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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ISSUE] 110년 전통 간장·가쓰오부시 생산지, 규슈를 가다

중앙일보 2012.02.23 03:20 주말섹션 2면 지면보기
나무처럼 단단한 가쓰오부시는 대패를 이용해 포를 뜬다. 이렇게 종잇장처럼 얇게 뜬 포는 동그랗게 말린 모양이 꽃처럼 보인다고 해서 ‘하나(꽃)가쓰오’라 불리기도 한다.
일본 최남단에 위치한 규슈 지역은 예부터 ‘맛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일본의 3대 우동 중 하나인 ‘고토우동’을 비롯해 ‘하카타(후쿠오카의 옛 지명) 라멘’ ‘나가사키 짬뽕’ ‘모쓰나베(소곱창전골)’ 등이 모두 규슈 지역 향토요리로, 지금은 일본 음식 대표주자로 꼽히는 것들이다. 규슈가 일찍부터 음식으로 유명해진 이유에 대해 일본 요리 연구가 오노 기요시(50)는 “한국의 제주도보다 위도가 낮기 때문에 기후가 온화해서 농수산물이 풍부한 것이 첫 번째 이유고, 신선한 재료의 맛을 그대로 즐기기 좋아하는 취향이 두 번째 이유”라고 답했다. 무거운 양념은 피하고 식재료가 가진 천연 그대로의 맛을 북돋워주는 소금·간장·가쓰오부시만으로 요리하는 게 ‘규슈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그 맛의 비법을 찾아 규슈가 자랑하는 110년 전통의 간장 공장과 가쓰오부시 공장을 찾아가 봤다.


1000L 삼나무통 64개 … 모로미·소금물 넣고 2~4년 숙성

후쿠오카·가고시마=서정민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일본 후쿠오카현 이토시마시에 있는 간장 공장 ‘기타이소유’. 110년 동안 전통 제조법을 지켜왔다. 80년 된 수십 개의 삼나무 통에는 ‘모로미’라고 하는 ‘콩+밀가루’ 반죽과 소금물이 들어 있다.


전통 간장 공장 ‘기타이소유’



일본 간장(일본어 ‘소유’)은 한국과 똑같이 콩을 기본 재료로 하지만 제조 과정은 많이 다르다. 뜨거운 증기로 찐 콩과 볶은 후 가루를 낸 밀을 섞어 반죽을 만드는데 이것을 일본에선 ‘모로미’라고 부른다. 이 모로미에 곰팡이균을 더한 후 소금물을 붓고 오랜 시간 발효·숙성시키는 게 일본식 전통 간장 만들기다. 최근에는 곰팡이균 대신 식물성 아미노산 액을 인위적으로 더하거나 발효·숙성 기간을 단축시키는 방법으로 간장을 대량 생산하고 있다.



1 일식당 ‘이즈미’의 생선 요리. 간장과 사케를 6: 4의 비율로 섞은 양념에 흰 살 생선을 15분 정도 재워두었다가 불에 살짝 구웠다.
 후쿠오카현 이토시마시에 있는 간장 공장 ‘기타이소유’는 110년 동안 전통 제조법으로 간장을 만들어 온 곳이다. 현재는 창업자의 6대손인 히로시 야마가미(29)가 현장을 책임지고 있다. 겉모습은 농촌의 흔한 창고처럼 보이지만 여기에 일본 전통 간장을 만드는 두 가지 비밀 도구가 숨어 있다. 하나는 곰팡이균이 모로미에 자연스럽게 앉도록 보관하는 발효 창고다. 두 번째는 모로미에 소금물을 붓고 숙성시키는 데 사용되는 삼나무 통이다. 기타이소유에는 1000L 크기의 삼나무 통이 64개나 있는데 모두 80년 이상 된 것들이다. 히로시는 “80년 전에는 이보다 작은 통을 썼다”며 “통 속 벽면에 간장 맛을 좌우하는 모든 요소가 붙어 있기 때문에 절대 통을 바꿀 수 없다”고 했다.



 하루에 한 번 통을 3분씩 저어주는 게 기타이소유 직원들의 주요 임무다. 통 속의 유해한 가스를 빼내고 찌꺼기인 거품을 걷어낸 후 발효와 숙성이 잘 이루어지도록 모로미와 소금물을 섞어주는 과정이다. 통 옆에는 숙성 기간을 적은 숫자가 각각 적혀 있다. 짧게는 며칠부터 길게는 4년 전 날짜까지 있다. 이곳에선 2년 6개월부터 4년까지를 적정 숙성 기간으로 친다. 통 속에 있는 숙성 액에서 간장을 추출해 내는 작업도 특별하다. 일단 가로·세로 1m 크기의 결이 고운 천에 숙성 액을 골고루 바른 후 1m 높이로 차곡차곡 쌓는다. 서로의 무게로 눌린 천들은 간장 즙을 떨어뜨리기 시작하고, 이렇게 하루 정도 지난 후에는 기계로 압착해 마지막 한 방울까지 간장을 짜낸다. 간장 액이 모인 통에서 위에 뜬 기름을 걸러내면 비로소 맑은 간장이 완성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타이소유의 간장들은 일반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간장들에 비해 값이 다섯 배 정도 비싸다. 하지만 맛의 깊이가 뛰어나서 일본 최고의 요리집들이 앞다투어 사간다고 한다.



2 ‘기타이소유’에선 가쓰오부시 다시, 유자, 고추기름 등을 가미한 14종류 맛의 간장을 만들고 있다.
3 ‘이즈미’의 미야다케 나오히로 주방장이 생선을 조리고 있다. 양념장은 사케 6, 간장 4의 비율로 만든다. “열 때문에 알코올이 날아간 사케는 단맛과 향이 강해져 요리의 풍미를 한층 끌어 올린다”는 이유에서다.
4 후쿠오카가 연고지인 ‘소프트뱅크’ 야구단의 단골 식당 ‘하쓰키’의 모쓰나베(소곱창전골) 요리. 국물은 가쓰오부시, 다시마, 말린 멸치, 말린 고등어, 배추를 넣고 끓인 국물과 간장을 7:1의 비율로 섞어 만든다. 여기에 소곱창과 양배추, 우엉, 부추, 두부를 넣고 끓여 먹는다.


 일본 요리 전문가 오노는 “일본에선 예부터 마을 단위로 간장을 만들었다”며 “과정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개인 가정에선 담글 수 없었다”고 알려줬다. 지금도 일본에선 큰 도시마다 간장조합에서 일률적으로 간장을 대량 생산한다. 그 간장을 주변의 작은 공장들이 사간 뒤 각자 가미를 해서 브랜드 특유의 간장을 만들어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후쿠오카시 정·재계 인사들의 단골집으로 유명한 일식당 ‘이즈미’의 주방장 미야다케 나오히로(65)는 “일본 요리에서 간장이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했다. 그만큼 일본 요리에서 간장은 중요한 요소다. 덕분에 특정 요리에 어울리는 간장이 따로 시판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계란노른자를 얹은 밥(다마고가케고황)에 뿌려먹는 간장이 별도로 있다. 다양한 간장 중 ‘고이구치소유’와 ‘우스구치소유’는 일본의 모든 주방에서 구비하고 있는 필수품이다. 고이구치소유는 색이 진해서 졸임 요리에 주로 쓰인다. 색이 맑은 우스구치소유는 다시를 만들거나 샐러드에 뿌려 먹는 드레싱에 사용된다. 같은 양을 쓰면 짠맛은 우스구치소유가 더 강하다. 마치 한국 주부들이 ‘조선간장’과 ‘왜간장’을 갖춰두고 구별해 사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5 마쿠라자키시의 유명 가쓰오 전문식당 ‘맘보우’의 가쓰오회덮밥이다. 밥에 가쓰오 다다키(숯불로 겉만 살짝 굽는 방법), 가쓰오부시, 간 마, 깨소금을 얹고 간장을 뿌려 비벼 먹는다.
6 따뜻한 밥에 가쓰오부시, 달걀 노른자위를 얹고 간장을 뿌려 먹는 요리 ‘다마고가케고황’. ‘달걀을 부어 먹는 밥’이란 뜻이다.
7 규슈 지역에선 우동보다는 따뜻한 소바(메밀 면)를 즐겨 먹는다. 온소바 전문식당 ‘하나모토’에선 가쓰오부시를 비롯해 다시마와 여러 종류의 생선 말린 것을 넣고 끓여 물을 만든 다음 소바를 담고 우엉, 매실장아찌, 가쓰오부시 등을 얹어 내놓는다.




가쓰오부시 일본 최대 생산지, 마쿠라자키



끓는 물에 가쓰오부시를 넣고 약한 불에서 10분 정도 끓인 후 얇은 면포에 건더기를 걸러내면 맑은 국물의 ‘가쓰오부시 다시’가 만들어진다. 일본 요리에선 이 가쓰오부시 다시가 여러모로 쓰인다. 우동·소바 국물 또는 전골·찌개 등 냄비요리를 만들 때는 물론이고 간장과 적당한 비율로 섞어서 다양한 맛의 소스를 만들 때도 쓰인다. 일본인들은 가쓰오부시의 맛을 ‘우마미’라고 표현한다. 첫 맛은 짭조름하고 혀끝으로 갈수록 쓴맛·신맛·단맛이 깊게 퍼지는 이 복잡한 맛을 우리말로는 ‘감칠맛’으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그리고 이 감칠맛은 아주 복잡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손으로’ 만들어진다.



 규슈 지역에서도 가장 남쪽에 위치한 마쿠라자키시는 태평양과 맞닿은 항구도시로 인도양에서 잡힌 가다랑어의 집산지다. 2만5000명 인구의 5%가 가쓰오부시 가공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시내에만 57개의 가쓰오 가공 공장이 모여 있다. 일본 전역에서 시판되는 가쓰오부시의 40%가 바로 이곳 마쿠라자키시에서 생산된다. 우리가 찾아간 마토바수산은 종업원 수 38명의 규모로 한 달에 120t의 가쓰오를 소화하는 곳이다.





 가쓰오부시의 품질은 훈제 과정과 ‘가비(발효시켜 곰팡이 균을 피게 하는 작업)’ 횟수에 따라 결정된다. 훈제에 사용되는 참나무의 종류와 놓는 요령, 시간별 위치 이동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훈제가 끝나면 가비를 시작하는데 15일간 곰팡이균 창고에 보관했다가 하루 동안 햇볕에 널어 말리는 게 1차 과정이다. 보통의 가쓰오부시는 2차 가비만으로 끝나지만 마토바수산의 경우는 3차 가비가 기본이다. 가쓰오부시 중 상품(上品)은 ‘혼(진짜)가레부시’라고 부르는데 3차 가비 이상의 것들 중에서 선별된다. 공장장 아쿠네 슈이치(50)는 “6차 가비를 한 게 최상품”이라며 “유명한 일본 요리집에 주로 납품한다”고 했다. 사실 6차 가비까지 한 혼가레부시는 일반 가정집에선 쓸 수가 없다. 대리석보다 딱딱하기 때문에 전문 장인이 아니면 대패질을 할 수 없어서다.



 마쿠라자키시 관광 가이드이자 ‘가쓰오부시 마스터(일본 정부에서 가쓰오부시 전문가에게 주는 일종의 자격증)’인 다나카 가쓰요(67)는 “가쓰오부시에 깨소금을 뿌려 명란젓과 함께 주먹밥을 만들면 맛있다”고 알려줬다. 카레를 만들 때 넣으면 매운맛이 부드러워진다는 것도 다나카가 알려준 비법이다. 뜨거운 물에 미소(일본된장)를 풀고 가쓰오부시를 넣어 먹는 ‘차부시’는 마쿠라자키에서만 먹는 음식이다. 밥상에서 국으로 먹기보다는 차처럼 마시는 음료라는 게 독특하다.





규슈에서 찾은 규슈의 맛 … 자연주의 식당 ‘가야노야’



규슈의 자연주의 레스토랑 ‘가야노야’는 간장을 이용한 드레싱으로 유명한 곳이다. 규슈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인 후쿠오카에서 차로 50분 정도 떨어진 한적한 숲속에 있다. ‘볏짚으로 만든 집’이라는 이름답게 일본 전통식 지붕을 올린 80석 규모의 식당으로, 모든 메뉴는 코스로만 판매된다. 코스에 들어가는 단품 메뉴들은 매일 바뀐다. 그날 가장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이용해 주방장 오카베 겐지(39)가 매일 아침 메뉴를 새로 짜기 때문이다.



 가야노야의 모체는 1898년 작은 간장 공장에서 출발한 기업 ‘쇼보안’이다. 1975년부터 간장을 이용해 다양한 드레싱을 만들었던 쇼보안이 5년 전 레스토랑 가야노야를 열었다. 이곳의 컨셉트는 86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슬로 푸드 운동’과 맥을 같이한다. 인근 지역에서 생산되는 신선한 제철 식재료를 이용한다는 게 기본 개념이다.



 그 때문에 가야노야의 모든 식재료는 인근 밭에서 생산된 것들을 사용한다. 수산물은 후쿠오카시에 있는 수산연합시장에서 매일 사들인다. 모든 음식에 사용되는 드레싱도 화학조미료와 인공 감미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고 신선한 재료들과 쇼보안에서 만든 간장·식초만을 이용해 직접 만든다. 5년 전 레스토랑을 시작하면서 오카베가 직접 개발한 것들이다.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은 ‘흰깨 드레싱’ ‘토마토 드레싱’ ‘양파&간장 드레싱’ ‘생강 드레싱’이다. 가야노야에 들렀던 손님들이 각종 드레싱의 제조법을 묻자 아예 ‘가야노야 자연주의 드레싱 4종’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도 시작했다(한국에서도 인터넷 쇼핑몰 ‘도토리노모리(www.cooljapan.kr)’에서 살 수 있다). 





각각의 드레싱은 다음 재료들을 섞은 후 블렌더로 곱게 갈아주면 만들 수 있다.(T=테이블스푼, t=티스푼)



●생강 드레싱 생강 30g, 간 사과 2T, 끓인 백포도주 2T, 레몬즙 1T, 쌀 식초 1T, 꿀 1T, 소금 1/2t. ●양파&간장 드레싱 볶은 양파 1/4개, 볶은 당근 1/4개, 다진 마늘 1t, 쌀 식초 1T, 간장 1T, 유자즙 1T, 설탕 1/2t, 소금 1/2t, 미림 1T, 끓인 백포도주 2T, 올리브오일 4T. ●흰깨 드레싱 마요네즈 3T, 깨소금 2T, 땅콩버터 1T, 미림 1T, 식초 1T, 간장 1t, 마늘 1/2t, 설탕 1/2~1t, 소금 1/4t, 포도씨유 1T, 참기름 1T. ●토마토 드레싱 방울토마토 10개, 볶은 양파 1/4개, 식용유 3T, 올리브유 3T, 쌀 식초 3T, 설탕 1t, 소금 1/2t, 향신료(바질) 1t.(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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