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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대지진 최악 시나리오 막은 '현대판 사무라이'

중앙일보 2012.02.28 03:00 종합 1면 지면보기
3·11 동일본 대지진 당시 미야기현 게센누마시를 덮친 거대 쓰나미로 수㎞ 떨어진 바다에서 뭍으로 밀려와 야산 앞에서 멈춰버린 길이 60m의 어선 ‘제18 교토쿠마루’를 주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게센누마시는 쓰나미의 참상을 잊지 않기 위해 이 배를 철거하지 않고 주변에 국립공원 ‘진혼의 숲’을 조성키로 했다. [게센누마=김현기 특파원]


‘후쿠시마(福島)의 사무라이’-.

[동일본 대지진 그 후 1년] 그런 상황 오면 출동명령 없어도 또 간다



 전 세계는 지난해 3·11 동일본 대지진으로 냉각 장치가 고장 난 후쿠시마 제1 원전의 핵폭발을 막느라 사투를 벌였던 소방대원을 이렇게 불렀다. 일본의 운명을 걸고 방사능을 내뿜는 원자로로 다가가 물을 뿌린 그들의 모습이 죽음 앞에 초연했던 일본의 사무라이와 같았기 때문이다.



 도미오카 도요히코(48·사진) 도쿄 소방청 하이퍼레스큐대 기동대장. 폭발로 천장이 뻥 뚫린 3호기를 향해 살수(撒水) 작업을 진두지휘했던 주인공이다. 대원 수는 50명. 그들의 헌신적 노력 덕분에 원전이 핵분열로 터지는 최악의 상황을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21일 도쿄 아타치(足立)구의 도쿄소방청 제6소방본부에서 만난 도미오카 대장은 ‘사무라이’ ‘영웅’이라는 말이 나오자 손사래를 쳤다. “무슨! 그건 누구라도 했을 일입니다.” 그는 “3·11 1주년을 맞아 곳곳에서 쏟아지는 초청 강연 준비에 바쁘다”며 “스스로 1년 전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후쿠시마로 갔던가를 돌아보곤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마음가짐엔 추호의 변함이 없다고 했다. “만약 다시 그런 상황이 와도 나라를 구하기 위해선 설령 출동 명령이 없더라도 그곳으로 갈 것입니다.”



 당시 원전 상황은 위기의 연속이었다. 3월 12일 오후 3시 36분에 1호기가, 14일 오전 11시 1분엔 3호기가 수소 폭발하면서 일본은 패닉에 빠졌다. 15일 오전 6시 15분에는 2, 4호기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방사성물질이 확산되면서 현장에 최소 인력만 남기고 모두 빠져나갔다. 어떻게든 원자로에 물을 뿜어 냉각시키지 않으면 대참사로 이어질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일본 정부는 당시 원전에서 250㎞ 떨어진 수도 도쿄도 대피구역에 포함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마련했다.



 이때 출동한 게 도미오카 대장이 이끄는 하이퍼레스큐대다. 원거리 대응 송수(送水) 장비를 비롯한 특수장비를 갖춘 최정예 소방대다. 도미오카 대장은 대원들에게 각자 가족들에게 통보할 시간을 줬다고 했다. 어떤 한 젊은 대원은 “소방수 그만두고 가지 마라”는 가족의 애절한 간청을 뿌리치고 달려왔다. 도미오카 대장은 “내 가족도 ‘당신(아빠)이 간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했지만 ‘내가 가서 할 일이 있으면 가는 것’이라고 설득했다”고 털어놨다. 결국 대원 50명 중 한 명의 이탈도 없었다.



 후쿠시마 원전에 투입된 건 3월 18일. 그는 “머릿속에는 ‘이대로 가면 방사능으로 (어린아이들이) 밖에서 놀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니냐. 그래, 한 방 날려주마’하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방사능이니 뭐니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고 한다. 작전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대원들의 가족에게 마음고생을 시켜 미안하다. 이 자리에서 사죄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역시 ‘사무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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