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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시련의 한·일 관계

중앙일보 2012.02.28 00:07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현기
도쿄총국장
지난주 일본 외무성에 눈에 띄는 인사가 났다. 총리 관저 내 내각정보조사실 차장에 가네하라 노부가쓰(兼原信克·53) 주한대사관 총괄공사(대사대리)가 임명됐다. 본인이 “부모님 간병을 하고 싶다”며 본국 근무를 자청했다지만 고개를 갸웃하는 이도 적지 않다. 주한 대사관의 2인자가 부임한 지 불과 1년 만에 한국을 떠났으니 말이다. 그것도 본부 자리도 아니고 말이다.



 엄밀히 보면 이는 일본의 대한국 외교의 기류 변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른바 ‘탈(脫)한국’이다. 지난해 12월 교토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의 태도도 그랬다. 당시 회담장에 있었던 소식통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국에 결혼 온 베트남 여성들이 인권적으로 유린당해 베트남 국민들이 슬퍼하고 분노할 때 난 마음으로 그들을 달래고자 노력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법보다 인도적 지원, 감정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장시간에 걸쳐 애절하게 호소했다고 한다. 쭉 듣던 노다 총리는 이렇게 답했다. “그건 그렇고 위안부 (평화)비 빨리 철거하시죠.” 설득이나 호소를 받아들일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더 놀라운 건 한국이 일 정부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내민 두 가지 ‘카드’조차 모두 외면당했다는 점이다. 하나는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재개, 또 하나는 ‘한·일 방위협력’ 협의였다. 그동안 일본 쪽이 강하게 희망하던, 아니 희망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것들이다. 그걸 일 정부는 “우린 지금 특별히 한·일 FTA를 서두를 필요가 없거든요, 양국 방위협력도 그쪽(한국)이 더 원하는 것 아닌가요”라며 걷어차 버렸다.



 잘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요즘처럼 한·일 외교가 꽉 벽에 막힌 경우도 드물다. 친한파인 센고쿠 요시토(仙谷由人) 전 관방장관,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부총리도 요즘은 좀처럼 한국 문제에 나설 생각을 않는다. 듣기만 할 뿐 사실상 손을 놓았다. 대신 “일본은 왜 한국에 사과만 해야 하느냐”며 도발하는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시장 같은 인사가 목청을 높이고, 국민이 호응하는 시대가 됐다.



 원인은 명료하다. 먼저 한국에 대한 일본 내 부채의식이 사라졌다. 한국의 눈부신 경제발전도 그걸 부추겼다. “너희들이 한 행위를 잊었느냐” “양심도 아량도 없느냐”는 호소형 외교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아쉽지만 그게 현실이다. 또 하나, 일본 지도층의 한국에 대한 절박함, 혹은 절실함이 사라졌다. 같이 가야 하는 동반자라기보단 ‘믿지 못할 경쟁자’란 인식이 두드러진다.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을 중시한다”는 통설에 안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양국 관계는 이제 제로에서의 재출발을 강요받고 있다. 패러다임 시프트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가슴이 아닌 머리로 하는 한·일 외교에 대비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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