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이 만난 사람] 해외 거주 1년 반 만에 장편 『너의 목소리가 들려』 펴낸 소설가 김영하

중앙일보 2012.03.03 00:18 종합 22면 지면보기
장편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는 길고양이 마냥 떠도는 고아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담겨있다. 뉴욕 자택에서 김영하 작가가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다. 마치 고양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듯한 모습이다. [문학동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사회적 소음’ 취급받는 고아들 … 목소리 찾아주고 싶었다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280쪽, 1만2000원




나는 너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 목소리마저 없다면 너와 나는 어떻게 소통할까. 목소리가 아니라면 문학도 없다. 목소리는 이야기를 입에서 입으로 옮겼고, 그 이야기가 훗날 문학이 됐다. 목소리는, 그러니까, 소통의 최소 단위이자 정교한 매체다. 목소리가 없다면, 나와 너도 없다.



 소설가 김영하(44)가 5년 만에 펴낸 장편『너의 목소리가 들려』(문학동네)는 억눌린 ‘목소리’에 대한 이야기다. 사회적 목소리를 가질 수 없었던 한 고아가 제 목소리를 되찾는 과정을 담았다.



 주인공 제이는 탄생과 동시에 버려진 고아다. 길고양이마냥 험난한 노숙 생활을 하며, 사회로부터 버림 받은 또래들과 어울린다. 스스로 고아이기를 택한 동규는 제이와 운명을 결탁한 인물이다. 한때 함구증(緘口症)을 앓았는데, 제이는 그런 동규의 속내를 읽어냈다. 훗날 목소리를 회복한 동규는 제이의 길바닥 인생에 합류한다. 제이는 폭력적인 사회에 폭력으로 맞선다. 동규를 비롯한 고아들의 우두머리가 된다. 그들이 잃어버린 사회적 목소리를 대신 외치고 싶었던 게다.



 “나는 히어로 같은 게 되겠다는 게 아니야. 사람이 사람한테 저래서는 안 된다는 거야. 내 말이 어려워?”(116쪽)



 이 소설의 작가도 실은 지난 1년 남짓 ‘목소리’를 거의 들려주지 않았다. 지난해 2월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의 죽음을 둘러싼 논쟁에 휩싸여 트위터와 블로그를 중단했다. 미국 뉴욕에 머물고 있는 그에게 e-메일을 보내 소설에 대해 물었다. 작가는 참았던 목소리를 풀어내듯, 장문의 답변을 보내왔다.



 - 근황부터 소개해달라.



 “뉴욕에 머문 지 1년 반쯤 됐다. 일상은 단순하다. 해가 있는 동안에는 집필, 해가 진 뒤에는 독서와 휴식을 한다.”



 - 고아가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한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주인공들이 대부분 고아다. 『검은 꽃』의 이정, 『퀴즈쇼』의 민수가 그랬다. 『빛의 제국』의 기영 역시 낯선 땅에서 스스로 습득한 규칙과 정보에 따라 살아간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 정신적 고아들에 대한 관심인가.



 “작가와 작품의 관계는 산책을 나간 개와 주인과 비슷하다. 때로는 개(작품)가, 때로는 주인(작가)이 앞선다. 정신적 고아들이 등장하는 소설들은 내가 의식하지 못한 가운데 나를 끌고 여기까지 왔다.”



 - 어떻게 구상한 소설인가.



 “5년 전쯤 90년대에 태어나 2000년대에 생을 마감한 한 소년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정신의 사각지대에 있는 소년과 그가 보냈을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취재에 나서자 실제로 그런 소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이 소설에는 그런 소년들이 많다. 10대들이 난교(亂交)를 벌이는 등 읽는 이를 불편하게 하는 장면도 여럿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것은 실제다. 리얼 스토리다. 작가는 “제이와 동규 같은 인물은 사회적 소음으로 여겨진다. 그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고 싶었다”고 했다.



 - 제이는 영혼을 이탈시켜 다른 존재의 고통을 느낀다. 판타지 아닌가.



 “현실을 그대로 전달하는 건 소설가의 일이 아니다. 환상은 우리가 현실의 잔혹함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내는 또 다른 현실이다.”



 -소설은 폭력의 고리처럼 읽히기도 한다.(※제이는 수천 대의 폭주족을 꾸려 복수 이벤트를 벌인다)



 “폭력 역시 하나의 목소리다. 대화가 실패한 지점에서 시작되는 대화일 것이다.”



 작가는 요즘 서가에 꽂힌 책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블로그·트위터를 끊어버린 다음 생긴 습관이다. 작가의 설명이다.



 “내가 사랑하는 저자들로 이루어진 네트워크, 그것이 나만의 ‘소셜 네트워크’다. 늘 그것을 생각한다. 작가로 죽게 될 거라는 것.”



 - 에필로그에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듯한 물음이 나온다. “소설가는 도대체 뭘 할 수 있는 것일까.”(254쪽) 해답을 찾았나.



 “작가는 세상의 고통과 기쁨을 감지해 알린다. 독자의 감수성을 높여 세상을 다르게 보도록 만드는 존재다.”



 우리는 이 소설에서 김영하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 목소리마저 없었다면 이 사회의 정신적 고아들의 고통을 어떻게 알아챌 수 있었을까. 김영하는 “이전 세대의 경험과 규칙이 시시각각 무화되는 세계에서 혼자 살아 남아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고아”라고 했다. 이 소설은 고아들의 목소리다. 아니, 너와 나의 목소리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