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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무성영화 앞에 ‘아카데미’는 말을 잊었다

중앙일보 2012.02.28 01:55 종합 2면 지면보기
프랑스 배우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장 뒤자르댕이 ‘아티스트’에 함께 출연한 견공배우 ‘어기’를 안고 환호하고 있다. 웬만한 스타 이상으로 주목받은 어기는 고령(10세) 때문에 이번 영화를 끝으로 스크린에서 은퇴한다. [로스앤젤레스 로이터=뉴시스]


견공배우 어기도 큰절 스타 견공배우 어기가 관객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6일 밤(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코닥극장에서 열린 제84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발표만을 남겨 놓은 장내는 정적에 휩싸였다. 시상자로 단상에 오른 배우 톰 크루즈가 “The Oscar goes to ‘Artist’(작품상은 아티스트입니다)”라고 발표하자 객석에서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런데 그 누구도 환하게 웃진 못했다. 프랑스 흑백 무성영화 ‘아티스트’가 감독상(미셸 하자나비시우스), 남우주연상(장 뒤자르댕)에 이어 작품상까지 휩쓴 데 대한 충격의 표현이었다. ‘아티스트’는 음악상·의상상까지 총 5개의 트로피를 챙기며 올해 아카데미를 석권했다. 이른바 ‘프렌치 인베이전(French Invasion·프랑스 영화의 습격)’이었다. 할리우드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휴고’는 촬영상·시각효과상 등 기술 부문 5개 상 수상에 만족해야 했다.

‘아티스트’ 84년 오스카 역사상 처음 프랑스 영화 작품상



 프랑스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것은 오스카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무성영화가 최고상을 받은 것도 1929년 제1회 시상식 때 ‘날개’ 이후 처음이다. 하자나비시우스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빌리 와일더(할리우드 고전영화 감독)에게 감사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가 ‘아티스트’의 시나리오를 쓰던 2009년은 3D영화 ‘아바타’가 세계적 돌풍을 일으켰던 때. 그는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F1 경기에서 나 혼자 고물차를 탈탈대며 달리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이미지로만 모든 걸 표현하는 무성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감독과 주연배우 아내 ‘아티스트’의 미셸 하자 나비시우스 감독과 이번 영화의 주인공이자 감독의 아내인 베레니세 베호. [로스앤젤레스 AP=연합뉴스]
 뒤자르댕은 조지 클루니·브래드 피트 등 할리우드 특급스타를 제치고 프랑스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아이 러브 유어 컨트리(I love your country·당신들의 나라를 사랑합니다)”라며 “메르시 보쿠(merci beaucoup·감사하다는 프랑스말)”를 연발했다.



 ‘아티스트’의 선전은 예견된 일이었다. 영국 아카데미 7관왕, 골든 글로브 3관왕에 오른 데 이어 올 아카데미에서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강력한 경쟁 상대였던 ‘휴고’(11개 부문 후보)에 압승을 거둘지는 미지수였다.



 ‘아티스트’의 아카데미 정복은 전략의 성공이라는 평가도 있다. 1920~30년대 할리우드를 소재로 삼은 데다 3D 최첨단 기법의 대척점에 있는 무성영화 기법을 적용해 관객과 평단의 노스탤지어(향수)를 자극했다. ‘휴고’ ‘미드나잇 인 파리스’(감독 우디 앨런·각본상) 등 올 아카데미의 화두는 노스탤지어였다. 영화평론가 한창호씨는 “하자나비시우스 감독이 할리우드 고전영화에 대한 미국인의 추억을 자극하고, 영화의 뿌리인 멜로드라마를 앞세우는 등 영리한 전략을 짰다”고 말했다. 감독은 또 존 굿맨·제임스 크롬웰 등 미국의 조연배우를 캐스팅하고, 할리우드 배급사와 손을 잡으며 외국영화에 대한 미국인의 경계심을 허물었다.



 뉴욕 타임스는 이날 “‘아티스트’는 할리우드에 대한 러브레터 같은 영화라는 점에서 아카데미 심사위원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최근 LA타임스 분석에 따르면 아카데미 심사위원단(5800명)의 94%는 백인, 77%가 남성, 평균 나이는 62세로 나타났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아티스트’가 아날로그 정서를 내세워 보수적인 아카데미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며 “그간 미국 영화를 얕잡아보던 프랑스 측이 할리우드에 찬가를 바친 셈이라 할리우드로서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티스트’=1920~30년대 ‘영화의 공장’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무성영화 최고의 스타 조지(장 뒤자르댕)와 유성영화 시대의 새로운 아이콘 페피(베레니세 베호)의 사랑을 다룬 흑백 무성영화. 국내에서는 16일 개봉, 지금까지 5만 명의 관객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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