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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포장디자인 거장 "한국 소주병 보고 깜짝"

중앙일보 2012.03.03 01:31 주말섹션 12면 지면보기
상품은 머리보다는 가슴에 호소한다. 쇼핑에 나선 사람들은 한눈에 반한 것을 고르기 쉽다. 예뻐서, 익숙해서, 고급스러워서…. 일본 대표 패키지 디자인 업체 ‘브라비스 인터내셔널’의 사사다 후미(60) 대표는 이 점에 주목한다. 포장·용기 하나로 기업의 이미지가 결정되고, 그것이 곧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매출로 연결된다고 말한다. 패키지 디자인이야말로 기업에 있어 최고의 브랜드 자산이라는 얘기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를 충분히 확인했다고 했다. 지난 30여 년간 켈로그·닛산·로레알 등 글로벌 기업 외 농심(신라면)·동서식품(T.O.P커피)·하이트(맥스)의 패키지 디자인을 맡아왔다. 서울 논현동 브라비스 서울지사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포장의 속얘기’를 들어봤다.


[j Global] 사사다 후미…아이디어는 경험치다, 젊다고 넘치지 않는다
일본의 대표 포장 디자인 업체 브라비스 인터내셔널 대표

글=이도은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사사다 대표가 패키지 디자인과 인연을 맺은 건 34년 전이다. 세계 최대 브랜드 컨설팅기업인 미국 랜도 어소시에이츠에 디자이너로 입사했고, 이후 수석 디자이너와 일본지사 대표 등으로 18년간 일했다. 1996년 일본에 건너와 직접 회사를 설립했고, 현재 전 세계 6개국의 파트너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브랜드 제품 외에도 일본항공(JAL)과 나가노 올림픽 엠블럼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패키지 디자인이 일반 디자인과 뭐가 다른가.



 “패키지 디자인은 100% 상품을 팔기 위한 마케팅이다. 다른 산업 디자인처럼 디자인 자체를 놓고 ‘좋다. 나쁘다’를 평하는 건 무의미하다. 그래서 나는 종종 패키지 디자인을 낚시에 비유한다. 낚시를 할 때 잡고 싶은 물고기에 맞춰 낚싯대·바늘·실을 정하지 않나. 패키지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어떤 고객에게 팔 것인가에 맞춰야 타깃에 맞게 잘 팔릴 수 있다.”



●패키지 디자인이 왜 중요한가.



 “사람들이 마트에 가기 전에 ‘세제를 사야지’ ‘우유를 사야지’라고 정하지만 무슨 브랜드를 살 것인가는 막상 매장에서 결정하는 때가 많다. 게다가 수많은 물건이 쌓인 진열대 앞에서 제품을 보는 시간은 0.2초에 불과하다. 제품을 들고 고민하는 시간도 20초 남짓이나 될까. 살 생각이 없는 제품까지 쇼핑 카트에 넣게 하려면 패키지 디자인이 경쟁력이다. 더구나 요즘 고객들은 패키지를 곧 브랜드처럼 기억한다.”



●CI(기업 이미지)를 대신한다는 얘긴가.



 “그럴 때가 많다. 흔히 기업의 가치를 알려주는 게 CI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건 기업 홈페이지에서나 볼까, 소비자들과 친밀하지는 않다. 하지만 패키지는 고객이 직접 접하는 제품이고, 서비스다. 특별한 색깔 하나, 무늬 하나만으로도 인상이 콱 박힌다. 그것이 바로 CI보다 강력한 브랜드 자산이다. 포장을 바꿀 때 모든 것을 바꾸려는 기업은 굉장히 위험하다.”



●그렇다면 성공적 패키지의 조건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해야 한다. 기업들은 가끔 패키지 하나에 글자도 큼지막하게, 색깔도 알록달록 튀게 등등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기억 속에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 패키지 디자인은 데커레이션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다. 제품의 핵심을 전달하지 못하면 브랜드의 자산이 될 수 없다.”



●예로 들만 한 것이 있나.



 “코카콜라와 포카리스웨트다. 코카콜라에 빨강과 로고가 없다면, 포카리스웨트에 파랑·흰색이 없다면 두 기업은 어떤 이미지로도 연상될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장수 식품들은 시대에 맞춰 패키지를 바꾸더라도 고유의 컬러·무늬를 함부로 버려선 안 된다.”



●식품군에 패키지의 비중이 더 큰 것 같다.



 “고가품보다 아무래도 소비재가 많은 건 사실이다. 잘못 골랐다 해도 위험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특히 식품군 중에서도 음료·주류 쪽에 비중이 크다. 맛이 비슷한 동종 제품이 다양해서다.”



 사사다 대표가 패키지 디자이너로서 인정받은 제품도 술이었다. 랜도 어소시에이츠에 입사해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하쿠쓰루’라는 일본 술의 라벨을 의뢰받았다. 병과 패키지에 모두 들어가는 디자인이었다. 신참이었지만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참여하게 됐는데 뜻밖에 선배들의 디자인을 제치고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첫 작품인 데다 남들 눈에 사소하게 지나치기 쉬운 라벨이 제품 이미지에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회고했다.



●패키지 디자인을 따로 공부했나.



 “75년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아트센터디자인대학(ACCD)에 진학했다. 원래는 그래픽 디자인을 배우려 했는데 전공이 패키지디자인과 아예 함께 개설돼 있었다. 생각한 바는 아니었지만 배워보니 매우 흥미로웠다.”



●경험상 패키지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뭘까.



 “내가 낸 책의 제목 이름이 바로 그 답이다.『CIKTMUPS(식트맙스)』다. Creative(창의력)·Idea(아이디어), Knowledge(지식)·Technique(테크닉)·Marketing Mind(마케팅 마인드)·Understanding(이해력)·Passion(열정)·Satisfaction(성취와 만족감)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너무 많다. 하나만 고른다면.



 “순서대로인 것 같다. 창의력과 아이디어다.”



●당신이 인정받은 비결도 그것인가.



 “어려운 질문이지만 맞는 것 같다. 나는 열다섯 때 미국에 유학 가서 서른한 살까지 살았다. 순수한 일본인으로 어린 시절을 보내다 성장기에는 미국인처럼 생활했다. 그렇게 두 문화의 경계에 있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색다른 아이디어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고정관념을 깨는 디자인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경우는 없었나.



 “일본의 녹차는 늘 녹색이다. 당연한 선택이다. 그래도 나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어서 흰색·노란색 패키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역시나 외면받았다. 결국 답은 초록 계열이면서도 조금 차별화되는 컬러를 내놓는 것이었다.”



●매번 아이디어를 어떻게 찾나.



 “아이디어는 젊다고 넘치는 게 아니다. 순전히 경험치다. 디자인 의뢰가 오고 나서 생각하면 이미 늦었다. 늘 머리 한쪽에 ‘저장고’를 두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아이디어가 나올 때는 순간적으로 번쩍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나 같은 경우는 잠에서 깨서 이불 밖으로 나오기 전에 많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항상 머리맡에 메모지와 펜을 둔다.”



 마트는 그에게 가장 소중한 ‘아이디어 창고’다. 그는 새로 나온 경쟁 상품을 마주쳤을 때 가장 긴장한다고 했다. 일단 무슨 브랜드인가 알아보고 직접 먹어보기도 한다. 디자이너로서 딱히 상관 있는 일은 아니지 않느냐 했더니 “얼굴 모르는 라이벌에게 지고 싶지 않다”라고 진지하게 답했다. 또 패키지 평가 말고도 내용물이 어떤지 파트너 기업에 조언을 할 때도 있다.



●마트 가면 직업병이 나타나겠다.



 “그런 게 있나 싶긴 한데 자주 가는 건 사실이다. 내 디자인과 상관없는 신제품이 나오더라도 주의 깊게 살펴보게 된다. 마트만이 아니라 종종 백화점 화장품 코너 같은 데도 꼼꼼히 둘러본다. 그런데 나이 든 남자가 자주 갈 곳은 아니라 주위 시선이 남다르긴 하더라. 길 가다가도 쿠키·케이크 전문점이 보이면 자연스럽게 들어갈 때가 많다.”



●직접 디자인한 제품을 볼 때도 있지 않나.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시판된 데뷔작이 샴푸·컨디셔너였다. 수퍼에서 보자마자 한 박스를 샀다. 가족· 친구들에게 기념으로 주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계산대에서 이상하게 쳐다봤다. 지금도 매장에 가면 내가 디자인한 제품을 진열대 앞으로 슬쩍 당겨 놓는다. 잘 보이게 정돈하기도 하고. 디자이너라면 누구라도 그러지 않겠나(웃음).”



●직접 물건을 살 때도 패키지에 영향을 받나.



 “당연하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내가 디자인한 것에 손이 간다(웃음).”



●한국 제품 중에도 눈길 가는 패키지가 있나.



 “소주 디자인이 한국을 대변하는 것 같다. 전통과 문화가 응축됐다고 할까. 단아하면서 투명한 병 모양이 인상적이다. 일본 디자이너로서는 잡기 어려운 부분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패키지는.



 “달걀이다. 오묘하게 밸런스를 맞추면서 곡선이 아름답다. 신이 만든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패키지 디자인은 어떻게 변할까.



 “지금의 트렌드는 지속 가능한 친환경이다. 패키지 디자인도 여기에 영향을 받는다. 리필 제품이 많아지고 일회용 포장이 사라지는 식이다. 또 인터넷 쇼핑이 많아지면 패키지 디자인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 내게는 일종의 위기인데, 이런 시대에 맞춰 패키지 디자인을 변화시키는 게 과제다.”





j 칵테일 >> 은색과 타원형 라벨 붙인 ‘d’ …브랜드 대표하며 매출 급신장



사사다 대표는 스스로 성공적이라 꼽는 세 가지 패키지 디자인을 골랐다. 공통점은 모두 기존의 고정관념을 깼다는 것. 그가 “패키지 디자인에선 창의력과 아이디어가 가장 중요하다”고 언급했던 이유를 그대로 보여줬다.



d(하이트) -‘드라이’의 재해석



제품 특징은 드라이(Dry)한 맛으로 경쟁사와 차별화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언어의 뉘앙스에서 답을 찾았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Dry’라는 단어는 ‘건조하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반면, 일본에서는 ‘상쾌하고 깔끔한 맛’의 표현으로 사용된다. 그는 미각으로서의 ‘Dry’를 내세워 ‘d’라는 로고로 만들었다. 더불어 한국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타원형 병 라벨과 은색을 썼다. ‘d’는 판매 시작과 함께 매출이 급신장했고, 하이트의 핵심 브랜드로 성장했다.



노도고시(기린맥주) - 맥주잔 모양을 캔으로



맥주잔을 모티프로 삼았다. 캔 전체를 맥주잔으로 삼았고, 맥주잔에 마크가 인쇄되어 있는 것처럼 캔에도 찍었다. 그런데 막상 업체는 반대했다. 제품명과 디자인이 삐뚤어진 패키지는 잘 팔리지 않는다는 징크스 때문이었다. 기린 마크가 밑으로 향해 있다는 것도 문제였다. 하지만 그는 젊고 활기차 보이는 디자인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제품은 발매 후 넘버원 브랜드가 됐다. 맥주잔에서 넘치는 거품을 이미지화 한 디자인은 현재 여러 회사에서 모방할 정도다.



도쿄캄파넬라 - 참신한 브랜드 컬러



도쿄캄파넬라는 주로 전철역에서 파는 특산품 비스킷이다. 역이나 공항에서 시간적인 여유 없이 급하게 선택하는 물건이라는 점을 감안해 독창적인 브랜드 컬러를 도입했다. 흔히 경쟁 제품들이 노랑·빨강 등 난색 계열을 쓰는 것과 달리 에메랄드 블루라는 도회적인 컬러를 택해 구석에 놓여도 쉽게 눈길을 끌도록 했다.





WhatMattersMost?



●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동료’다. 가족을 포함해 선후배와 기업 파트너가 모두 내겐 동료다. 지금껏 많은 것을 이뤄왔지만 나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업을 하면서 돈도 벌고 이름도 얻지만 가장 나중에 남는 것은 결국 인간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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