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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선거는 일회용 게임이 아니다

중앙일보 2012.02.23 00:00 종합 35면 지면보기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 심상치 않다. 물론 작금에 시작된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18대 국회 임기 말이 다가오면서 그 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국회의장이 돈봉투 사건으로 검찰조사를 받고 있고, 선거를 의식한 국회의원들이 저축은행 피해자 구제법과 같은 입법 포퓰리즘에 매달리고 있는 정치현실이다. 기득권 싸움으로 선거구 획정도 못한 채 선거를 치러야 할 판이다. 국민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이뿐만 아니다. 여야 모두 지금쯤 이념이나 목표를 정리하여 이에 맞는 공약(公約)을 국민에게 제시해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아직 이념이나 목표가 정리된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내놓는 것은 ‘일회용’ 복지 공약뿐이다.



 선거를 위해 많은 것을 약속하는 것은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재원의 현실적 고려 없는 공약은 공약(空約)으로 끝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여야 모두 인적 쇄신에 밀려 정책 쇄신에는 신경을 쓸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현상처럼 보인다.



 정치 엘리트의 순환이란 측면에서 인적 쇄신은 바람직하다. 그래서 보수적인 새누리당은 소외계층을 대변하는 ‘감동 인물’을, 진보적인 민주통합당은 검찰 특수통 출신 등 개혁 인사 영입에 신경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부족한 이미지를 커버하려는 노력처럼 보인다.



 하지만 신경이 쓰인다. 여야 모두 거울 앞에서 ‘일회용’ 감동인물 찾기에 매달리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나라가 걱정해야 할 큰일들이 산적해 있는데도 말이다.



 감동정치의 핵심은 열심히 생활하는 ‘일반사람들’을 영입하는 데 있다. 예전에는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들이 영입대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이상화되는 경향이 강하다. ‘특별한’ 스펙보다 일반적인 스펙이 더 호소력이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어쩐지 개운치 않다. 그저 선거 광고용으로 동원되고 있는 ‘일회성’ 용품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감동정치에서는 정치에 필수적인 개인의 경륜이나 지성, 리더십 등은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의 지적처럼 정치가가 일반사람들과 같을 수는 없다. 더 큰 야망과 열정, 그리고 책임의식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사실 정치가는 우리와 다른 ‘특별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래서 막스 베버는 ‘자신의 일만’이 아니라 ‘보다 큰 일’에 관심을 가지는 천직(天職)의식을 가진 사람만이 정치가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우리나라에서 정치인의 인적 쇄신은 선거 때마다 벌어지는 정례행사다. 그 폭이 어느 민주 국가보다도 크다. 하지만 정치불신은 여전하다. 왜 그럴까? 아마도 로마 격언이 그 대답을 제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로마에서는 “원로원 의원들은 좋은 사람들이지만, 원로원은 사악한 짐승이다”라는 말이 유행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다 일가견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정당이나 국회에만 들어가면 전혀 딴사람이 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익에만 매달리는 기계의 부속품 같은 인간으로 전락하고 말기 때문이다. 일회용으로 동원된 소모품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적 쇄신이 성공하느냐 못하느냐는 인간적 가치를 정치의 중심에 올려놓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제아무리 감동적 인물들을 많이 영입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감동적 가치를 정치의 원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의지가 없이는 그들은 어디까지나 동원된 선거용 장식품일 뿐이다.



 지금 전 세계가 ‘따뜻한 자본주의’를 말하고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어떤 철학자가 인간의 얼굴이 보이는 경제학 책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나타나는 인간이란 이윤 극대화에 매몰된 생산자, 아니면 효용 극대화에 전념하는 소비자로서의 인간일 뿐이다. 마르크시즘에서 얘기하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자본가든 노동자든 모두 계급의 한 부분으로 기계의 부속품같이 취급되고 있을 뿐이다. 지금 여야의 감동정치 시도가 여론의 호응을 받고 있는 것도 바로 우리 사회의 이런 몰인간적 현상 때문이다.



 지금 국민들의 정치불신은 차원이 다르다. 예전에는 정권을 바꾸면 무언가 달라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바꿔도 일자리, 교육, 복지 모두 별로 달라지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여야는 당파를 초월하여 이런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선거는 결코 일회용 게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당연한 사실을 거울 앞에 선 여야가 제대로 인식하느냐 못하느냐에 감동정치의 승패가 달려 있다. 더 이상 선거 광고용 인적 쇄신을 계속 되풀이할 여유가 우리에게는 없다.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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