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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이란 핵과 사우디, 북핵과 한국

중앙일보 2012.02.20 00:00 종합 39면 지면보기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자나드리아. 지난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초청을 받아 필자가 참석했던 국경수비사령부 주최 연례 문화, 학술축제의 이름이다. 이 축제의 현장에서도 이란 핵 사태가 주요 의제로 등장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금융제재와 원유 금수조치 등을 통해 이란의 핵 프로그램 저지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는 반면, 이란은 독자적 우라늄 농축장치 가동과 선제적 원유수출 중단 위협으로 이에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여기에 태국 방콕으로부터 날아온 이스라엘 외교관 암살 의혹은 먹구름을 한층 짙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이란의 움직임에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에후드 바라크 국방장관은 ‘경제제재로는 이란의 핵 능력 강화를 막을 수 없으므로 군사행동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들에게 이란은 핵무기를 보유해 지역패권을 꿈꾸는 불량국가일 따름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라크 오시라크 원자로를 성공적으로 정밀 타격했던 1981년의 경험에다, 대선 국면에 들어간 오바마 행정부가 자신들의 대(對)이란 선제공격을 반대하고 나서기 어려울 거라는 계산이 겹치면서, 이스라엘이 군사행동에 나설 가능성에 점차 무게가 실리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텔아비브가 보는 것처럼 단순하지가 않다. 우선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은 미국의 도움 없이 승리를 담보하기 어렵다. 한편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걸프 국가들의 참여와 지원 없이는 새로운 전쟁에 나서기 힘든 형편이다. 이스라엘의 F-15I 전투기가 이란에 대한 공습작전을 효과적으로 전개하려면 우선 사우디 영공을 통과해야 하고, 바레인에 있는 미 5함대나 카타르에 있는 미 중부군사령부가 개입하려 해도 주둔국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는 경제적 배경이나 국제정치 명분을 따져 봐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경제적 지원 없이 이스라엘이 대이란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는 어렵다. 지난 10여 년간 두 개의 전쟁을 치른 뒤 최악의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이스라엘을 전폭 지원하고 필요하다면 군사개입을 결심할 입장에 있지 않다. 사우디 등 인근 주요 산유국의 재정지원이 사활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욱이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대이란 군사행동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 확보가 어렵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들 중동 국가의 공식적 지지, 동참은 더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필자가 만난 사우디 인사 대부분은 이스라엘-이란 분쟁에 연루되기를 바라지 않고 있었다. 사우디 정부는 이미 유엔 안보리 결의 없이 어떠한 형태의 지원도 불가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비록 시아파 국가인 이란이 수니파 국가인 자신들에게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다고는 해도, 그렇다고 명시적으로 미국이나 이스라엘 편을 들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곧장 자국 국민의 반미·반정부 정서 폭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 곤란한 문제는 자국의 안보 자체가 위험에 처한다는 우려다. 사막 한가운데 건설된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는 동쪽으로 350㎞ 떨어진 담맘에서 해수를 담수화해 파이프라인으로 공급받고 있다. 만의 하나 이란의 보복공격으로 이 파이프라인이 파괴될 경우 700만 리야드 주민의 80%가 3일 이내에 식수 부족으로 고통받게 된다는 게 사우디 안보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게다가 사우디 유전의 90%가 몰려 있는 동부 유전지대는 이란과 전쟁이 벌어지면 곧장 쑥대밭이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다른 걸프 국가들도 사정은 대동소이하다. 이들이 이스라엘의 대이란 군사행동을 줄곧 반대하는 이유다.



 사우디 정보기관 책임자로 오랜 기간 재직했던 투르키 빈 파이잘 왕자는 이스라엘과 이란을 포함하는 ‘중동비핵지대화’ 구상을 제안한 바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여전히 의문이다. 오히려 협상이 실패하고 이란의 핵무장이 기정사실화하면 사우디도 핵 억지력을 구축해야 한다는 게 주류 견해다. 일부 인사는 미국의 핵우산을 쓰면 된다고 주장하나 미국의 영향력이 과도해지는 것을 염려하는 다수는 이에 반대한다. 독자적 핵무장이 대안으로 등장한 배경이다. 물론 미국이 이를 허용할 리는 만무하다.



 여기서 필자가 느낀 기시감(dejavu)은 북핵 문제에 얽힌 한국의 처지 때문이었다. 전쟁이 불러올 민간 피해에 대한 우려 때문에 북한의 핵개발 저지를 위한 군사행동을 찬성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경제제재도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형국 아닌가. 핵 도미노의 위협에 처한 사우디와 한국의 동병상련(同病相憐)을 절감하면서, 협상을 통한 해결의 가능성에 다시 희망을 걸어 본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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