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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연 1% 올리겠다 … 일본, 엔고 극약 처방

중앙일보 2012.02.28 00:27 경제 1면 지면보기
시라카와 마사하키 일본은행 총재. [블룸버그]


일본 엔화 가치가 9개월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26일 일본 도쿄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와 견준 엔화 가치는 81.25엔에 이르렀다. 2007년 6월 이후 4년 반이 넘도록 이어진 엔고 흐름이 한 고비를 맞는 듯하다. 엔화 가치가 올 초 이후 6% 가까이 떨어졌다. <관계기사 E9면>

시라카와 일본은행 총재, 물가상승목표제 효과 … 엔화 6% 급락



 스위스계 금융그룹인 UBS 외환 투자전략가인 만수르 모이우딘은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흐름이 바뀌고 있는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흐름은 엔고 트렌드다. 엔고에서 엔저 쪽으로 시장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엔화 가치 하락은 확률이 낮은 사건이다. 글로벌 외환시장에선 엔화 강세가 올해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게 다수설이었다. 그 바람에 메이저 금융그룹들은 올 연말 엔-달러 환율 예상치를 수정하느라 바쁘다. 로이터 통신은 “UBS 등 많은 금융그룹이 올 연말 엔-달러 환율을 83~85엔 선으로 수정했다”고 이날 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외환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일본의 기록적인 무역수지 적자와 유럽 재정위기 진정기미 등이 엔화 수요를 떨어뜨렸다”며 “여기에다 ‘시라카와 물가상승목표제’가 엔화 가치 하락에 큰 몫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물가상승목표제는 일본은행(BOJ) 총재인 시라카와 마사하키(白川方明·63)가 이달 14일 내놓은 디플레이션 처방이다. 그날 시라카와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연 1% 오르도록 금융통화 정책을 펴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그는 일본판 양적 완화(QE) 자금인 자산매입기금을 55조 엔(약 760조원)에서 65조 엔(약 890조원)으로 10조 엔 늘렸다. 지난해 10월 5조 엔을 늘린 이후 넉 달 만이다. 그는 이 돈으로 금융시장에 엔화 홍수를 일으켰다. 일본 정부의 온갖 외환시장 개입에도 꿈쩍하지 않던 엔화 가치가 고개를 떨구기 시작했다.



 시라카와 물가상승목표제는 ‘물가안정목표제(인플레이션 타깃팅)’와 정반대다. 한국은행(BOK)과 유럽중앙은행(ECB) 등이 채택한 물가안정목표제는 물가지수가 일정 선을 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준금리 등을 조절하는 정책이다. 반면 시라카와는 물가 상승을 부추기기 위해 통화정책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BOJ는 2001년 가장 먼저 양적 완화를 채택했다. 10여 년이 흐른 뒤 BOJ는 다시 물가상승목표제란 낯선 실험에 첫 도전을 하는 셈이다.



 양적 완화 개발자인 영국 사우샘프턴대 리하르트 베르너 교수는 지난 주말 중앙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시라카와 총재가 중앙은행 역사에 없는 실험을 시작했다”며 “그의 처방이 외환시장에선 일단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일본의 고질병인 디플레이션을 바로잡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물가상승목표제 중앙은행이 디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악순환을 해결하기 위해 물가가 일정 선 이상으로 오르도록 하는 정책. 프리데릭 미시킨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와 이토 다카하시 일본 도쿄대 교수가 2002년 처음 제시했다. 두 사람은 “BOJ가 물가상승 목표를 시장에 제시해야 한다”며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을 꾸준히 실시하면 시장 참여자들이 합리적으로 반응해 디플레이션이 완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정책으로 한때 미 중앙은행 내부에서 논의된 실업률목표제나 스위스 중앙은행의 환율목표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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