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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의 시시각각] 노무현 시대에 대한 망각

중앙일보 2012.02.20 00:02 종합 38면 지면보기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노무현 사람들이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총리였던 한명숙은 제1 야당 대표다.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은 유력 대권주자로 급부상했다. 문성근은 서열 2위 민주당 최고위원이며 김두관·안희정은 도지사다. 장관·비서관 출신 중에서 총선에 나가는 이들도 많다. 노무현 사람들은 모두 노무현 시대의 재건을 외친다. 그렇다면 그 시대는 그렇게 떳떳한 시절이었나.



 진보·좌파의 가장 큰 무기는 도덕성이어야 한다. 서민 정권이라면 말 그대로 서민적이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한 지 채 1년이 안 된 2008년 9월, 충북의 한 골프장 7번 홀에서는 결혼식이 열렸다. 신랑 아버지는 골프장 주인이자 노무현의 최대 재정적 후원자였다. 신부 아버지는 노무현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주례는 노 전 대통령이었고 노 정권의 주요 인사 100여 명이 하객으로 참석했다. 한명숙·이해찬 전 총리, 김원기 전 국회의장이 앞줄에 앉았다. 초가을의 잔디는 푸르렀고 하늘엔 빨간 경비행기가 빙빙 돌았다.



 그저 평범한 재력가의 결혼식이라면 세인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 결혼식은 두 집안만의 사사로운 행사가 아니었다. 사돈의 면면이나 주례·하객의 위상이나, 이는 노무현 정권의 잔치였다. 이 무렵 한국 사회에는 노무현 정권의 우울한 잔영(殘影)이 진하게 남아있었다. 그들이 부실과 폐해로 참혹하게 정권을 잃은 지 겨우 반년이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미국 금융위기 소문으로 민심은 어수선했다. 그런 판에 서민 정권이라는 사람들이 그런 ‘초원 잔치’를 벌였던 것이다.



 몇 달 후 비극이 시작됐다. 노무현의 또 다른 후원자 박연차 회장이 등장한 것이다. 박연차라는 야수는 대통령 형을 삼키고, 부인을 해치더니 급기야 대통령을 쓰러뜨렸다.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1차적인 동기는 부인 권양숙 여사였다. 문재인 전 실장에 따르면 노무현은 부인이 박연차에게서 거액을 받은 걸 알고 격노했다고 한다. 그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충격이었던 것이다. 그런 참에 검찰이 자신이 주도한 일이라고 몰아붙이니 노무현은 억울함을 외치러 뛰어내린 것이다.



 한명숙 전 총리는 노무현 장례식에서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울먹였다. 노무현을 무엇으로부터 지키지 못했다는 것인가. 권양숙 여사인가 아니면 검찰인가. 물론 검찰의 책임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전직 국가원수를 사지(死地)로 안내한 것은 무엇보다 부인의 책임이다. 노무현은 정치보복이 아니라 부부 신뢰관계의 희생양이었던 것이다.



 문재인 전 비서실장은 노무현 정권의 핵심인사였다. 정치에 나서면서 그는 특수부대 경력을 주요 홍보물로 활용하고 있다. 그는 낙하산 사진을 공개했다. 최근엔 TV프로에서 특전무술이라며 머리로 기왓장을 깨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그가 핵심으로 봉직했던 노무현 시절, 국가 안보의식은 크게 위협을 받았다. 반미(反美) 폭력시위대는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투쟁에서 군인들을 폭행했다. 과격 세력은 인천에 있는 맥아더 장군 동상을 공격했다. 미군은 북한 침략에 맞서 피를 흘리며 한국을 구했다.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지 않았더라면 노무현 정권 자체가 없었을지 모른다. 그런 동맹을 공격하는 건 은혜에 대한 배신이다. 그런 배도(背道)가 벌어지는데도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문재인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청와대에 들어앉아 수수방관했다. 그런 문재인을 특수부대 동지들은 어떻게 볼까. 잘했다고 할까. 머리로 기왓장 몇 장 깬다고 안보가 되는 건 아니다.



 국민이 압도적으로 밀어준 정권이 실패하는 바람에 처절하게 버림받았던 정권이 득세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노무현 정권의 기억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부엉이 바위는 영원히 그 자리에 서있다. 골프장 결혼식장에 흩날리던 색종이도 풀밭 어딘가엔 몇 장 남아 있을 것이다. 노무현 5년의 세월은 가장 압축적으로 중앙일보 사설(2008년 2월 23일)에 남아 있다. 제목은 ‘노 대통령을 역사 속으로 보내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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