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정은식 통미봉중? … 중국도 북·미 대화에 놀랐다

중앙일보 2012.03.03 01:29 종합 3면 지면보기
김정은의 북한이 선택한 북·미 대화의 수레바퀴가 6자회담을 향해 굴러가기 시작했다. 종착점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멀고 힘든 길이다. 하지만 북한은 한·미가 요구해온 6자회담 재개 전 비핵화 사전조치 이행조건을 거의 수용했다. 북한의 협상 관행에 비춰 이례적이다. 과거와 다른 새로운 핵 협상의 토대가 마련된 것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기대가 나오고 있다.


발길 바빠진 한반도와 주변 4강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통미봉남(通美封南)’. 북한과 미국의 대화가 개시될 때마다 거론되는 용어다. 북한의 남한 봉쇄전술이다. 이게 먹혀 북·미 협상이 진행되는 사이 한국은 철저히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곤 한다. 지난달 29일 북한과 미국이 합의 사항을 동시 발표한 뒤에도 그랬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1일 “우라늄 농축활동 중단 등 비핵화 사전조치를 해야 6자회담이 재개될 수 있다는 논리는 2010년 말 연평도 도발 이후 우리 정부가 제시한 안”이라고 말했다. 이후 한·미가 다듬어 공동안으로 발전시켰고, 이를 북한이 결국 수용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주문한 안을 북·미가 합의했고 이를 우리가 다시 평가·승인해 내놓은 발표인 만큼 핵 회담에서 우리가 소외될 일도 없고, 향후 남북관계 개선 없이 북·미 관계만 쾌속 진행되는 상황도 없다는 주장이다. 미국 고위 당국자도 지난달 29일 합의사항 발표 뒤 “한국은 이번 비핵화 사전조치 협상을 하는 접근방식을 만든 공동설계자(co-architects)였다”고 밝혔다.



 이에 비해 난감한 입장에 처한 쪽은 중국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중국은 ‘6자회담의 무조건 재개’를 주장해 왔다. ‘핵 포기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6자회담 전 비핵화 사전조치가 이행돼야 한다’는 우리 입장과는 달랐다. 북한이 사전조치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의 새 지도부는 기존의 ‘퇴장 전술’이나 ‘추가 요구’ 없이 한·미의 요구를 전격 수용했다.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 전 중국과 협의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외교가 분석이다. 실제 중국이 당혹해하는 정황도 포착된다. 북·미 베이징 회담 사흘 전인 20일 중국은 푸잉 외교부 부부장을 평양에 급파했다. 하지만 그의 카운터파트인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이미 평양을 떠난 뒤였다. 김정일 사망 이후 중국은 북한 지도부에 예를 갖춰 조의를 표하고 식량지원을 하는 등 ‘후견인’ 역할을 부각시켰지만 북한은 중국의 고위급 인사 방북 요청에 답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푸잉이 북한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이틀 뒤 중국 외교부는 이례적으로 방북 사실을 공개했다. 훙레이 대변인은 27일 브리핑에서 “6자회담이 재개될 수 있도록 하자는 데 동의했다”며 “중국은 줄곧 힘이 닿는 선에서 조선(북한)을 도와주고 있다”며 대북 식량지원 사실도 공개했다.



 한편 이번 북·미 합의엔 눈에 띄는 항목이 또 있다. “미국은 문화·교육·체육 등 여러 분야에서 인적 교류를 확대하는 조치들을 취할 의지를 표명했다”는 대목이다. 종전의 북·미 합의에선 볼 수 없는 내용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측의 요구로 담겼다”며 “북한의 대미 관계개선 의지가 상당히 강하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전략목표인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선 중국을 고려하지 않는 외교 스타일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북한 지도부가 최근 대중 의존도가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그 결과가 북·미 합의로 나타난 김정은식 ‘통미봉중(通美封中)’ 전술이라는 분석이다.





◆통미봉남·통미봉중=남한을 배제하면서 미국에 접근하는 북한의 전술을 통미봉남(通美封南)이라 한다. 북한은 미국과 대화에 나서면서 남한을 소외시키는 방법으로 남남 갈등을 유도하고 압박해왔다. 이에 빗대 북한이 미국과 관계 개선에 나서면서 ‘후견인’ 격인 중국을 배제하려는 것을 통미봉중(通美封中)이라 한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