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사때 절하다 잠든 30대…기면병 탈출 비결은?

중앙일보 2012.02.20 05:00 건강한 당신 1면 지면보기
“빛 치료기, 죽부인, 코골이 방지 마스크처럼 수면에 도움이 된다면 뭐든지 구입해요. 얼리어답터인 셈이죠. 잘 자기 위한 방법도 공부해요.”


[커버스토리] 수면질환 극복한 사람들

 지난 14일 오전 11시. 서울 삼성동 침구류 전문매장 이브자리에 한국기면병환우협회 회원 세 명이 모였다. 이 협회 이한(33·서울 송파구) 대표가 기면병(嗜眠病))에 얽힌 사연을 털어놨다. 이 대표는 수면에 도움을 주는 용품을 구입하는 데 약 400만원을 썼다.



한국기면병환우협회 회원 세 명이 지난 14일 서울의 한 침구매장에서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둘러앉았다. 왼쪽부터 김민석(17)군, 김영아(32)·이한(33)씨. 이한씨가 아침에 잠을 깨우는 데 도움을 주는 빛치료기를 보여주고 있다. [김수정 인턴기자]


 기면병은 낮에도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잠드는 수면질환이다. 대부분 뇌에서 체온·식욕·운동기능 조절 역할을 하는 뇌의 시상하부 문제가 영향을 준다. 시상하부에선 잠을 깨우는 데 영향을 주는 하이포크레틴 호르몬을 분비한다. 기면병 환자는 하이포크레틴의 분비량이 적어 항상 잠에 취해 있다.



 초등학생 때부터 잠의 노예였던 이 대표는 2006년에야 기면병인 것을 알았다. 자다가 숨이 멈추는 수면무호흡증도 발견됐다. 이 대표는 제사 때 절을 올리다 잠든 적이 있다. 자동차 운전할 때 신호대기 중 잔 적도 있다. 다행히 조수석 탑승자가 운전을 할 줄 알아 큰 사고는 없었다.



 고1인 김민석(17·서울 마포구)군은 중1 때 기면병으로 확진받았다. 수업시간에 항상 졸아 학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는 것으로 오해 받았다. 성적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성적이 좋을 때는 2등, 못해도 20등은 해요. 전교에서.” 김군이 웃으며 말했다.



 김영아(32·여·인천시 부평구)씨는 20대 들어 시작된 기면병 때문에 직장을 열 번이나 옮겼다. 병을 알게 된 건 지난해 봄이다. 김씨는 “출근하려고 눈 뜨면 오후인 날이 많았다. 물 마시고 화장실 간 시간을 제외하고 5일간 잔 적도 있다”고 밝혔다.



 이날 모인 세 명의 표정은 밝았다. 수면질환 전문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고, 하루 30분 이상 햇볕을 쬐며 낮 활동을 늘려 증상이 개선됐다. 새로운 희망도 생겼다. 이한 대표는 취직을 준비 중이고, 김영아씨는 IT회사를 공동 창업했다. 글짓기 대회에서 입상한 김민석군은 소설가가 되는 게 꿈이다.



 국민건강보험 통계에 따르면 2010년 한 해 기면병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1051명이다. 기면병은 주간 졸림증 외에 탈력발작·가위눌림(수면마비)·환각 같은 다양한 증상을 동반한다. 탈력발작은 기면병 환자의 3분의 2가 경험하는데, 웃고 흥분하는 등 감정의 변화가 생기면 몸에 힘이 빠져 주저앉는다.



 기면병은 치료제를 복용해 졸림증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뇌에서 부족한 하이포크레틴 호르몬의 역할을 대신하는 치료제(프로비질)를 하루 한 알 복용하면 12시간 동안 효과가 지속된다.



 수면질환의 종류는 100여 가지에 이른다. 불면증·수면무호흡증(코골이 포함)·기면병·수면이상행동장애 순으로 환자가 많다. 수면질환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환자들의 인식이 낮았다. 서울수면센터 한진규 원장은 “10여 년 전만 해도 수면질환하면 정신과와 수면제만 떠올렸다”고 말했다.



 2000년대 중반 후 수면질환으로 치료받는 환자가 늘고 있다. 수면병이 심각한 2차 질환을 일으킨다는 위험성이 알려지면서다.



 국민건강보험 통계에 따르면 2010년 한 해 수면장애로 진료받은 환자는 약 29만 명이다. 2006년의 15만 명보다 두 배가 됐다. 수면질환이 없지만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해 수면검사를 받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수면질환인지 모르고 만성피로·무기력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윤창호 교수는 “통계적으로 국민의 약 20%가 수면질환이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고 말했다.



 수면질환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윤 교수는 “고령자와 비만인구의 증가, 스트레스, 불규칙한 생활습관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수면 부족 국가다. 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휴식시간을 포함한 하루 평균 수면시간이 약 470분으로 가장 낮다.





 수면의 질이 경쟁력인 시대다. 인생의 30%를 잠으로 보낸다. 숙면을 취하지 못해 무기력하면 낮 동안 능률이 떨어져 의지가 부족하거나 게으름쟁이로 낙인 찍힌다.



 특히 수면은 건강을 좌우한다. 윤 교수는 “잠을 못 자면 집중력·사고력·기억력이 떨어진다”며 “수면무호흡증 같은 병은 고혈압·당뇨병 같은 만성질환과 사망 위험이 큰 뇌·심혈관 질환을 일으킨다”고 덧붙였다.



 수면질환은 치매와도 관련 있다. 한진규 원장은 “수면 중 소리를 지르고 발길질을 하는 꿈 행동장애가 있으면 뇌와 척추를 잇는 뇌교 부위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며 “꿈 행동장애 환자를 10년 이상 추적한 결과 약 60%에서 치매와 파킨슨병이 나타난 것으로 보고된다”고 말했다.



 수면질환은 증상에 맞는 치료와 수면환경 개선으로 극복할 수 있다. 불면증은 수면장애를 일으키는 행동이나 생각을 교정하는 인지행동치료로 개선한다. 수면무호흡증은 마스크처럼 착용해 기도에 공기를 넣는 양압기가 가장 효과적이다. 윤 교수는 “새벽에야 잠드는 수면지연증후군은 아침에 일어나 강한 빛을 쬐는 빛 치료를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적인 수면질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은 전국에 30여 곳 있다. 자세한 내용은 대한수면학회 홈페이지(http://www.sleepmed.or.kr/main.html)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 원장은 “많은 수면질환은 수면 습관과 환경을 교정해 개선할 수 있다”며 “생체시계의 영향으로 햇빛을 본 후 약 15시간 후 잠에 들기 때문에 규칙적인 생활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황운하 기자





기면병=낮에도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잠드는 수면질환이다. 증상이 심하면 자전거를 타거나 운전하는 도중 잠든다. 원인은 뇌의 시상하부에서 분비하는 하이포크레틴(Hypocretin) 호르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이포크레틴은 잠을 깨우는 데 관여해 수면과 관련된 뇌파를 조절한다. 기면병은 주간 졸림증 이외에 탈력발작·가위눌림(수면마비)·환각 같은 다양한 증상을 동반한다. 탈력발작은 크게 웃는 등 감정변화가 있으면 몸에 힘이 빠져 주저앉는 증상이다. 기면병은 하이포크레틴 호르몬의 역할을 대신하는 약물로 치료한다. 하루 한 알 복용하면 12시간 동안 졸림증을 개선한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