론했다. 태반이 절집에서 벌어진 소작쟁의였다.



 “고승 대덕들이여! 부디 말썽 많은 사원전의 소작료를 일괄적으로 내려주사이다. 그 길만이 이 험난한 정국을 돌파할 유일할 방책이랍니다. 적들이 쳐들어왔는데 소작료 문제로 내분이 일어서야 쓰겠소이까? 중생이 배고프면 함께 나누는 게 보살도 아니겠소이까?”



 최이는 어느 때보다 점잖게 읍소했다. 으르렁거리던 불곰이 너무도 얌전하게 나오자 교계 대표 스님들은 서로 눈치들을 보며 머뭇거렸다.



 “영공, 그래서 얼마로 하자는 것입니까?”



 그중 한 노장이 물었다.



 “아무리 따져봐도 삼칠제가 합당합니다.”



 최이가 삼칠제에 힘을 주었다.



 “영공, 그건 아니 될 말씀이오. 사원에 딸린 식구들이 얼마나 많고 불사가 얼마나 많은지 잘 아시지 않소. 이 나라 그 많은 절집 살림이 결딴나면 그게 바로 국난이오. 한시적인 사륙제라면 어떻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소만….”



 승려들 모두가 그 이상은 양보할 수 없노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절집에서 승시(僧市)를 열고 밥장사, 술장사에 여관까지 하면서 왜 재정이 어렵다는 거요? 초파일이다, 백중기도다, 그믐기도다, 천도제다 온갖 구실로 돈벌이를 하는 건 또 뭐고요? 정 이렇게 나오면 승군들을 강제징집해 몽골군에 대적하라 하겠소이다! 나라가 있고 나서 절집이 있는 거니까!”



 최이는 참았던 본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런다고 콧대가 죽을 종단 대표들이 아니었다.



 “좋도록 하시오. 강제징집 당한 승군들이 초적들과 연합해 무슨 큰일을 저지른대도 우리가 알 바 아니오. 지금 뭍에는 강화천도를 성토하는 불만세력들이 들끓고 있소이다.”



 사마귀 떼려다 혹 붙이는 짓 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이들이 말하는 큰일이란 전에 최충헌의 목숨을 노렸던 반란행위 같은 걸 뜻했다. 수만 명의 승군들이 탈영해 초적이 된 무리가 연합하면 나라를 들었다 놓을 수도 있는 막강한 세력이 되었다. 최이가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모두들 외적을 물리칠 뜻은 전혀 없고 제 식구들 목이나 겨누는 꼬락서니들이었다. 하지만 그 선봉이 최씨 무신정권이었으므로 최이로서는 남을 탓할 입장이 아니었다. 구차하지만 참아야 했다. 당당하자고 몽골 기마군단과 정면에서 맞짱 떴다간 궤멸당하고 만다.



 “승군이 초적들과 연합하다니요? 스님들은 우리 고려의 기둥이자 지배층입니다. 연합하려면 우리 무신들과 해야 옳지요. 그래야 황제폐하를 잘 보필해 위기에 처한 나라를 건져낼 거 아니겠소이까. 당분간만 사륙제로 하다가 몽골군이 완전히 물러가면 원래대로 돌리도록 하지요. 절반으로.”



 어느덧 최이의 어조에는 참기름이 잔뜩 발라져 있었다. 명백한 저자세였다.



 봉은사 회합이 끝나자, 최이는 전국 사원전의 소작료를 한시적으로 내린다고 방을 붙였다. 당연히 황제의 이름을 빌렸다. 대구 부인사에는 특별히 파발마를 띄웠다.



 치미는 화를 누르다 고려산 밑 무당 흑련을 찾은 그는 꼭지가 돌도록 만취해 흑련을 품었다. 몇 년 전, 음양술의 참모로 썼던 주연지(周演之)가 배신하고 자신을 죽이려 한 사건이 있고부터 최이는 흑련에게 집착해왔다.



 “강화도로 천도한 걸 사람들이 그렇게 싫어한다네. 짜장 그러한고?”



 “섬 생활이 뭐가 좋겠어요. 뭍에 남은 사람들은 그들대로 버려졌다고 여길 테고.”



 “임자도 날 따라온 걸 후회하누?”



 “개경에 남았으면 밑 터진 가래바지 입고 짐승 같은 몽골놈들 몸뚱이 받아내기밖에 더 했겠어요?”



 “에끼! 이 사람아, 무슨 그런 험악한 말을 해!”



 “문사들 뒀다 어따 쓰려고 그래요?”



 “무슨 말인가?”



 “강화천도 찬양하는 시를 쓰라고 하란 말씀이에요.”



 “오, 그거 좋겠네.”



 턱을 괴고 비스듬히 누웠던 최이가 벌떡 일어나 앉는다.



 “…천도찬양 시회를 열어서 우수작을 낸 문사들을 승진시켜야겠어.”



 뭍에서는 전쟁이 한창이련만 최이는 천도의 정당성 확보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뒤늦게라도 천도의 정당성을 얻어야 본토 생민들이 잠잠해지고 장기집권을 할 수 있었다.





 그 시간, 대구 부인사 주지는 승군들을 무장시키고 직접 지휘했다. 공산 남쪽자락 제법 너른 개활지 안에 사하촌인 국살과 동산마을이 들어서 있어 방어진을 치기가 쉽지 않았다. 공산 자락과 거저산 자락 사이 계곡으로 용수천이 빠져나가는 용수동 입구를 막고 대치한다면 좋으련만 상대해야 할 적은 계곡 안쪽에 들어와 사는 백정들이었다. 동산마을 초상집에는 이미 수백 명의 백정들과 화적패들이 준동할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전에 주지는 황제와 최이 집정 앞으로 간절한 주청을 올렸다. 대장경 경판은 천하의 보배요, 나라의 자랑인데 멀리로 이운해 오면서 글자들이 많이 떨어져나가 수리하고 다시 새기는 비용이 실로 막대하다는 것. 무지렁이 백정들은 타 들어가는 속을 알지도 못하고 다른 절집과 똑같이 받는 소작료를 무작정 내려달라고 생떼를 쓰니 바로잡아달라는 것. 저들의 생활이 그리 넉넉지 않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나 소작료를 낮추면 장경각 유지가 어렵다는 것. 불법을 숭앙하는 황제와 집정께서 특별히 은전을 베푸시어 토지 외에 금과 은병처럼 값진 재물을 하사해주시면 최고의 경판으로 보완해 그 봉안(奉安)에 만전을 기하겠으며 세세토록 충성을 다 바치겠노라는 내용이었다.



 사하촌 초상집은 애초 삼일장으로 치르려 했던 것이 오일장이 되고 칠일장이 되었다. 그러다 효여 대사가 단식기도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협상이 결렬돼버린 것이다.



 “관에서 시신 썩은 물이 새고 있소. 더는 못 기다려요. 내일 새벽, 예불이 시작되기 전에 급습하기로 합시다.”



 화적패 두령이 마을 대표들을 모아놓고 작전을 짰다.



 “도량을 새벽에 급습하는 건 옳지 않소. 밝은 대낮에 통보하고 올라갑시다.”



 망자 대신 새로 뽑힌 사하촌 동산마을 대표가 이의를 제기했다.



 “상대는 실전 경험이 있는 승군 삼백이오. 급습하지 않으면 우리 쪽 승산이 적소. 솔직히 우리는 오합지졸 아니오. 우린 개죽음을 원치 않소.”



 화적패 두령은 불시에 급습하자고 고집했다.



 “아니요, 우리는 내일 아침 상여를 메고 절집에 올라갈 것이오. 상여시위로 재협상을 해보고 그래도 안 통하면 그때 가서 싸웁시다.”



 불자들이 대부분인 농민군들은 화적패들과 달리 싸우는 목적과 방법이 당당했다. 바람처럼 떠도는 화적패들이야 약탈과 방화가 목적이었으므로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었지만 절집 밑에서 터 잡고 사는 농민군은 어떻게 해서든 개선책을 마련해야 했다. 싱거운 판이 돼버린 화적패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술추렴이나 해댔다.



 날이 밝자, 꽃상여가 꾸려졌다. 상여는 임금이 타는 대형 가마, 안여처럼 크고 화려했다. 누구라도 저승길 갈 때 한 번만이라 임금 부럽지 않게 행차한다. 울며불며 곡을 하고 눈물을 뿌리는 게 다를 뿐이다.



 “여보게 이 사람아, 악한 세상 만나서 고생만 하다 가네. 부디 저승길 잘 가시게. 이다음에 환생해 다시 오려거든 제발 좀 부인사 직세승이나 주지로 와서 우리들 형편 좀 봐주시게나. 알았는가, 이 사람아.”



 망자의 후임을 맡은 마을대표가 관을 쓰다듬으며 주억거렸다. 그는 동료들이 멘 상여 앞에 올라타고서 농민군을 진두지휘했다. 만장 대신 병장기를 든 농민들 수천 명이 상여를 따랐다. 술이 덜 깬 화적패들 수십 명은 마지못해 그 뒤에 달라붙었다. 마을대표가 구슬픈 상여소리를 선창하자 뒤따르던 농민들이 후렴구를 넣었다. 그 소리가 우레처럼 계곡을 울렸다. 절집 일주문 밖에는 승군들이 목책을 설치해 놓고 그 뒤에서 활을 겨누었다. 그걸 목격한 농민군의 상여소리가 구호로 돌변했다.



 “사람 잡은 부인사 주지는 어서 나와 사죄하라! 고인의 소원대로 삼칠제를 시행하라!”



 갑옷으로 무장한 승군 장수가 나와 경고했다.



 “상여를 돌려라. 더 올라오면 화살을 퍼붓겠다!”



 그런다고 멈출 상여가 아니었다. 쏠 테면 쏴보라며 물밀듯이 밀고 올라왔다. 당황한 쪽은 승군 장수였다.





김종록 소설가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