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제 view &] 버핏과 여비서, 한국서 세금 낸다면

중앙일보 2012.02.20 00:18 경제 12면 지면보기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나는 고작 17%를 세금으로 내는데 여비서는 더 높은 세율이 적용된다.” 지난해 8월 ‘투자의 달인’으로 통하는 워런 버핏이 뉴욕 타임스 기고를 통해 한 말이다. 20여 년간 비서로 일해 온 데비 보사네크가 두 배나 높은 소득세율을 물어야 하는 미국 세제의 불합리성을 꼬집은 것이다.



버핏의 발언 이후 미국은 이른바 ‘버핏세’ 논란에 휩싸였다. 버핏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보사네크 사례’에 대한 개선을 주장했고, 그녀는 불공정한 미국 조세 제도를 상징하는 인물로 부각됐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공정성’을 강조한 신년 국정연설장에서도 보사네크는 초청 방청객으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버핏이 밝힌 바에 따르면 그는 소득의 17%를 소득세로 납부하고 있는 반면, 비서인 보사네크는 소득의 35%를 소득세로 납부한다. 이처럼 버핏과 같은 수퍼 부자가 일반 근로소득자보다 세부담이 낮아지게 된 것은 소득 종류에 따라 과세 처리가 다른 미국의 소득세법 때문이다.



미국은 근로소득에 대해 10~35%의 세율로 과세하지만 자본소득에 대해서는 5~15%의 낮은 세율로 과세한다. 자본에 대한 고율 과세는 국내 자본의 이탈과 이자율 상승을 가져와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자본소득에 대한 세제 우대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미국의 소득세제가 자본소득을 우대하고 있다 보니 주식 배당으로 상당액을 벌고 있는 버핏보다 근로소득자인 비서가 두 배나 높은 소득세율을 부담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버핏세로 자본소득을 추가적으로 과세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대목이다.



그런데 “자본소득세율을 인상해야 하는가”의 논란은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소득세율을 인상해야 하나”라는 일반적 증세론으로 변형됐다. 실제로 지난해 마지막 날 우리 국회는 ‘한국판 버핏세’라며 3억원을 넘어서는 소득세 과세표준 구간을 신설하고 소득세 최고세율도 35%에서 38%로 올리는 개정안을 전격 통과시켰다. 과세 표준이 3억원을 초과하는 근로소득자는 올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 탱자가 된 격이다.



사실 한국은 미국과 조세제도 체계부터가 다르다. 우리는 이자와 배당소득 합계가 4000만원을 초과하면 납세자의 근로소득, 사업소득 등 다른 소득과 모두 합산해 6~38%의 누진세율을 적용한다. 다시 말해 소득 종류에 상관없이 동일한 세율을 적용하는 형태다. 따라서 한국의 소득세법에 따라 세금을 납부한다면 배당소득이 많은 버핏은 38%의 세금을 낼 것이고, 보사네크는 20%대의 세금을 내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울러 우리는 소득이 많을수록 세금 부담이 무거워지는 누진적인 세금 구조를 갖고 있다. 최상위 1% 근로자가 내는 소득세 규모를 따져봐도 우리나라는 36%에 달해 미국(37%)·영국(26%) 등에 비해 결코 작지 않다. 상위 10%가 내는 세금도 전체의 78%에 이르고, 우리 근로자의 40%는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소득세제는 어떤 식으로 손을 봐야 할까.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우선 물가상승률이나 경제성장률 등을 반영하고 있지 못한 과세표준 구간부터 조정해 주는 것이 맞다. 우리 소득세 과세표준 구간은 1996년에 정해진 뒤 2007년까지 11년간 변동 없이 유지되다가 2008년에 들어 ‘8000만원 초과’였던 것을 ‘8800만원 초과’로 소폭 조정한 데 그쳤다. 96년 이후 14년간 1인당 국민총소득이 2배 이상 오른 것과 비교하면 조정 폭이 턱없이 좁았다. 그 결과 명목소득 증가로 높은 세율 구간으로 이동해 세부담이 증가한 근로자나 자영업자가 적지 않았다.



40%에 달하는 소득세 면세자 비율도 축소해야 한다. 주요 선진국은 소득세를 안 내는 근로자가 20~30%로 우리나라보다 훨씬 낮다. 납세는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인 만큼 특정 계층에 소득세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보다는 소득세를 납부하는 국민이 많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프랑스 루이 14세 때 재상이던 콜베르는 “조세징수 기술이란 거위털을 뽑는 기술과 같다”고 했다. 거위가 소리를 가장 적게 지르게 하면서 털을 가장 많이 뽑는 것이 훌륭한 조세징수 기술이라는 것이다. 거위의 깃털을 뽑는 과정에서 거위를 함부로 다루면 거위는 소리를 지르거나 달아나 버린다. 또 특별히 깃털이 잘 자라는 부분이 있다고 해서 집중 공략하면 그 부분은 머지않아 불모지가 될 수도 있다.



조세정책은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역사적·문화적 특성을 고려해 입법화돼야 한다. 소수의 특정 계층에 대한 징벌적 과세가 아니라 ‘낮은 세율, 넓은 세원’이라는 조세의 대원칙이 지켜졌을 때 기업과 국민은 정부의 세수 확보에 적극 일조할 것이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