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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욱 과학 산책] 사랑의 호르몬

중앙일보 2012.02.28 00:13 종합 33면 지면보기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
코메디닷컴 미디어본부장
새로 시작한 연애 관계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혈액 중의 옥시토신 농도를 측정하면 예측이 가능하다. 최근 ‘심리신경내분비학’ 저널에 발표된 연구 결과다. 옥시토신은 엄마와 아기, 혹은 연인이 감정적으로 밀착할 때 뇌에서 분비되기 때문에 흔히 ‘사랑의 호르몬’으로 불린다.



 여기에 착안한 이스라엘 바르일란 대학교 연구팀은 사귄 지 3개월이 채 되지 않은 20대 연인 60쌍과 연인이 없는 자원자 43명의 혈액 표본을 비교했다. 그 결과 연인들의 옥시토신 수준은 독신자들의 거의 2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6개월간 추적한 결과 이 호르몬 수준이 높았던 연인들은 관계가 지속됐고 그렇지 않았던 커플은 깨진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팀은 “사랑에 빠진 초기 몇 개월간의 옥시토신 수준은 연인 관계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를 예측하는 지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옥시토신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반부터다. 자궁을 수축시켜 분만을 도우며 출산 후 젖이 잘 나오게 만드는 기능이 확인됐다. 그 후 사랑과 유대, 신뢰, 관대함, 안정감 강화 등의 긍정적인 기능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예컨대 임신 초기 3개월간 이 호르몬 수준이 높았던 여성은 출산 후 아기와 더욱 강한 유대 관계를 보인다. 남성이 사정할 때도 분비돼 섹스 상대방과의 심리적 유대 관계를 강화해준다.



 근래 확인된 것으로는 마음을 푼푼하고 너그럽게 해주는 기능이 있다. 2007년 미국 ‘공공과학도서관’ 저널에 실린 논문의 내용이다. 연구팀은 자원자들에게 돈을 나눠 주고 이를 다른 사람과 나눠 갖게 하는 실험을 했다. 배분 비율은 자기 마음대로 정하되 상대방이 이 비율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신과 상대방 모두 한 푼도 건지지 못하는 ‘최후통첩’ 게임이었다. 실험 결과 콧속에 옥시토신 스프레이를 뿌린 집단은 그러지 않은 집단보다 80% 더 많은 액수를 남에게 주는 것으로 확인됐다.



 소위 ‘방어적 공격’을 유발하기도 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구성원을 보호하기 위해 이를 위협하는 외부인을 공격하는 것이다. 예컨대 군인이 전우를 보호하기 위해 적을 공격하는 행동이 이에 해당한다. 2010년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은 사람에게서 이를 확인한 최초의 성과로 꼽힌다. 하지만 군사적으로 악용할 위험성을 우려하게 만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일상생활에서 옥시토신은 연인이 눈을 맞추고 있을 때나 애완동물을 쓰다듬을 때, 그리고 누군가와 포옹할 때 분비된다. 최근엔 청소년 사이에서 이상하게 변질됐다고 하지만, 원래 ‘프리 허그(Free Hug·모르는 사람 안아주기)’ 운동은 이런 점에서 생리학적 근거가 충분하다.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코메디닷컴 미디어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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