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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난 남대문 노점상들, 수레 두고 집에 갔다

중앙일보 2012.02.20 01:25 종합 18면 지면보기
지난 16일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골목에서 노점상인들의 손수레가 방치된 채 놓여 있다. 노점상인들은 강제 철거에 대한 항의 표시로 손수레 260여 대를 그대로 둔 채 귀가했다. [류정화 기자]


18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이날 시장을 찾은 미국인 관광객 제시카 제닌(22)은 가방을 계속 몸쪽으로 끌어당겼다. 시장 통로의 폭이 1m 안팎으로 좁아졌기 때문이다. 통로 중간은 상가 상점들의 매대와 노점 손수레, 상품들로 차 있었다. 행인들은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눈살을 찌푸렸다. 제시카는 “남대문시장은 매우 흥미롭지만 정말 불편하다. 왜 이렇게 됐느냐”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노점 “영업 연장 서울시서 중재”
1층 상인들 “공청회도 없이 밀약”
상가 측 신고로 중구청 단속하자
1963년 이후 첫 집단행동
갈등 제공한 서울시는 뒷짐



 남대문시장 통로가 북새통으로 변한 것은 지난해 1월부터였다. 당시 노점상인들은 토요일 영업 개시 시간을 오후 2시로 앞당겼다. 이전엔 오후 5시 상가 상인들이 철시한 뒤 노점상들이 영업을 했기 때문에 시장 길이 그리 좁지는 않았다. 25년간 남대문시장 상가 1층에서 양말장사를 해온 이모(51)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장에 상도의가 있었는데 지금은 양측 사이에 말싸움이 자주 벌어져 관광객들도 발길을 돌린다”고 한숨을 쉬었다.



 남대문시장에서 상가 상인-노점상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15일엔 노점상인들이 손수레 260여 대를 시장 바닥에 그대로 둔 채 귀가했다. 평소 노점상들은 귀가하면서 손수레를 창고로 옮겨놓는다. 노점상연합회 김용선 회장은 “상가 상인들의 신고로 중구청 직원들이 노점을 강제로 철거한 데 대한 항의 표시였다”고 말했다. 상가 상인 측인 남대문시장주식회사 백승학 기획부장은 “1963년 회사가 설립된 뒤 노점상들의 첫 집단행동”이라고 말했다. 일부 상가 상인들은 노점상에 대한 전기 공급을 앞으로 끊겠다고 했다.



 이 같은 갈등이 불거진 것은 서울시가 2009년 남대문시장 현대화 사업을 착수하면서다. 당시 서울시는 노점상들에게 “손수레를 새로 만들라”고 했다. 노점상인들은 “손수레 구입 비용(400만~900만원)을 보전하는 방안으로 상가 상인과 노점상인이 서울시 중재로 노점상 영업시간을 평일 1시간, 토요일 3시간을 더 늘리는 데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노점상 바로 코앞에서 장사를 하는 상가 1층 상인들이 들고 일어났다. 상가 1층에서 모피의류를 파는 한임교(64)씨는 “포장마차 영업을 하는 노점상 때문에 음식 냄새가 모피에 배게 된다. 공청회 한 번 없이 기존 상인회가 노점상 측과 밀약을 주고받았다”고 주장했다. 건물 1층 상인 200여 명은 지난해 3월 ‘남대문시장 상인연합회’를 만들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서울시는 “상인들 간에 자율적으로 합의한 것”이라며 손을 놓고 있다. 서울시 균형발전과 박용석 주무관은 “노점상은 기본적으로 불법이고 상속·매매 등 재산권 문제가 얽혀 있어 공식적으로 서울시 사업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점상인회 측은 “서울시가 먼저 디자인, 환경 개선 운운하며 노점상인들을 불러모았다”고 주장했다. 한남대 이덕훈(경영학) 교수는 “상인과 노점상인 간 갈등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 남대문시장이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며 “정부와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류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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