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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헤리티지] 포슬린 아티스트 승지민씨

중앙일보 2012.02.23 03:20 주말섹션 6면 지면보기
지민아트 승지민 대표가 1991년 결혼 당시 시어머니에게서 받은 화관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이날 승 대표가 착용한 귀고리도 결혼식날 전통 혼례복을 입고 달았던 것이다.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셨어요. ‘우리 민족은 유전적으로 우수하다’ ‘우리 문화만큼 독창적인 문화가 없다’ ‘물건도 국산이 제일 좋다’ 그러셨죠. 어렸을 땐 그런 아버지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는데….”


시어머니가 주신 활옷·원삼·화관… 이사 때마다 꼭 챙기는 ‘보물 1호’

 포슬린 아티스트 승지민(46·지민아트 대표)씨는 “어느 틈에 내게도 ‘한국적인 것’에 대한 애정과 경외감이 싹트게 됐다”고 말했다. 승씨의 아버지는 승병일(87) 전 광복회 부회장이다. 1943년 오산학교 재학 시절 친구들과 항일단체 ‘혈맹단’을 결성했고, 45년 3월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중에서 광복을 맞았던 독립운동가다.



 “해방 이후 사업을 하시면서 경제적 여유가 생기고도 아버지는 철저하게 국산품만 쓰셨어요.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셨죠.”



 86년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승씨에게 아버지는 카메라를 선물해 주셨다. 당연히 국산이었다. “외제 카메라에 비해 덜 세련돼 보여 솔직히 실망스러웠다”는 게 승씨의 기억이다.



 승씨가 결혼 후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도요타 미니밴 프레비아를 탄 적이 있었다. 아이들 자전거 싣고 다니기 편할 듯해 중고로 구입한 차였다.



 “아버지가 보시더니 충격을 받으신 듯했어요. ‘한국 차가 제일 좋은데… 너무 좋은데…’ 하시며 나무라셨죠.”



 그랬던 승씨 역시 이젠 ‘우리 것이 최고’라는 아버지의 가치관에 100% 젖어 산다.



승지민 대표가 달항아리에 그림을 그려 완성한 포슬린 아트 작품 ‘정과동(Stillness & Movement)’.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새너제이주립대에서 여성학 석사학위를 받은 승씨는 98년 폴란드에 거주하며 포슬린 아트를 접하게 됐다. 포슬린 아트(도자상회기법)는 유약을 입힌 백자 위에 다양한 색상의 안료로 그림을 그려 넣는 예술이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본격적으로 포슬린 아트를 배운 승씨는 2년 전부터 달항아리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달항아리 표면에 화려한 색을 입혀 작품을 만든다.



 “달항아리 참 아름다워요. 그렇다고 옛날 달항아리만 좋아하면서 17세기 문화에 머무를 순 없죠. 우리 민족의 화려한 색감을 달항아리에 결부시켜 21세기에 맞는 정서로 표현하려고 해요.”



 해외에서 배워온 기술을 펼칠 장(場)으로 가장 한국적인 소재를 선택한 승씨. 그만큼 그는 우리 색감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승씨는 “단청과 궁중복식·민화 등을 보라”면서 “백의민족·백자 등을 떠올리며 우리 민족이 담백한 색만 좋아한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착각”이라고 말했다. 승씨가 화려한 우리 색에 눈을 뜬 데는 시어머니의 영향이 크다. 승씨의 시어머니는 김용환(81) 새누리당 상임고문의 부인 나춘구(74) 여사다.



승 대표가 결혼식 날입었던 활옷. 지은 지 20년이 훌쩍 넘은 옷인데도 화려한 색감은 그대로다.(左) 활옷을 입고 달았던 노리개.(右)
 “결혼식을 앞두고 부르시더니 ‘옷을 준비해 놨다’고 하시더라고요. 빨강치마, 파랑치마, 연두저고리, 활옷, 원삼, 화관, 족두리, 삼작 노리개 등 전통 혼례복 일습이었어요. 어머니가 아들 둘을 키우시며 장래의 며느리를 위해 미리 마련해 두신 선물이었죠.”



승 대표의 결혼식 사진. 이날 입었던 옷과 액세서리는 모두 시어머니(사진 왼쪽)가 며느리를 위해 마련해 둔 선물이었다.
 활옷은 예뻤다. 붉은색 명주 천에 수놓은 모란·봉황·소륜화·산·바다 등의 문양이 화려하고 섬세했다. 승씨에게 활옷은 결혼식 날 하루 빌려 입고 돌려주는 폐백용 행사 옷이 아니었다. 91년 결혼 후 12년 동안 미국과 유럽 각국을 오가며 거처를 여러 번 옮기는 와중에도 늘 승씨와 동행했던 ‘보물 1호’다.



 “가끔씩 펼쳐볼 때마다 그 색감에 감탄해요. 올해 대학에 들어가는 딸에게도 보여주죠. ‘너 물려줄게’ 하면 아이 눈도 반짝반짝 빛나던걸요. ‘우리 것’의 아름다움이 딸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아 흐뭇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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