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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것 보는 아들에 여자 본심 말해줬지만…"

중앙일보 2012.02.23 00:00 종합 35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아들이 ‘야한 것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다. 집 PC에 성인용 애니메이션을 내려받아 놓기도 했다. 난감했지만 무조건 말린다고 될 일인가. 부모 몰래 구해볼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스스로 제어할 수 있어야 했다. 뭣보다 성애(性愛)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품을까 걱정스러웠다. 아들에게 그런 염려를 전했다. “대부분의 ‘야동’은 남성 판타지야. 여자에겐 싫고 굴욕적이고, 심지어 범죄일 수 있는 것까지 쾌락으로 포장하거든.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남자로 크면 좋겠다.” 아들은 “당연하지, 내가 뭐 앤가?” 하며 입을 비죽 내밀었다.

[분수대] ‘야한 것’ 보는 아들에게 여자의 본심을 말해줬다 미래는 HQ의 시대일 테니



 그런데 이런 ‘생산적 대화’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것들은 도처에 있었다. 드라마를 보자. 남자가 사랑을 이유로 여자에게 강제 스킨십을 하거나 차에 태워 납치하는 장면이 흔하다. 여자는 대개 따귀 한 방으로 대응한다. 더 고약한 건 그 둘이 곧 연인이 된다는 거다. 폭력이 사랑의 묘약인 셈이다. 김두식 경북대 교수는 이를 두고 “전 세계 어디서도 찾기 힘든 우리만의 드라마 문법”이라고 했다.



 학교는 어떨까. 많은 교사가 성적 나쁜 아이들을 공개 모욕한다. 사랑의 독려라지만 받는 쪽 심정은 다를 게다. 복장, 머리 모양을 검열하고 소지품을 검사한다. 성인이라면 그냥 당하지 않을 일이다. 이게 가능한 건 “학생의 인권은 유예해도 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한데 인권이란 성별·인종·종교는 물론 나이와 신분에 의해서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다.



 몇몇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나는 요즘 잇따르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움직임이 반갑다. 인권이 학교 교육의 핵심 의제로 등장한 것 자체가 다행스러워서다. 인권 감수성이라는 말이 있다.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각종 현상을 바라보고 그 정서에 공감하는 능력이다. 많은 학교폭력 가해 학생들이 “그렇게 나쁜 짓인 줄 몰랐다”고 말한다. 인권 감수성이 발달 못한 까닭이다. 세계적 인권교육가 휴 스타키는 “인권이란 사람들이 이를 알고 행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했다. 인권 또한 학습의 대상이며, 교사는 학생들에게 그 원칙을 가르치고 체험케 할 의무가 있음이다.



 인권 교육 강화는 아이들의 미래에 실질적 보탬이 될 것이다. 역사의 큰 줄기가 바뀌고 있다. 독점과 경쟁을 심화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전 지구적 반성과 대안 찾기가 시작됐다. 공유와 공생의 가치가 주목받는다. 이제 세상이 원하는 리더는 탁월한 인권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다. IQ(지능지수), EQ(감성지수)에 이은 HQ(인권지수·human rights quotient)의 시대랄까. 내 아이가 바로 그런 인재가 됐으면 한다. 글로벌 리더는 언감생심이나, 인기 만점의 매력남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나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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