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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고금통의 古今通義] 홍매

중앙일보 2012.02.20 00:11 종합 37면 지면보기
이덕일
역사평론가
겨울에 피는 매화(梅花)는 선비의 지조를 나타내면서 봄소식을 뜻한다. 매화 중에는 붉은 꽃, ‘홍매(紅梅)’가 있다.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 고젠 히로시(興膳宏)가 쓴 『한어일력(漢語日曆)』에는 홍매를 주제로 한 짧은 글이 있다.

 그는 매화가 나라(奈良·710~794) 시대 이전 중국에서 전해졌다고 썼다. 그러나 8세기 중반 편찬된 일본 최고(最古)의 시가집 『만요슈(萬葉集)』에는 매화에 대한 노래가 100수가 넘지만 모두 백매(白梅)뿐 홍매에 대한 노래는 없었다고 덧붙이고 있다. 고젠은 중국에서도 북송(北宋) 때 와서야 시(詩)에 홍매가 묘사된다면서 왕안석(王安石·1021~1086)의 시 ‘홍매’를 소개했다.

 고젠 역시 한반도에서 전해졌다고 써야 될 것을 중국에서 전래됐다고 쓰는 일본 학자들의 고질적 병폐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그럼 우리나라에는 언제 홍매가 전해졌을까. 『삼국사기(三國史記)』를 뒤적여 보니 고구려 대무신왕(大武神王) 2년(서기 41년) 가을 8월 매화가 꽃을 피우다(梅花發)라는 구절은 있었지만 홍매에 대한 기록은 없다. 삼국에 있었으면 일본에도 전해졌을 것이고 『만요슈』에도 나왔을 것이다.

 조선 후기에는 홍매를 월사매(月沙梅)라고 불렀다.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1564~1635)가 선조 29년(1596)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갔을 때 가져다 심은 단엽홍매(單葉紅梅)를 뜻한다. 그런데 망국 후 만주로 망명했던 이건승(李建昇·1858~1924)이 전라도 구례의 매천 황현(黃玹)에게 쓴 편지에 “이미 말라 죽었던 집의 늙은 매화가 (을사년) 가을에 다시 살아났습니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 매화는 이건승의 형 이건창(李建昌)이 이정구의 집 매화를 옮겨 심은 월사매였는데 일제에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년에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다. 홍매의 재생을 망한 나라가 되살아날 징조로 여겨서 이건승을 비롯한 강화도의 양명학자들이 만주로 망명했는지도 모른다.

 월사매는 단엽홍매지만 다엽(多葉)홍매는 월사매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다. 13세기께 고려 사람 이승휴(李承休)의 상유내상시(上兪內相詩)에 “박복한 여인 하루가 일 년 같은데/홍매 모두 졌건만 그 사람 소식 없네(薄命閨中日似年/紅梅落盡沒人傳)”라는 시가 이를 말해준다. 고려 시대 때도 홍매가 꽤 번성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초기 성종이 재위 18년(1487) 1월 홍매 한 가지를 내어 주면서 시를 지어 올리게 한 기록이 있듯이 홍매는 궁중에서도 즐겨 길렀던 꽃이다. 유난히 추운 올겨울, 봄을 알리는 선비의 꽃 매화가 생각나서 찾아본 단상(斷想)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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