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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온 외국계 CEO, 알고보니 北인민군의…

중앙일보 2012.02.20 00:27 경제 1면 지면보기


인민군의 아들이 글로벌기업 한국대표가 됐다. 올 초 한국로슈진단 대표로 부임한 안은억(47) 사장이다. 보육원에 맡겨지고, 스위스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을 들어봤다.

글로벌 CEO 된 인민군 아들 … 내 연줄은 임직원뿐이다
안은억 한국로슈진단 사장





아버지는 북한 인민군이었다. 1927년 경기도 수원의 부유한 집안에서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20대 때 좌파 서적을 탐독하다 6·25가 발발하면서 자원 입대했다. 공교롭게도 작은아버지는 같은 시기 국군에 입대했다가 전사했다.



 아버지는 인민군에서 오래 버티지 못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고민하다 탈영했고, 휴전 후 인민군 경력이 발각되면서 옥살이를 해야 했다. 출감 후 어머니를 만나 누나 셋과 나를 낳았으나 ‘적색분자’ 딱지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했다. 재산은 탕진한 지 오래고 매일 소주 한 병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어머니는 내가 여섯 살 때 돌아가셨다. 폐인이 되다시피한 아버지는 누나와 나를 돌보지 않았고, 친척들은 여덟 살 코흘리개이던 나를 경기도 부천 보육원에 맡겼다.



 인민군 자식, 고아도 아닌 고아의 삶. 마침 이런 불우한 환경을 한꺼번에 날려버릴 기회가 초등학교 때 찾아왔다. 스위스 유학이었다. 스위스 페스탈로치 장학재단은 1940년대부터 전쟁고아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한국에서도 1995년 이전까지 매년 한두 명의 고아들이 선발됐다. 다행히 나의 학교 성적은 꽤 좋았다. 학교장 추천으로 응시했고 78년 스위스로 건너갔다. 어린 나이였지만 먹여주고 재워주고 공부까지 시켜준다는 말에 솔깃했다. 만약 스위스로 가지 않았다면 동네 깡패나 됐을 거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북동쪽으로 100㎞쯤 떨어진 상트 갈렌은 나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됐다. 어떻게 보면 나는 조기유학 1세대다. 어린 나이에 독일어·프랑스어는 물론 영어까지 깨칠 수 있었으니. 하지만 나처럼 사연 많은 한국인 페스탈로치 장학생들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50여 명 중 두 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몇몇은 마약으로 무너졌다.



 아버지는 내가 스위스로 유학을 떠난 지 얼마 안 돼 돌아가셨다. 그러나 누나들은 내가 충격받을 것을 우려해 18살이 되어서야 알려줬다. 꼭 성공해 아버지를 만나려는 목표는 사라졌고, 나는 곧바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귀국 길에 올랐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한국에서 일하려면 대학졸업장이 필요했다. 결국 스위스로 돌아가 다니던 고교를 마쳤고, 87년 상트 갈렌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내친김에 경영학 박사 학위까지 받고는 스위스 시바가이기에 입사, 한국지사 근무를 자원했다.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내가 드디어 한국에서 일해보겠다는 꿈을 이룬 것이다. 나는 고국에 누나들 외엔 아무런 연고도, 학연도 없이 밑바닥 영업을 다졌고 금세 임원도 됐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 1남1녀도 뒀다. 2001년엔 싱가포르 소재 로슈비타민을 거쳐 독일 쾰른과 스위스에서 근무하다 2009년 한국로슈진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생명과학분야 사업본부장을 지낸 뒤 올 초 사장 자리에 올랐다. 이제 나의 유일한 연줄은 임직원들뿐이다. 밑에서부터 의견이 올라오는 리더십을 발휘해 구성원들의 역량을 높여주고 싶다.



 누나들은 꽤 오랜 시간 아버지를 원망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시대의 비극’으로 받아들인다. 해야 할 일이 많은 지금, 과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니까.





로슈 2010년 65조원 매출의 스위스 기업. 바이오의약과 진단분야 세계 1위이며 제약분야에선 5위다. 2010년 기승을 떨친 신종플루를 확인하는 데 쓰인 진단제, 치료제 ‘타미플루’가 이 회사 제품이다. 한국로슈진단은 지난해 국내에서 1700억원의 매출을 올린 진단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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