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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서 백만장자 가장 많은 도시, 중국에 아닌

중앙일보 2012.02.18 01:20 주말섹션 15면 지면보기
부(富)의 3단계


[한동철의 ‘부자는 다르다’] ‘동그라미 열 개’ 넘으면 그칠 줄도 알라

 세계 부자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부(富)에도 단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단계에서는 정경유착의 수혜자들이 부를 축적한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어느 부자는 정권과의 유착으로 국유사업을 대거 받아 10조원을 넘게 모았다. 전 세계에서 단일 도시로 백만장자가 가장 많은 러시아의 모스크바에도 정경유착의 혜택을 받은 부자들이 즐비하다. 2단계에서는 스스로 부를 창출해가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2단계에 들어섰다. 그러나 부의 수레바퀴를 너무 크게, 아무 데나 대고 굴리는 경우가 있다. 3단계는 부의 공유가 확산되면서 부의 소유권과 사용권이 분리돼 가는 단계. 서유럽과 미국이 여기에 속한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정권이 서너 번 번갈아 바뀌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부자란 자신만의 독특한 삶의 체험사를 쓰는 사람이다. 정신적 창조가 물질적 풍요로 이루어지는 부자 역사는 인류의 발전사와 같은 레일을 타고 달려왔다. 그런데 왜 사회적으로는 무차별적인 부자공격이 가속화되는 것일까?



 대다수의 국민에게 부자권력(Affluent Power)은 사회적 굴종을 요구하는 억압적 메커니즘으로 비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밤의 정치를 주무르고, 세상 이미지를 부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고, 물질적 헤게모니를 움켜쥐려고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부자권력



‘돈에 굶주린 부자(hungry for money)’는 돈을 벌면 기쁨에 취하고, 돈을 잃으면 병에 걸린다. 1800만원짜리 이불에 누워서 산삼 베개를 베고 자는 부자는 한 줄 김밥으로 하루 목숨을 연장하는, 의지할 데 없는 이들에게 복종 또는 순응을 요구하고 있다. 필자는 부자권력을 부자 개인과 부자 조직들이 부자가 아닌 개인과 단체에 가하는 힘으로 규정한다.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물질통제(Material Control)로 행동복종을 요구하고, 다른 하나는 존경을 돈으로 얻으려는 행위(Respect Buying)로 심적 숭앙을 얻으려는 것이다.



 국민은 부자들이 자기가 가진 물질 파이프라인으로 모든 것을 엮으려는 시도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아주 치밀하고 교묘하게. 그 많은 황금수레가 있으면서도 온갖 서민생계형 사업까지 뛰어들어 돈으로 세상을 휘두르려는 것이라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 물론 가치창조를 통해 스스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절제되지 않은 부자들의 돈 욕심이 세상을 있는 자와 없는 자로 극단화시킨다는 것이다.



 500원짜리 오뎅 두 꼬치로 퇴근길의 피로를 푸는 서민들에게 천문학적인 거부들의 음식사업은 도저히 정상적인 IQ로는 이해가 안 된다. 1000만원이 넘는 발렌타인 40년산 위스키를 마시는 그들이 서민용 밥장사에까지 뛰어들다니. 미국에서는 1920년대에 소득세가 1%였다. 부자들이 다 해먹는다는 인식이 팽배해진 60년대에는 소득세가 91%로 치솟았다. 그때가 미국 역사상 양극화가 가장 적었다고 한다.



존경을 돈으로 살 수 있을까



 우리 주변에는 존경을 사려는 부자들이 꽤 있다. 나쁘게 번 돈을 주면서 나를 존경하라고 무언의 압박을 넣고, 존경하는 것 같지 않으면 다음번에는 돈을 주지 않는다. 기부 요청에 응대하는 대가로 그들은 없는 분들의 마음마저 요구한다. 이러한 굴종을 요구하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부자권력을 스스로 자제하고 깨끗한 방식으로 물질의 풍요를 이룬 분들이 세상에 진정으로 베푸는 선행들이 신문과 뉴스의 초점이 되었으면 한다. 아버지가 독립군의 후예라는 것을 알고는 생각이 바뀐 어느 사업가는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는 돈을 벌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부자는 상식이 통하는 부자다. 정당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고, 사람을 존중하고,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부자. 권력으로 사는 존경은 가짜 존경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감동을 주고, 진심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부자가 늘어나야 한다.



한동철 서울여대 교수·부자학 연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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