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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동일본 대지진 그 후 1년 ① 쓰나미 피해 산리쿠 해안 100㎞를 가다

중앙일보 2012.02.28 03:00 종합 14면 지면보기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시에서 복구 작업을 하던 주민들이 지난 11일 오후 2시46분, 동일본 대지진 발생 11개월을 알리는 추도 사이렌이 울리자 묵념하고 있다. [지지통신 제공]


지진과 쓰나미가 할퀴고 간 상처는 아프고 깊었다. 지난해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이후 1년이 지난 피해지역의 모습은 여전히 폐허 그 자체였다. 주택도 상점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상상하기 힘든, 말 그대로 황량한 공터였다. 그러나 현장에선 지지부진한 복구 상황임에도 불만보다는 희망에 대한 설렘을 털어놓는 주민들이 많았다. 지진과 쓰나미로 괴멸적 피해를 입었던 미야기(宮城)현의 미나미산리쿠(南三陸), 게센누마(氣仙沼), 그리고 이와테(岩手)현의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 오후나토(大船渡)에 이르는 산리쿠 해안 100㎞ 현장을 지난 16~17일 둘러봤다.

인적 끊긴 마을엔 ‘부활하라 내 고향’ 현수막만 나부껴



 16일 낮 미나미산리쿠. 1만8000명의 주민 중 875명(5%)이 숨지거나 실종된 동네다. 해발 300m 높이의 언덕에 위치한 시즈가와(志津川)고교에서 바라본 마을의 모습은 거대한 운동장 같았다. 간혹 흉하게 철골만 덜렁 남은 건물들이 몇몇 눈에 띌 뿐이었다. 폐자재를 실은 트럭들이 간간이 오갈 뿐 사람의 모습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청소하는 데만 1년 걸렸구나”란 말이 절로 나왔다.



 내륙 쪽으로 2㎞ 이상 들어간 합동청사 건물은 철골만 남았다. ‘부활하라 내 고향, 버텨라’라고 쓰인 현수막만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을 뿐이었다. 500m가량 떨어진 방재청사. 우리로 따지면 동사무소 직원이었던 엔도 미키(遠藤未希·당시 24세)가 마지막 순간까지 대피방송 마이크를 놓지 않았던 곳이다. 3층짜리 이 건물 앞에는 그녀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꽃들과 종이학들이 놓여 있었다. 폐차 더미 옆에서 가설 편의점을 운영하는 세가와 요시히코(52)는 “몇 달 지나면 좀 나아지겠지 했는데 1년이 다 됐지만 쓰레기 더미는 갈 데가 없고 복구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숨을 쉬었다. 미나미산리쿠 총무과의 이와부치 다케히사(岩淵武久) 주사는 “3·11로 미야기현에만 일반쓰레기 19년치인 1569만t의 쓰레기 더미가 생겼지만, 1년 사이 최종 처리된 것은 5%에 불과하다”고 털어놨다. 원인은 간단하다. 다른 지자체들이 “쓰레기에 방사능 오염 위험이 있다”며 수용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로 10분가량 더 북쪽으로 간 ‘헤이세이노 모리(平成ノ森)’ 가설주택. 216세대 561명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가설주택 자치회장인 하타케야마 후미오의 ‘집’으로 들어갔다. 입구에는 부인(61)의 ‘우상’이라는 한류스타 배용준씨의 포스터가 큼지막하게 걸려있었다. 크기는 어림잡아 4~5평. 하타케야마 회장은 “‘물건은 떠내려가도 마음은 떠내려가지 않는다’는 말을 서로가 해주며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주민 오노데라 다쓰코(小野寺辰子·55)는 “‘손녀(4)에게 결코 창피하지 않은 할머니로 남기 위해 앞으론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고 희망의 끈도 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나미산리쿠 북쪽의 게센누마시. 1368명이 숨지거나 실종됐고 마을 곳곳이 큰 화재에 휩싸였던 곳이다. 마을 곳곳에는 아직도 시커멓게 탄 폐차 더미들이 많이 쌓여 있었다. 시시오리(鹿折)지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뭍 위에 올라 서 있는 거대한 어선이었다. 총 길이 60m의 ‘제18 교토쿠마루(共德丸)’. 쓰나미에 밀려온 배다. 요코하마에서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데리고 온 나카야마 가요코(中山加予子·39)는 “아들에게 쓰나미의 무서움을 가르쳐주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게센누마시는 배를 그대로 남겨 국립공원 ‘진혼의 숲’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게센누마에서 차로 다시 30분 북상한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시. 나가스나(長砂)지구의 한 할머니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가수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의 명곡 ‘가와노 나가레노 요니(강의 흐름처럼)’였다. “비에 젖고 실패한 길이라도 언젠가는 다시 비가 갠 내일이 올 테니까. 아~ 흐르는 강물처럼 온화하게 이 몸을 맡기고 싶어. 아~, 흐르는 강물처럼 변하는 계절, 눈이 녹기를 기다리며….” 이토 기요코(伊藤キヨ子·81)라고 이름을 밝힌 할머니는 “언제나 저 마을에 활기가 돌아올까 걱정이 되다가도 이 노래만 부르면 마음이 좀 놓여”라며 활짝 웃었다.



 “주민들의 밝은 표정의 원천은 어디에 있을까”라는 의문에 대한 답은 7만 그루의 소나무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가 얼마 전 ‘사망선고’를 받은 ‘기적의 나무’ 옆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나무 옆에 세워놓은 조그만 팻말에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한 그루 나무의 바람/ ‘조금 쉬겠습니다. 하지만 썩어도 자르지는 말아 줘요. 언젠가 꼭 변한 모습으로 다시 살아날 테니까요’.” 인간과 문명에 대한 자연의 도전을 이겨내겠다는 불굴의 의지가 피해지역을 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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