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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법조계에도 향기가 넘치기를

중앙일보 2012.02.23 00:04 종합 32면 지면보기
이영직
변호사
10여 년 전에 한 잡지에서 현직 판사가 쓴 글과 그에 대한 반론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판사가 주장한 요지는 일정한 자격, 즉 국가가 부여한 자격을 갖춘 의료인에게만 치료를 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는 의료법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판사는 디스크 등으로 상당한 고통을 겪은 자신이 ‘자격을 갖춘’ 의료인이 아닌 ‘돌팔이 의사’의 치료를 통해 완치된 개인적인 경험을 예로 들면서 병을 고칠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치료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병은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고치면 되지 국가가 부여한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만이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다음 달에 한 의사가 반론을 실었다. 판사의 주장대로 한다면 왜 재판은 일정한 자격을 갖춘 ‘판사’만이 할 수 있는지, ‘건전한 상식’을 가진 시민이 재판을 할 수는 없는지 물었다. 나로서는 그 판사의 답변이 궁금했는데 보지를 못했다. 아마 판사는 속으로 뜨끔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이것들이 감히 내 전문영역을 침범해” 하고 자존심이 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판사의 속마음이야 알 수 없지만 재반론을 ‘안 쓴’ 것이 아니라 ‘못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잘난’ 사람들만이 모여 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법조계에 대해 일반인들의 불신과 냉소가 들끓고 있다. 한정된 소수의 엘리트들이 독점했던 법조계의 권위를 이제는 일반인들이 인정하지 않고 있다. 흔히 ‘법조 3륜’이라고 해 법원과 검찰, 그리고 변호사가 법조계를 이끌어 가는 세 축이라는 통념에 균열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명문대’를 나온, ‘머리가 좋은 소수’가 봉건시대의 과거에 급제하듯이 사법시험에 합격해 일반인들로부터 존경과 권위를 인정받으며 법조를 운영했던, 법조인들에게 ‘물 좋던 시대’는 사라져 가고 있다. 주류적인 법조인들로부터 내심으로는 ‘딴따라’라고 해 무시를 당할지도 모르는 ‘영화 예술인’들이 법조계의 ‘존재의 이유’를 묻고 있으며 이에 대해 일반인들은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과거 법조인들, 특히 법원은 일반인들의 의구심과 비판에 직면할 때마다 헌법에 있는 ‘사법부의 독립’을 방패 삼아 자신을 합리화했다. 사법부 독립이란 판사가 정치나 경제 등 사회의 주류적인 권력에 ‘쫄지 말고’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라는, 국민이 사법부를 권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장치임에도 사법부는 자신에 대한 일반인들의 비판을 봉쇄하는 면죄부로 사용해 왔던 것이다.



 최근에 대통령에 대한 조롱조의 글을 쓴 판사가 재임용에서 탈락해 정치적인 압력이 있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가 부당한 정치권력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하여 ‘국민 판사’로 치켜세우기도 한다. 나는 그 판사가 평소에 국민들을 위해, 약자들을 위해, ‘사법부 독립’을 위해 어떤 판결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모른다. 따라서 그를 ‘국민 판사’로 보는 시각에는 동조할 수 없다. 다만 판사의 재임용 여부에 대한 근거를 국민들이 전혀 알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지 않을까. 법원장이라는 개인이 판사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한 적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 문제일 것이다. 아니 앞으로도 사법부는 그러한 시도를 할 생각조차 없다고 국민들이 느끼는 것이 더 큰 문제일 것이다.



 악취보다는 향기가 풀풀 넘쳐나는 법조계가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러한 향기는 결코 사회와 유리된 진공 속에서는 생길 수 없다는 점을 느끼면서, 나부터라도 사회적인 공감을 얻기 위해 노력하자는 다짐을 하면서, 그리하여 자신이 먹고 사는 삶의 현장에서 향기를 마음껏 맛보기를 기대하면서 보잘것없는 변호사가 감히 ‘삶의 향기’란을 메운다.



이영직 변호사



◆ 약력=법무법인 시민 대표변호사, 법률구조공단 변호사, 안양지역 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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