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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택시운전, 마트 계약직 … 콩나물 교실서 자란 베이비부머 “내 손으로 먹고살자”는 경쟁력

중앙일보 2012.03.03 00:17 종합 35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실직하고 택시운전에 나선 또래 지인은 “처음 보름 동안은 퇴근할 때 땅을 밟는 게 아니라 구름 위를 걷는 것 같더라”고 했다. 하루 종일 운전하고 다니다 차에서 내리면 배에서 막 하선한 느낌이라는 것이다. 직업적인 택시운전은 중노동에 속한다. 주변 차량과 교통신호, 행인, 오토바이에 신경 쓰다 승객을 발견하면 어떡하든 길가에 차를 대야 한다. 일반시민 입장에서는 일부 운전 거칠고 불친절한 택시기사가 밉상이다. 그러나 대다수 기사들은 호구지책 때문에 사고 위험까지 무릅쓰는 고단한 처지다. 지인이 일하는 서울 K운수만 해도 지금 두 명의 기사가 각각 술 취한 승객에게 맞아 다쳐서 누워 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택시 등 사업용 자동차에 의한 사망자는 2010년에만 979명. 자동차 1만 대당 사망자가 비사업용 자동차(2.6명)의 4배 가까운 10.1명이나 된다. 그런데 이 전형적인 3D(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업종에 요즘 중년 이상 고령자들이 부쩍 꾀어들고 있다. 일반인들도 택시를 타면 ‘노인네’ 기사들이 늘었다는 점을 피부로 느낄 것이다. 작년 말 현재 전국 택시기사 28만7660명 중 만 65세 이상 고령자가 3만1438명이나 된다. 10년 전인 2001년에는 65세 이상이 불과 4302명. 매년 늘어 2005년 처음으로 1만 명을 넘겼고, 2008년 2만 명을 돌파하더니 3년 만에 3만 명 벽을 깼다. 버스기사 역시 고령화 추세다.



 전국택시운전사업조합연합회에 알아보니 올해 1월 택시운전 자격시험에 합격한 1928명 중 절반이 넘는 1006명이 50세 이상이었다. 무슨 의미일까. 베이비붐 세대(1955~63년 출생)가 퇴직을 전후해 택시운전 자격에 눈을 돌리며, 실제 취업자도 많다는 뜻일 게다. 택시뿐인가. 롯데마트가 56~60세 시니어 사원 400명을 모집하는 데 2670명이 몰려들었다. 석·박사 학위 소지자 73명, 기업 간부 경력자 400여 명도 포함됐다.



 베이비붐 세대가 어릴 때는 한 가정 자녀가 평균 6명. 학급당 학생 수가 70명에 가까워 2부제 수업이 흔했다. 콩나물 교실에서 교련훈련까지 받아가며 자란 베이비부머는 권리보다 책임을 먼저 떠올리는 데 익숙하다. 자기 주장을 그악하게 앞세우길 꺼린다. 그 때문인지 청장년이 돼도 정치적 파워에서는 486세대에 밀려났다. 사회보장도 국가·사회의 책임보다 개인, 즉 ‘나’의 할 바를 앞세운다. ‘나라에 기대지 말고 자식들 눈치 보지 말고 내 손으로 벌어먹고 살자’. 이런 기질이 베이비부머를 택시로, 마트로 이끄는 것 아닐까. 60세 이상이 과반수인 K운수 기사들도 한결같이 “박봉이라도 떳떳해 좋다”고 한단다. 콩나물시루 속 치열한 경쟁이 심어준 강인한 자생력이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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