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재판 ‘품질관리’로 판사 철밥통 깨야

중앙일보 2012.02.20 02:01 종합 2면 지면보기
서기호(42·사법연수원 29기) 전 서울북부지법 판사의 연임(재임용) 탈락을 계기로 판사 연임·근무평정 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지난 17일 서울중앙·남부·서부지방법원에서 단독판사회의가 열리는 등 일부 판사들이 집단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연임 심사에서 나타난 문제점이 재판의 독립을 해칠 우려가 있는 만큼 객관성·투명성과 함께 방어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주에도 대전·의정부지법 등에서 잇따라 판사회의가 열린다.


[이슈추적] 연임제 논의 판사회의 확산

 전문가들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판사들에 대해선 철저한 연임 심사 및 근무평정이 필요하다고 제시하고 있다. “판사들이 ‘철밥통’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법조계 내부에서도 “기존처럼 연임 심사가 형식적으로 이뤄질 경우 사법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는 것만으로 20~30년간 별 탈 없이 판사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얘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판사 출신인 방희선(57·사법연수원 13기) 동국대 법대 교수는 “국민 세금으로 일하는 판사에 대해 ‘품질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 교수는 법원의 관료주의와 인사제도의 문제점을 공개 비판했다가 1997년 연임 심사에서 탈락한 바 있다. 그는 “내가 연임 심사 탈락 후 문제를 제기했던 건 대법원의 자의적인 심사”라며 “판사들은 당연히 감시받고 평가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낙인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도 “판사들의 신분을 보장하는 것은 아무 조건 없이 영원히 판사를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재판이라는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판사가 서비스는 등한시하고 권위적으로 재판 당사자들을 대하기 때문에 신뢰를 잃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밀실행정’ 식으로 법관 근무평정과 연임 심사를 진행하는 것은 문제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현행 법규에 따르면 10년 임기 동안 매년 근무평정이 이뤄지지만 당사자가 그 결과를 받아볼 수 없다. 적격심사 대상(연임 부적합 평가)이 된 판사들은 법관인사위원회 출석을 앞두고서야 이 사실을 통보받기 때문에 충분한 소명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대법원은 “판사들이 평정자의 눈치를 보거나 근무평정에만 신경 쓰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현직 판사 시절 법관근무평정과 재임용 제도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던 문흥수(55·11기) 변호사는 “독일은 법관직무법에 따라 상세한 평정기준이 마련돼 있고 이의가 있을 경우 특별법원(법관직무법원)에서 소송을 진행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부 평가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우리나라와 유사한 연임 제도를 갖고 있는 일본 최고재판소 재판관(우리나라의 대법관)은 임명 후 처음 시행되는 중의원 총선거에서 국민심사(신임투표)를 받는다. 상당수 판사가 선출직인 미국은 선거 과정에서 유권자와 시민사회의 평가를 받게 된다. 우리의 경우 서울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들이 매년 판사들의 재판을 평가한 뒤 우수 법관과 하위 법관을 선정해 대법원에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그 결과를 근무평정에 반영하지 않는다는 게 대법원의 공식 입장이다.



이동현 기자



◆법관 연임 심사 제도=판사의 신분과 임기(10년)를 보장하고 연임 심사를 받도록 하는 법관 임용 제도의 근간은 1948년 헌법 제정 이후 거의 바뀌지 않았다. 73년 대법원 판사(대법관) 9명을 포함해 판사 56명이 연임 심사에서 탈락하는 등 권력의 입맛에 따라 심사가 진행됐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는 연임 심사가 형식적으로 이뤄졌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