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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찬·김은지 부부의 ‘착한 결혼식’

중앙일보 2012.02.28 01:30
축의금 탁자 대신 준비된 기부금 부스 앞에서 밝게 웃는 김정찬·김은지씨 부부.



축의금 탁자 대신 기부함 놨죠, 결혼식 하객들이 직접 봉투 넣었어요

청첩장을 열었다. 환히 웃는 신랑 신부 사진 아래에 눈을 의심할만한 글귀가 새겨져 있다. ‘2월 18일 토요일, 전체예식 오후 1시~오후 7시’. 결혼식을 무려 6시간 동안이나 한단다. 그것도 가족예식 2시간, 기부예식 4시간이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식순이다. 일명 ‘착한 결혼식’, 예식의 주인공은 김정찬(34)·김은지(30) 커플이다. 어떠한 곡절이 있었던 걸까. 그들의 ‘착한 결혼’ 준비기를 소개한다.



허례허식을 벗어난 결혼 준비



 연애시절, 지인의 환갑잔치에서 부부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본인에 대한 축하는 얼굴 본 것으로 족하니, 부조금을 에이즈에 걸린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돕는데 써달라는 어르신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허례허식으로 가득한 결혼식은 하기 싫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했던 예비부부는 ‘바로 이거다’ 싶었다.



 신부는 이미 결혼식에 있어선 도가 튼 웨딩플래너다. 그 누구보다도 결혼 과정에서 생기는 유통 마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많은 양의 돈이 흐르는 결혼식, 그는 “식을 준비하면서 불합리하게 빠져나가는 돈의 지점만 개선해도 누군가에게 돈을 나눠주는 것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겠다”는 판단을 했단다.



 지원세력도 든든했다. 효자동 마을공동체‘품애’에선 전반적인 식 진행과 함께 가장 중요한 식장 대여를 도왔다. 정신 없는 ‘메뚜기예식’이 싫었던 부부는 일반 예식장 대신, 관공서의 쉬고 있는 공간을 예식 장소로 물망에 올렸다. 좋은 취지의 행사임을 알리며 모구청 대강당, 여러 학교 체육관에 장소 요청을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모두 부정적이었다. 신랑 김정찬씨는 “결혼 두 달 전만해도 간단한 가족식을 치르는 것으로 마음을 정리했다”고 한다. 그 때 서울 시청에서 별관을 식장으로 사용해도 좋다는 연락이 왔고 신랑은 ‘이제 됐다’며 기뻐했다.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착한 결혼이라는 취지를 읽은 포토그래퍼, 청첩장업체, 웨딩업체의 도움으로 보다 저렴하게 식을 준비할 수 있었다. 야금야금 비용을 줄이니 같은 규모 예식의 30% 가격으로 식을 진행할 수 있었다. 결혼식장 복도에 축의금 탁자 대신 아름다운재단, 열매나눔재단, 환경운동연합의 부스가 놓일 수 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객들이 본인의 이름으로 기부하는 진풍경이 마침내 연출된 것이다.



부모님 위한 일반 예식+신랑신부의 기부 예식



 가장 큰 난관은 양가 부모님을 설득하는 과정이었다. 아들 딸의 깊은 뜻은 십분 이해하지만, 그래도 부모님 나름대로 일반적인 방식으로 청하고픈 하객들이 있을 터였다. 지방에서 올라온 어르신 하객들에게 본인들의 방식만을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예식이 가족예식과 기부예식으로 나눠진 것도 이 때문이다. 가족예식은 부모님의 하객들을 불러 보통의 결혼식과 유사하게 진행했다. 축의금을 받고 식사도 제공했다. 대신 신랑 신부 어머니의 편지 낭독, 신부 동생의 피아노 반주와 노래, 신랑 이모의 오카리나 연주까지. 가족식에서도 이들 부부의 개성을 한껏 살렸다.



 하이라이트인 기부예식이 본격적인 신랑신부만의 무대였다. 부부가 청한 하객은 모두 기부예식에 초청됐다. 4시간의 기부예식 내내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하객은 오후 3시부터 7시 사이 본인 스케쥴에 따라 알아서 방문하면 된다. 다과파티를 겸하며 신랑 신부와 사진도 찍고, 얼굴 도장만 찍는 게 아니라 오래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누구를 초청해야 할지 휴대폰 목록을 보고 있는데 관계가 애매한 사람들이 많은 거에요. 하지만 전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었어요. 다 부르면 되니까요. ‘식이 조금 특별합니다. 무리하지 마시고 비는 시간에 들러주세요’ 라고 말이죠.” 기부예식이 사람들을 좀 더 편안하게 대할 수 있는 장치가 됐다. 부부가 입을 모아 말하는 착한 결혼식의 장점이다.



 부부는 자신들의 잔치 노하우를 여러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신부까지 최근 마을공동체 ‘품애’에 적을 두면서 이들처럼 색다른 결혼을 원하는 예비부부에게 노하우를 전수해주겠단 계획이다.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많은 분들이 우리의 뜻을 이해하고 지지해 줬다”는 신랑 신부는 “이제 더 많은 아이디어가 샘솟는다“며 자신 있게 웃었다.





김정찬·김은지씨 부부가 전하는 ‘착한 결혼’ 노하우



● 식장 : 진행 시간에 제약 없는 관공서, 학교, 갤러리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단, 대여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으니 충분한 여유를 두고 섭외를 시작해야 한다.



● 식사 : 조리 공간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요리를 미리 해서 가지고 오는, 저렴하면서도 질 좋은 전문 케이터링 업체를 선택한다.



● 예복 : 김정찬씨(신랑)는 평상시에도 양복으로 활용 할 수 있는 디자인을 골라, 예식 때만 깃 부분에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새틴 공단을 덧댔다. 웨딩드레스는 사전에 인터넷으로 충분히 조사해, 한 곳에서 입어본 후 바로 결정해 피팅비를 줄였다.



● 웨딩사진 : 대행사를 이용하면 가격에 거품이 생기기 쉽다. 젊은 사진작가 혹은 재능기부작가 개인에게 직접 연락해보자. 사진작가와 직접 소통할 수 있어 결과에 대한 만족도도 크다.



● 청첩장 : 양가 부모님에게 미리 명단을 받아, 그만큼만 청첩장을 제작한다. 신랑·신부의 손님에겐 온라인·모바일 청첩장을 돌린다.



● 기부 : 결혼식 전 평소에 관심 있던 시민·사회단체에 연락해 어디에 기부할 것인지를 정한다. 식 당일에는 기부처에서 부스를 설치해 기부금을 받을 수 있도록 미리 협조를 구한다.



<한다혜 기자 blushe@joongang.co.k/사진=최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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