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장대익 ‘다윈의 정원’] 식사 메뉴도 통일? ‘다양성 지수’ 좀 높입시다

중앙일보 2012.03.03 01:30 주말섹션 14면 지면보기
선택의 다양성을 꺼리는 한국 문화



 15년 전쯤, 교환학생으로 온 한 교포에게 물었다. “한국에서 뭐가 가장 인상적이야?” “자동차가 모두 똑같이 생겼어.” “….” 충격이었다. 나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고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들을 유심히 관찰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의 거리 풍경은 달라졌다. 자동차의 다양성 지수는 그동안 상당히 증가했다.



 다른 문화에 대한 경험은 결국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법. 외국 출장을 가서 늘 느끼는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획일적이라는 사실이다. 며칠 전에는 하와이에 출장을 다녀왔다. 멋진 해변이 즐비한 유명 관광지다 보니 비키니 패션도 가지각색이었다. 그런데 그 해변에서 가장 인상적인 광경은 그 수영복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의 몸매였다. 늘씬한 사람들(여성이든 남성이든)만 몸매를 드러내고 해변을 즐기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같으면 민망하다고 생각해 해변에서도 꽁꽁 싸맬 몸매들이 거기서는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



 물론 서양 사람들이 한국인들에 비해 더 개인주의적이고 독립적으로 사고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우리 직장의 회식 풍경을 보자. 그 자리에 가면 이미 음식은 누군가에 의해 일괄적으로 주문돼 상에 올려져 있다. 시간을 절약하려는 차원도 있겠지만 ‘선택의 다양성’을 꺼리는 문화도 한몫한다. 이렇게 미리 준비된 회식 자리가 아니라면 어떤가? 부장이 김치찌개를 주문한다. 과장도 ‘나도 그거요’라고 이어받는다. 조금 튄다던 신입사원은 한참 메뉴판을 뒤적이다가 허무하게 “아무거나 주세요”라고 외친다. 버거나 오믈렛도 자신의 취향대로 재료를 선택해 맞춤형으로 먹는 서양인들의 입장에서는 결코 이해하기 힘든 주문법이다. 내 돈을 내고 사 먹는데 “아무거나 달라”니.



교육제도·군대·아파트 그리고 획일화



 우리는 정말 다양성이 불편한 사람들이다. 대세를 따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튀는 행동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염려가 적지 않은 사회다. 그러니 서양인들에 비해 물건이나 상품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절차와 제도의 다양성도 버겁다. 하지만 가장 부담스러운 것은 생각의 다양성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생각 다양성(Idea-Diversity)’ 또는 ‘I-diversity’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싶다. 그것은 한 개인이 똑같은 현상에 대해 얼마나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집단 전체적으로 그런 생각의 개수가 얼마나 많은지를 나타내는 지수다. 가령 비키니 착용과 관련해 콜라병 몸매의 젊은 여성만이 그럴 자격이 있다는 생각과 어떤 몸매를 가진 누구든 비키니를 입을 자유가 있다는 생각, 그리고 더 나아가 몸매에 대한 어떤 편견도 없는 생각은 생각 다양성의 지수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 경우에는 뒤로 갈수록 지수가 더 높아진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사회의 생각 다양성 지수는 높지 않다. 집단주의적이고 상호의존적인 동아시아 문화를 유산으로 물려받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대학입시 관문 앞에 그 개성 넘치는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교육제도는 생각 다양성의 주적이다. 한참 생각 다양성을 분출시킬 나이의 청년들을 군대에 보내야 하는 상황은 남북 대치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국가의 생각 다양성 지수를 갉아먹는 주요인이다. 좁은 국토에 많은 주민을 수용하기 위해 활용돼 온 아파트 문화는 일상에서 생각 다양성을 정체시키는 외부 환경요인이기도 하다. 그게 그거인 공간을 매일 똑같이 드나드는 우리의 뇌에서 새로운 생각이 샘솟을 리 없다.



뇌에서 새로운 생각이 샘솟으려면



물론 왜 생각이 다양해야 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꼭 획일적이진 않더라도 비슷비슷한 생각이 존재해야 통합도 잘되고 일사불란하게 잘 돌아가며 비용도 적게 들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생각 다양성 지수가 낮아야 좋은 환경, 또는 그 지수가 낮아도 잘 돌아가는 시대는 이제 지나갔기 때문에 올바른 해답은 될 수 없다. 우리가 처한 환경은 수많은 가치와 엄청난 복잡성, 그리고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공존하는 생태계다. 이 생태계에서 살아남고 영향력을 행사하며, 더 나아가 지속가능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생각 다양성의 가치가 필수적이다. 획일적 생각은 급변하는 지식생태계에서 미래를 보장받지 못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생물종 다양성(biodiversity)’을 중시하는 것도 이런 식으로는 가까운 미래에 우리 인류가 멸절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나는 이제 우리가 ‘생각 다양성’도 신경 써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막내 아이가 미국에서 잠시 다녔던 유치원에서는 매주 하루씩 짝짝이 양말을 신고 오는 날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생각 다양성을 길러 주는 문화라는 생각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번 새 학기에는 학생들에게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해 주려고 고민 중이다. 음…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오게 해 볼까? 오, 내 창의력의 빈곤함이여!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