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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결국 마음의 문제

중앙일보 2012.02.20 00:04 종합 38면 지면보기
신준봉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
나중에 죽을 때가 되면 종교를 갖겠노라는 이를 가끔 만난다. 이유는 엇비슷하다. 인간이라면 마주쳐야 하는 숙명적인 문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란다.



 죽고 사는 문제에 관한 한 최근 우리는 거의 ‘모범 답안’에 가까운 듯한 대답을 접한 적이 있다. 지난해 가을 세상을 떠난 ‘정보기술(IT) 황제’ 스티브 잡스의 입을 통해서다. “죽음은 생명의 최고 발명품이다. 생명의 변화 인자다. 낡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에 길을 내준다.” 유명한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 말이다. 물론 잡스의 얘기는 삶은 유한하니 시간 낭비하지 말고 스스로의 감정과 직관에 따라 열심히 살라는 거였다.



 일본의 한 중년 불교학자와 비슷한 연배의 유전과학자가 함께 쓴 『불교와 과학, 진리를 논하다』(운주사)에서도 잡스와 일맥상통하는 대목을 만났다. 교토대와 UC버클리에서 불교학을 공부한 불교학자 사사키 시즈카(佐佐木閑)는 말한다. “지하철 표를 사면서 언젠가는 죽는다는 생각에 침울해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실감은 하지 못하는 미묘한 정신상태로 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은 실은 인간이라는 생물의 독자성의 원천이다. 짐승처럼 먹고사는 데 급급하지 않고 예술작품이나 건축물처럼 오래 남을 유산을 남기는 데 힘쓰도록 하기 때문이다….”



 사사키의 논의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종교를 끌어들이는 대목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수많은 가상 시스템을 창조했다. 한 번 죽었어도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환생 사상’이 대표적이다. 내세(來世)를 보장하는 종교는 그래서 생겼다. 한데 현대사회에서 종교의 ‘내세 보장’은 갈수록 힘을 잃고 있다. 과학적 합리성이 ‘대세’가 되면서 천국이나 극락이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들이 차츰 줄기 때문이란다. 현대 종교에서 내세의 자리를 차지한 건, 사사키에 따르면 ‘마음’이다.



 공교롭게도 지난주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종교인들을 두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다. 먼저 원불교. 김주원 교정원장(조계종의 총무원장에 해당)은 올해 사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원불교 수행의 목표는 마음을 원하는 방향으로 ‘운전’할 수 있는 통제력을 기르는 것”이라고 했다. 마음이 무엇인지 실체를 알거나 마음의 안정을 얻는 일은 원불교에서는 순위가 밀린다. 다분히 현실적인 철학이다.



 17일은 법정(法頂·1932~2010) 스님의 2주기 기일이었다. 서울 길상사에서의 추모 법회, 추모 동영상을 통해 저 세상 사람인 스님은 거듭 마음을 잘 써야 한다고 했다. 한 마음이 일어나려는 순간, 어떻게 방향 잡느냐에 따라 사람은 냉혹해질 수도 봄바람처럼 훈훈해질 수도 있다는 거였다. 산 사람들은 영상 속 스님이 “내 마음 나도 몰라”, 유행가 가사를 거론하자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새로운 한 주다. 지긋지긋한 한 주 또는 넉넉한 한 주. 마음 먹기에 달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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